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by 수연길모

작년 말부터 주일 10시 교중 미사에 늦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10시 2분에 도착하더니 이날은 아예 집에서 9시 59분에 출발하고 말았다.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쉬며 집을 나섰다.

성당에 도착했다. 이전에 지각했을 때는 신부님이 제대 앞에 서 계시고 신자들도 서 있는 상황에서 후다닥 들어가 맨 앞자리에 앉았다. 홍보분과장이라 시상식이나 임명장 수여와 같은 사진 찍을 행사가 있는 날에는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을 느끼며 앞자리로 갔다. 하지만 오늘은 행사도 없는 데다 너무 늦어버렸다. 신자들이 모두 앉은 뒤였고 지금 들어가면 신부님이 늦게 들어오는 어린 양을 단번에 알아차릴 터였다. 2층 자리는 육중한 나무 난간 때문에 시야가 좁고 답답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2층 오른쪽에는 방송단 부스가 있고 왼쪽에는 성가대가 자리하고 있다. 그 사이 빈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미사에 집중하지 못하고 처음 온 사람처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1층에 앉으면 시선은 늘 제대를 향하게 된다. 제대 뒤 십자가와 그 위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 스테인드글라스, 신부님, 그리고 복사단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온다. 간혹 십자가 양옆에 자리한 성모상과 예수님이 보인다.

그러나 2층에서는 모든 배치가 다르게 다가왔다. 비둘기 스테인드글라스가 정면에, 좌우로 성모상과 예수상이 나란히 눈높이에 놓였다. 세례받은 지 여덟 해가 지났건만 파란 옷의 성모님 가슴에 붉은 심장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붉은 망토를 두른 예수님 머리에 뽀얗게 앉은 먼지도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머리 위에서 울려 퍼지는 성가대의 합창만 들었을 텐데, 이날은 그들의 숨결과 표정, 지휘자의 카리스마까지 바로 옆에서 느낄 수 있었다. 또 1층 TV 화면으로는 볼 수 없었던 방송단 봉사자의 분주한 손놀림에 미소가 지어졌다.

2층 좌석은 1층 대성전 출입구 위에 자리 잡고 있어, 그곳에 앉으면 성당 전체를 관조할 수 있다. 성당 양쪽 벽에는 세 단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있다. 1층 좌석 옆의 창이 가장 길고, 올라갈수록 점점 작아진다. 2층에서 보니 양쪽 채광창으로 쏟아지는 형형색색의 봄 햇살이 한눈에 보였다. 우리 성당이 이토록 아름다운 줄 오늘에서야 알았다.

지각이 아니었다면 결코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풍경이 또 있다. 그것은 고동색 나무 패널이다. 중앙의 비둘기 모양 원형 스테인드글라스가 그 패널 위에 나 있었다. 그 패널은 정면뿐 아니라 양옆 벽에도 이어지는데, 천장에서 약 2미터쯤 아래까지 내려왔다. 3층 채광창들도 고동색 나무판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나무 패널을 보고 있자니, 문득 노아가 비둘기를 날리기 위해 올라갔던 방주의 꼭대기 창이 떠올랐다. 물이 멎었는지 바라보던 그 창 말이다. 우리 성당 천정이 방주를 본떴다니 새삼 놀라웠다.

나는 학창시절 늘 맨 앞에 앉았다. 칠판과 선생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 내 자리였다. 약속에도 10분 먼저 가서 기다리고, 늦게 오는 이에게 잔소리해대는 사람이었다. 가톨릭 신자가 된 후에는 미사 30분 전에 도착해 묵상하곤 했다. 미사에 늦는 신자들을 보면 마음속으로 혀를 차던 사람이었다.

중년의 고개를 넘으며 내 삶을 바짝 조이던 통제의 나사는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 이유를 분명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지각 덕분에 성당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미사가 이미 시작된 후에도 조용히 봉사하는 손길, 숨 가쁘게 들어와 자리에 앉는 이들, 그리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성당의 얼굴까지. 지각하니 비로소 보이는 것이 많았다. 그나저나 루치아, 언제까지 지각할 셈이니?



성당 내부
노아의 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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