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 done!
매미가 울어대던 덥고 나른한 어느 날.
중학교 3학년의 영어 수업 시간은 조금 지루했다.
영어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기도 했기 때문에 졸다가 걸리면 꽤 오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것조차도 매우 졸리기 때문에 어떻게든 잠에서 깨려고 노력했었다.
멍하게 현실과 잠의 경계를 오고 가던 내 귀에 문득, "잘했다"라는 칭찬을 영어로 어떻게 하는지 묻는 질문이 나왔다.
한창 해리포터에 빠져 있던 나는 냉큼 "Well done!" 하고 외쳤다.
영어 선생님의 피식 웃는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거는 스테이크의 구움 정도를 표현하는 말이잖아. 고기 좀 그만 먹어."
반 전체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던 사춘기의 여자아이에게는 무척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해그리드의 대사라고 설명했으나 웃음소리에 묻혀 선생님께는 닿지 않았던 것 같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라도 설명을 했지만 억울한 마음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지금도 그때 그 상황에서 내가 선생님이었다면 뭐라고 대답하는 게 좋았을까, 가끔 상상해 본다.
“오, 그런 뜻도 있어? 선생님은 스테이크의 굽기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생각한 건 다른 표현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답이 뭐라고 생각해?”
그랬다면 아이들의 웃음도, 나의 무안함도 훨씬 가볍게 흘러갔을지 모른다.
사실은 그날 집에 돌아와서 아빠와 함께 해리포터 영화를 한 번 더 찾아봤다.
첫 번째 시리즈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해리가 처음 퀴디치 시합에 나가 나쁜 마법사의 방해로 위험에 처했지만 결국 골든 스니치를 잡아내 팀을 승리로 이끌었을 때, 해그리드가 "Well done!"이라고 외치는 순간.
그때 아빠가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우리 딸이 맞네!”
그 말에 억울함이 눈 녹듯 사라지고, 가슴속에 작은 확신이 자리 잡았다.
돌이켜보면 그 경험은 나에게 묘한 영향을 남겼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느끼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삼키는 일이 잦았다.
말해봤자,라는 생각과 무안했던 순간이 오래 남아 움츠러들게 된 셈이다.
그런데 성인이 된 뒤 친구가 건넨 한마디가 나를 다시 흔들었다.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니가 하고 싶은 거 하자.”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너를 지지하겠다는 신뢰와 나만은 너의 말을 제대로 듣고 있다는 응원.
누군가의 지지와 신뢰가 이렇게 사람을 다시 일으킬 수도 있구나,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은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것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을 곁에 둘 때 훨씬 멀리 갈 수 있다.
그 힘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짧은 한마디나 사소한 표정 속에 숨어 있기도 한다.
그날의 아빠의 말, 친구의 말이 내 안에 뿌리처럼 내려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나에게 골든 스니치는 단순한 승리의 상징이 아니다.
옳은 것을 알고 그것을 지켜내는 힘, 내 안의 중심을 붙잡는 힘.
그 힘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Well d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