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심리

이천이십사년 시월 이십칠일

by 장유진

미루고 미루던 일을 해결했을 때의 뿌듯함이란.

어제 안경을 샀다. 드디어. 세상이 선명해졌다. 왜 이제서야 샀을까 후회를 한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당장 필요하지 않으면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 뒤늦게 사고 또 후회를 하겠지.


유행을 싫어했다. 다수의 사람들이 관심 갖고 좋아하는 것들을 나까지 좋아하고 싶지 않았다. 무슨 심리인지 모르겠지만. 메이저가 싫었다.

난 저들과 달라!를 외치고 싶었던 걸까. 모두가 A를 외칠 때, 난 B를 외쳤다. 유행을 만드는 건 특수한 목적을 가진 소수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유행을 따라가는 건 목소리 큰 사람이 정한 길을 따라가는 재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유행을 모르면 시대에 뒤처진다는 걸 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지금 유명한 게 뭔지 알아야 한다. 유행을 따라가야 한다.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이 살아남는 세상이니까.


청개구리 심보가 있다.

내가 계획하고 생각한 일을 누군가 나에게 시키는 순간, 하기 싫어지는 이상한 심보. 내가 스스로 하는 일이 좋지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은 싫다. 전 이미 그걸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당신이 저에게 명령한 순간, 할 마음이 사라졌어요. 내면 깊숙이 고집 센 청개구리가 있는 게 분명하다.


인기 많은 아이돌이나 한류스타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좋아는 하지만 덕질을 해본 적은 없다. 앞으로도 평생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다수의 무리에 섞이고 싶지 않다. 내가 아니어도 이 사람은 팬이 많은데 굳이 나까지 좋아할 필요는 없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더 잘 되길 바라면서도, 작품이 대박 나서 팬들이 많아지면 먼발치 물러나 조용히 응원하는 팬으로 남게 된다.


난 이 사람이 잘 될 줄 알았어, 이 사람을 먼저 알아본 건 나야. 내가 먼저 좋아했어.

이런 생각 해본 적 없으세요? 전 있거든요.

어쩌면 아무래도 유행이 싫은 건 내가 유행을 만들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뒤늦게 따라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남들은 모르는 길을 내가 먼저 발견해서 걷는 게 더 좋다.


익숙함보다 새로움이 좋고, 다수보다 소수를 선호한다.

여행을 할 때도 사람 없는 곳을 찾아다닌다. 휩쓸리고 싶지 않다.


그러나 유명하고 인기 있는 건 다 이유가 있다는 걸 안다. 고집을 내려놓기로 했다. 좀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그랬더니 삶이 풍요로워졌다. 이럴 줄 알았다. 흑백요리사, 굿파트너 안 봤으면 어쩔 뻔했냐고.

물론 여전히 내 관심사 밖의 이야기에는 귀 기울이기가 어렵다. 뒤늦게 좋은 거 알고 후회할 거 아는데 좀 더 미뤄볼게요. 나중을 위해 아껴두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지금 시청률 잘 나오는 정년이, 지옥에서 온 판사, 정숙한 세일즈 다 보는 중.

작가의 이전글시월,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