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은 말 말고 친절한 말

by 수연길모

PC 작업은 한글밖에 모르는, 컴맹에 가까운 내가 성당에서 홍보분과장으로 1년을 보냈다. 홍보분과장의 주요 업무는 매달 네 면짜리 월보를 만드는 일이다. 월보는 중요한 행사나 시상이 이루어지는 교중 미사(일요일 10시 미사)에 참석해서 행사 사진을 찍는 것부터 시작된다. 사진을 고른 다음 설명도 써야 한다. 월보에는 사진만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달에 있었던 행사 중 하나를 골라 심층적으로 기사를 내고 연중 프로젝트인 봉사 단체 인터뷰도 함께 싣었다.

홍보분과장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PC를 못 다뤄서 오는 답답함이 아닌 끊임없이 솟아나는 갈등이었다. 내 글 쓸 시간도 부족한데 월보를 만들고 있자니 속에서 천불이 났다.

차츰 월보 만드는 일도 익숙해지자 다른 산이 나타났다. 그것은 매년 1월 21일 본당의 날에 맞춰 발행하는 연보였다. 연보는 48쪽짜리로 출판사는 1월 중순에 발행하려면 12월 둘째 주까지 자료를 보내 달라고 했다. 선배 홍보분과장 글라라 언니가 조언하길 먼저 목차를 만든 다음 세부적으로 업무를 짜보라고 했다.

연보는 권두 시를 시작으로 신부님 신년사, 월별로 주요 행사 사진을 정리하고 그 해에 있었던 행사에 관한 글을 신자들에게 부탁하고 새 영세자들 소감문과 같은 각종 후기를 받아야 한다. 거기다 매년 봉사자 현황, 구역 현황도 잊어선 안 된다. 성당에서 친한 분들께 애원과 협박을 써 가며 원고를 청탁하고 늦은 시간까지 퇴고하느라 눈은 빠질 것 같고 마우스를 잡는 오른 손가락은 마비 증상이 왔다.

물론 혼자 월보와 연보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의 선배 홍보분과장 글라라 언니와 나와 동갑이자 일 중독자 제분과장諸分課長 미카엘라와 함께 오타에서부터 기사의 사실 확인, 행사 누락 여부까지 확인한다.

연보는 먼저 혼자 파일을 만들어 글라라 언니에게 점검을 받고 출판사로 보냈다. 출판사에서 1차 PDF 파일이 왔다. 결과는 처참했다. 오타는 득실득실했고 디자인도 수정 사항이 많았다. 그런데 그 많은 수정 사항을 어떻게 표시해서 보내야 할지 난감했다. 성당의 자매들도 내게 뾰족한 방법을 알려주지 못했다. 일단 1차 PDF 파일을 미카엘라에게 보내고 나니 전화가 왔다.

그녀는 첫 통화부터 한숨을 쉬며 쉴 새 없이 수정해야 할 부분들을 말해주었다. 늦은 밤까지 지적사항을 받아 적은 후 몇 가지 수정하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화가 났다. 사실 그전부터 미카엘라의 지시적인 말투 때문에 쌓인 것이 많았다. 며칠 동안 밤잠 설치며 한 결과인데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한숨을 쉬며 아랫사람 대하듯 지시하는 그녀가 괘씸했다. 순간 내 뇌는 파충류 뇌로 변했다. 그녀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부하 직원 닦달하듯 지시만 하니 아주 섭섭하구나. 나는 이 봉사를 때려치우고 싶어. 독 안에 든 쥐 같은 느낌이야. 전혀 행복하지 않아. 일단 연보는 마쳐야 하겠지만 누굴 위한 연보인지 모르겠어.”

그녀의 답장이 왔다.

“나도 감정이란 게 있어. 섭섭하면 어제 말하지 아침에 이런 카톡을 보내는 건 무슨 경우니? 나도 이렇게 봉사하고 싶지 않아. 나는 교정을 본 거지 너에게 잘못을 지적한 게 아니야.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진짜.”

