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떨려 두근두근
불안은 늘 피하고 싶은 감정이었다.
가슴이 쿵 내려앉고, 머릿속은 ‘어떡하지’라는 말로 가득 차고, 눈앞의 일이 당장 무너질 것만 같은 압박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돌아보면, 불안이 반드시 해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잘 다루기만 하면 오히려 삶을 앞으로 밀어주는 작은 엔진이 되기도 했다.
20대에 나는 미군부대의 하청업체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고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워서 내가 생각해도 많이 컸다고 느끼게 해 준 고마운 회사였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미군부대와의 계약이 지속되지 않게 되면서 회사는 축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어쩔 수 없음에 도리없이 짐을 쌌다.
거짓말이지?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아 그저 멍하게 있을 뿐이었다.
뿌리를 내리고 오래도록 일할 줄 알았던 회사에서 받은 권고사직은 마음이 정말 힘들었다.
배신감과 무력함,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가끔은 숨이 막혀서 보니 스스로 숨을 참고 있을 만큼 스트레스가 잔뜩 차올랐던 때였다.
30대 여성이 된 나는 20대의 나와 다른 사람인걸까?
이력서를 넣어도 열람만 할 뿐, 돌아오는 회신은 없었다.
전문직이라 하기 애매한 경력과 30대라는 것, 그리고 여성이라는 부분이 내 발목을 잡았다.
미친 듯이 어디든지 지원했다.
하나만 걸려라, 면접이라도 보게 해 줘!
그러다 문득 지원한 곳들 찬찬히 돌아보았다.
왜 이런 곳에 지원을 했나, 싶은 곳들이 많이 보였다.
내가 생각해도 안 될 것 같은 곳들과 가면 안 되는 곳들이 뒤엉켜 마구잡이였다.
... 망했는데?
오히려 연락이 와주지 않아서 다행이었을지도.
마음에 들지 않아 애매한 상태로 면접을 가는 것도 실례인지라 마구잡이로 이력서를 내는 건 그만뒀다.
대신 쇼핑을 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더 꼼꼼하게 구인광고를 골랐다.
우선은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면 장바구니에 담듯 스크랩을 해두었다.
나름대로 비교와 분석을 해서 평균점을 넘으면 지원했다.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행동이었을지 몰라도 나는 엄청 진지했다.
아무 데나 가서 별로네, 하는 생각에 또 이직을 고민하게 되는 그 상황이 싫었으니까.
적어도 내가 고심해서 고른 선택 안에서 미래를 보고 싶었다.
그 과정이 오히려 불안을 덜어내는 작은 장치가 되었다.
연락이 오는 곳들이 하나씩 생기고, 왜 연락이 오는지 생각해 보며 데이터를 쌓았다.
그 외에도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며 호흡을 고르고, 좋아하는 연예인 영상을 보며 잠시 다른 세계에 머물렀다.
불안을 억지로 밀어내려 하기보다, 숨 쉴 틈을 주는 것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효과적이었던 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정말 어디에서도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하고 상상해 보는 것이다.
막상 그렇게 가정해 보면 오히려 “그럴 리는 없지”라는 위안이 생겼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최악을 대비하고, 동시에 최고의 가능성을 상상하다 보니 묘하게 즐거운 마음도 들었다.
불안이 무너뜨리는 힘만 가진 것이 아니라, 행동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불안과 설렘은 정말 한 끗 차이 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릴 때는 설레는 건지, 초조한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머릿속이 뒤엉켜 숨이 막히면 불안이 초조함으로 번지려 하면, 나는 억지로 멈추기보다 다른 데로 시선을 돌렸다.
괜히 읽었던 책을 한번 더 열어보거나, 유튜브에서 신나는 음악이 나오는 영상을 틀기도 했다.
별것 아닌 행동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머릿속 소음이 잠시 꺼지고 숨이 트였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이 방법은 어느새 나만의 루틴이 되었다.
불안이 몰려올 때마다 같은 패턴으로 대처하면서, 지나치게 비관적이거나 근거 없는 낙관으로 휩쓸리지 않게 되었다.
불안을 없애려 발버둥 치기보다, 옆에 두고 같이 걸어가는 법을 조금씩 배운 셈이다.
나의 불안은 나를 헤치지 못한다.
도망갈 필요도 없고 무작정 맞설 필요도 없다.
성장을 위한 발판이라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불안함에 져서 동굴 속에 숨더라도, 그 안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설렘이 당신에게도 찾아오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