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처럼, 베드로처럼

공명하기 위하여

by 수연길모

이팝나무 하얀 꽃이 온 나무를 뒤덮을 때가 되면 민들레 씨앗이 높이 높이 날기 시작한다. 올해는 그 풍경을 보며 문득 이 노래가 떠올라 매일 듣고 있다. 2017년에 발표된 우효의 「민들레」다.

ChatGPT Image 2025년 5월 16일 오후 03_56_16.png 민들레

이 곡은 몇 년 전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었다. 여성과 소녀 사이 어디쯤 머문 듯한 목소리가 현악기 선율 위에 무심히 흘렀다. 후렴에서는 현악기 대신 신시사이저가 조용히 등장하고, 리듬이 느려지며 뜻밖의 고백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사랑해요. 그대
있는 모습 그대로
너의 모든 눈물
닦아주고 싶어”


어떻게 보면 흔하디 흔한 가사에 몽환적이고 힘을 뺀 보컬이 숨을 불어넣었다. 이 곡을 재생하는 유튜브 댓글 창에 들어가 보니 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혼 서류를 가지러 법원에 가던 여성의 사연이 가장 눈에 띄었다. 그녀는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듣고 한 시간 동안 오열했다. 결국,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며 다시 사랑하며 살기로 했다고 한다. 또 강아지가 주인한테 속삭이는 말 같다는 이부터, 군대에서 우연히 듣고 군대 수첩에 적은 후 알게 된 노래라고 한 군인도 있었다. 시합에서 진 다음 집에 와서 이 곡을 들으며 펑펑 울었다는 유도 선수의 고백도 인상 깊었다. 사연은 제각각이었지만, 자신의 이야기로 이 노래와 공명하고 있었다.

이 곡을 작사·작곡한 우효는 갈라진 콘크리트 틈 같은 엉뚱한 곳에 조용히 피어난 민들레를 보며 그 모습이 어쩐지 자신을 닮았다고 느꼈다 한다.


며칠 뒤 예상치 못한 곳, 성당에서 또 다른 민들레를 발견했다. 지난 주일은 부활절 이후 3번째 맞는 주일이었다. 복음 말씀은 요한복음 21장으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솔직히 8년째 천주교 신자지만 나는 그 본문을 깊이 알지 못했다. 그날도 사제가 말씀을 읽을 때 무심히 눈으로 따라갈 뿐이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울림이 밀려들었다.

예수님이 체포되던 날, 베드로는 세 번이나 그를 모른다고 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었고, 베드로는 죄책감에 사도로서의 소명도 잊고 다시 어부가 되었다.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 그에게 묻는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같은 질문이 세 번 이어진다. 그때마다 베드로는 대답한다.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당부한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네가 젊었을 때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ChatGPT Image 2025년 5월 16일 오후 04_14_26.png 하늘나라의 열쇠를 든 성 베드로

이 말씀은 베드로가 더는 자기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끌리는 삶, 마침내는 순교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예고였다. 예수님은 애제자였던 요한이 아니라, 자신을 배신한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베드로가 연약하지만, 그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타인의 아픔과 공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순간, 베드로의 모습이 민들레와 겹쳐졌다. 베드로는 자신의 무게를 버리고 낮은 곳으로 가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라는 스승의 소명을 받들었다. 예수님의 사도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 의해 원치 않는 곳으로 가서 말씀의 씨앗을 심었다.

민들레는 아이들의 입김, 바람의 숨결과 공명하여 자기가 원치 않는 곳으로 간다. 박완서 작가의 표현처럼 흙이랄 것도 없는 한 줌의 먼지에 허겁지겁 뿌리내리는 꽃. 노란색 종이를 아무렇게 오려 만든 듯한 수수한 꽃. 봄이 되면 피었다가 바람에 따라 자신의 무게를 모두 버리고 날아오르는 민들레와 베드로는 닮아 있었다.

우효의 「민들레」는 이렇게 끝맺고 있다.


“어서 와요 그대
같이 걸어가요
웃게 해 줄게요
더 웃게 해 줄게요”


민들레와 베드로는 왜 떠나야 했을까. 아마도, 공명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넘어지고, 아파한다. 하지만 누군가 다가와 내 눈물을 닦아주고, 함께 걸어준다면 그 순간 다시 살아갈 힘이 솟는다.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것, 그것이 공명의 시작이다. 어쩌면 공명은 그들이 영원히 사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진: AI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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