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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홍진 Feb 11. 2023

월남견문록 및 신년인사



겨울에도 더운 나라 월남에 다녀왔다.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며, 고마웠던 분들께 신년인사라도 올리려 했는데 미루고 미루다 보니 2월이다.


2월에 신년인사는 아무래도 머쓱해, 팔자에도 없는 짤막한 여행기에다 얹어서 올린다.






나트랑



바다가 예쁘고 사람들이 친절한 나트랑


위키에서 가져옴



나트랑 대성당은 평평한 시내의 한복판에 솟은 작은 언덕 위에 놓여있다.


성당이 놓인 언덕 위로 올라가는 돌길 벽면에 하늘나라 가신 신도분들의 이름과 생사년월일이 빼곡히 쓰여있다.




이 도시에서 살다 간 생명들이  작은 언덕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있다.




백 년과 하루 사이 아득한 시차에 잠깐 어지럼증을 느끼며,

이 사람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 도시 어딘가에는 남아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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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내려온 뒤 곧바로 찾아간 롱탄 아트갤러리는 닫혀있었다.

분명 메일로 문의했을 때는 매일 연다고 답변받았는데, 그 사이에 무슨 사정이 생겼나 보다.


꼭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품은 채 일단 나트랑을 떠난다.





달랏



볼거리가 많은 달랏에서는 이곳저곳 참 바쁘게 돌아다녔다.



용가리


버려진 도자기나 유리병들로 지은 사원이라고 한다.

이름은 린푸옥


가까이서 보니 표현 하나하나 디테일이 참 좋았다.



버려진 조각들이 모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는 투박한 징이 저릿하게 다가왔다.

어딘가 모난 사람들끼리 부대껴 사는 우리네 생활도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이렇게 예뻐 보일까.





사원 한쪽에 커다란 불상이 있었는데, 가이서 보니 국화꽃 같은 것들로 온통 뒤덮여있었다.

불상의 높이가 몇 미터인지 따위의 것들보다 내겐 훨씬 감격스런 디테일이었는데, 어쩐지 모르고 지나치기 쉽게 되어있었다.


문화적으로 대륙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이 나라도 은근히 스케일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스케일을 무색하게 만드는 디테일이 외려 매혹적이게 다가오곤 했다. 아직 자기 멋을 잘 몰라 뭐든 과장되게 드러내려는 사춘기 소년의 활력 같은 게 이 땅 전반에 흐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래는 달랏을 여행 다니며 마주한 매혹적 디테일의 간들







그리고,

녹색이 예뻤던 커피농장과





조금 이상한 토토로를 지나





달랏에서 본 것 중 제일 좋았던

크레이지 하우스에 도착




혹자는 가우디 같다고 말하지만

가우디라기엔 조형적으로 훨씬 조잡하고,

구조적으로 훨씬 모험적이다.



이곳에선 어느 길로 들어도 두 갈래 이상의 선택지가 새로 생긴다.

자꾸 빙빙 돌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고

목적지를 정해놓고 가면 필연적으로 길을 잃는다.


어릴 때 꿈꿨던 모험이 이런 거였는데,

좁은 통로를 지나 알 수 없는 낯선 곳으로 자꾸만 떨어지는 그런 모험



그런데 세상은 생각보다 예측가능하고,

알 수 없을 것만 같던 것들을 자꾸만 알려준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금세 느린 폐곡선으로 빨려 들어 영영 따분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다.


따분해지는 게 죽기보다 싫어 머릿속으로 지었던 나만의 궁전이, 돌이켜보면 딱 이렇게 생겼었던 것만 같다.




이리저리 멋대로 돌아다니다 모험의 막바지에 마주하게 된 풍경

저 경계 안쪽에 꿈과 모험이 있고, 저 경계 너머에 보통의 삶이 있다.




흰 벽에 삐져나온 전선이 말했다.

"이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병신아"




다시 나트랑



집으로 돌아가기 전, 다시 롱탄 아트갤러리를 찾아갔다.

전화까지 드려서 여는지 확인하고 갔는데도, 열린 문과 그 안에 서계신 롱탄 선생님을 보니 무슨 마라톤을 완주한 것 마냥 울컥했다.




이 친구들 보려고 삼고초려했다.

어렵게 만나니 더 반가웠던 사진들





결국 한 장 샀다.

하루동안 사진 많이 팔았다며 유쾌하게 웃으시는 롱탄 선생님과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데, 감각적 사진 맞은편에 서있는 천진난만한 영혼이  부러다.




왕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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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랏에서 투어를 도와주셨던 택시 형님은 의외로 40대셨다.

워낙 동안이셔서 당연히 친구뻘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큰딸이 내 또래더라.

형님은 나를 친구로 생각했을지, 아니면 아들뻘로 생각했을지 문득 궁금해져 물어봤는데, 못 알아들으셨는지 대답은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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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순간들이 참 많았던 여행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돌이켜보면 죄다 누군가의 웃는 얼굴들이다.

택시 형님, 롱탄 선생님, 같이 간 가족들


사람 피해 떠난 여행에서, 외려 사람이 제일 좋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돌아왔다.

따분한 일들 뿐인 세상에서 그래도 그대들 웃는 거 보는 게 제일 재밌었구나 절실히 느끼며,

이번 새해에는 함께하는 사람들 더 많이 웃을 수 있게 작은 거라도 나누고 베풀며 살아보겠다 다짐해 본다.



이름과 달리 좌익활동 하셨던 전우익 선생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며


다들 지난 시간들 고마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불어 웃는 한 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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