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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진 Sep 11. 2024

혼자, 여행

이천이십사년 여름

온몸이 천근만근. 여행하는 동안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움직인 탓에 지친 나는 여름휴가 마지막 주말을 늦잠으로 시작했다.


모두들 나에게 여행이야기를 들려달라 한다. 하지만 할 이야기가 그때 가서 생각날지 모르겠다. 내 이야기를 잘하지 못하는 편인지라 글로 적는 게 훨씬 편하고 좋다.


가장 저렴한 티켓을 구하다 보니 후쿠오카에서 인천으로 오는 제주항공 첫 비행기를 타게 됐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도 없는 시간,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기특하게도 별 탈 없이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순식간에 끝난 여행. 좀 더 여유롭게 다녀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쉽기만 하다.


후쿠오카 박물관에서 나와 모모치 해변으로 가는 길에 모바일 체크인을 하며 좌석을 선택했다. 분명 선택한 좌석이 있는데 갑자기 비상구에 앉아도 괜찮냐는 승무원분의 말에 괜찮다고 대답해버렸다. 어디든 상관없었으니 괜찮은 건 사실이었다. 물론 왜 갑자기 자리 변동이 생긴 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앉으라는데 앉았다.

비행기 탑승 직전 또 다른 승무원분이 컨디션 괜찮냐고 물어봤다. 원래 승객 컨디션까지 체크해 줬던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 이유를 납득해버렸다. 비상구 좌석. 비상시에 비행기 문을 열어야 하는 막중한 자리였다.

처음 앉아보는 자리. 비상구 좌석이라 그런지 일반 좌석보다 더 넓었고, 비행기 날개 좌석이라 흔들림도 덜했다. 내 왼쪽 좌석까지 채워지자 승무원분이 비상구 자리에 앉은 우리들이 비상시에 해야 할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셨다. 내가 앉은 창가 쪽 자리는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탈출할 수 있도록 비상레버를 당겨 문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새로운 걸 또 하나 알게 됐다.


나에겐 나름 큰 도전이었던 후쿠오카 여행. 짧은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니 정말 별거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삼겹살집에서 혼자 고기를 구워 먹는 일보다 쉬운 일이었다. 혼자 떠나는 해외여행의 매력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일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연락하다 보니 사람에 치인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힘들고 고된 어른의 삶. 회사에서 벗어나 혼자 가게 된 일본은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은 편안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하루의 일정을 스스로 결정하고 마음 가는 대로 걸었다. 다른 사람의 기분과 상태를 끊임없이 챙길 필요가 없어서 너무나도 좋았다. 길 가다 쉬고 싶으면 쉬고, 힘들어도 걷고, 왔던 길이었지만 다시 가보고 싶으면 갔다. 하루에 이만 보 넘게 걷는 여행 감당 가능하시겠습니까?


사진도 많이 찍었다. 풍경도 찍고 나도 찍고.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열심히 촬영했다. 지금 이 순간을 담아내는 건 나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이번엔 사진 보정까지 했다. 내 기준 기막히게 잘 찍은 내 사진들을 자랑하고 싶었다. 더 많이 자랑하고 싶은 걸 참는 중이다. 인스타그램 중독처럼 보이는 건 원치 않으니까요.

사진은 취미, 여행은 취향.

여행하는 동안 나의 시선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일. 그 사진을 기록해두는 일. 그리고 공유하는 일.

난 그게 좋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의외였던 부분은 환전해간 돈을 아낌없이 다 쓰고 왔다는 것이다. 당연히 어느 정도 남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여행을 왔으니 예의상 작은 선물이라도 사 가야 하는데 선물 살 돈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에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선물 가격은 왜 이리 또 비싼 건지. 선물을 사 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지만 도리라는 게 있으니까. 남은 돈을 탈탈 털어 누군가에게 줄 과자를 구매했다. 돈도 없었지만 선물을 살 시간도 없어서 얼마나 당황했던지.

엄마랑 동생에게 줄 선물을 미처 사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역시 기념품은 보일 때 사야 한다.

물건이든 뭐든 잘 사지 않는 나는 선물을 고르는 것조차 힘이 든다. 이게 과연 필요한 게 맞을까? 좋아할까? 돈 낭비 같은데. 몹쓸 생각이란 것을 안다. 선물 너무 어려워요.


알차고 알찼던 3박 4일의 여정이 끝이 났다. 다음 여행이 벌써 기다려진다. 뜨거운 여름휴가를 잘 보냈으니 다시 현실로 돌아가 나에게 주어진 일을 잘 해내야 한다. 놀고먹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

여행 또 가려면 돈 벌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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