그녀의 카톡 어디에도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다. 더 괘씸했다. 신랑한테 미카엘라 욕을 한바탕 퍼부었다. 그는 고맙게도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제분과 회의가 있었고, 다음 날은 성당 송년 모임이 있었다. 이틀 동안 껄끄럽게 그녀를 볼 생각을 하니 카톡 보낸 것이 살짝 후회되긴 했지만, 여전히 나는 옳은 일을 했다고 믿었다. 이틀간 모임에서 미카엘라와는 말은 섞지 않았다.

토요일 대학 동기 송년 모임에 갔다. 동창들은 알 길 없는 미카엘라 욕을 한 바가지를 했다. 의리의 동기들은 침을 튀기기며 뭐 그런 애가 있냐고 맹렬한 헐뜯기에 동참했다. 미카엘라는 이미 내 안에서 너덜너덜해졌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동기들과 헤어지고 토요일 저녁 미사에 갔다. 성당 안에 앉아 있노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당연히 미카엘라 때문이었다. 내 마음속 미카엘라의 흔적을 못 본 척하고 무시하고 싶었다. 미사 시간만이라도 평화 속에 머물고 싶었지만, 그녀와 나 사이에 꼬인 매듭을 풀지 않고서는 평화는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영성체를 모시고 난 후였다. 나의 카톡 폭탄을 받은 미카엘라의 심정과 내가 준 상처가 갑자기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 카톡을 받고 얼마나 심장이 떨리고 억울했을까. 그녀도 봉사를 잘하자는 의미로 한 말이었을 텐데 왜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는지 급기야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마음이 변하기 전에 그녀에게 사과하고 싶어졌다. 미사 중에 또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먼저 컴맹인 내가 그동안 연보 때문에 도망가고 싶을 만큼 스트레스받았던 상황을 설명했다. 내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해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과 함께 내가 준 상처가 떠올라 미사 중에 급하게 메시지를 보낸다고 했다. 화가 안 풀린다면 몇 번이고 더 사과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에게서 금방 답장이 왔다. 자주 봐야 하는 사이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먼저 손 내밀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자기가 앞만 보고 달리는 스타일이라 그랬다면서 미안하다며 긴 글을 보내왔다.

그제야 평화가 당도했다. 적당히 따뜻한 물 위에 사지를 뻗고 둥둥 떠서 하늘을 나른하게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미카엘라 욕을 하며 분노에 이를 갈았는데 어떻게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까지 할 수 있었는지 미스터리 했다.

며칠 뒤 조카에게 PDF 파일을 수정하는 방법을 배웠다. 출판사와 네 번의 수정작업을 마친 뒤 나의 첫 연보가 성당에 도착했다. 글라라 언니는 연보를 보면 감격스러울 거라고 했지만, 그 대신 성당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묵직한 책임감을 느꼈다.

『내면 소통』의 저자 김주환 연세대 교수는 우리는 자기 삶 속에서 저마다의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서로에게 가져야 할 태도는 옳은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친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타인에게 친절하다는 것은 그를 존중한다는 의미가 되고 나의 행복은 타인을 존중할 때 얻어진다고 했다.

나는 분명 내가 옳다고 믿었고 미카엘라에게 나의 뜻을 전달했지만, 존중이 아닌 상처를 주었다. 그 결과 나 또한 행복하지 않았다. 반대로 나의 사과에 그녀 또한 진심을 담아 미안하다고 하자 즉시 나는 평화로워졌다. 그 사과는 존중하는 방식인 친절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지나온 길은 내가 옳았음을 주장하기 위한 힘겨운 여정이었다. 그럴수록 자존의 공간은 확장되지 못했고 그 원인을 바깥에서 찾았다. 나의 뾰족한 성격은 마모될 기미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성당 봉사에서 내 모서리가 둥글둥글해질 가능성을 보았다. 얼마 전 루카 복음에서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라는 구절을 발견했다. 이제 내 안에 친절과 존중이 가득 차 무심코 나온 말도 친절이라는 꽃이 되어 상대에게 가서 존중의 향기로 피어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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