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은 아들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이혜민,『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았다』 를 읽고

by 수연길모

나는 오산에 있는 ‘유엔군 초전 기념관’에서 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이곳은 1950년 7월 5일, 한국전쟁 발발 열흘 후 북한군과 미군 스미스 특수임무 부대 간 벌어진 첫 지상전인 ‘오산전투(또는 죽미령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오산전투에서 북한군에 포로로 붙잡힌 부대원은 89명이었다. 그들 중 40명은 정전 이후 '빅 스위치(Operation Big Switch)'라는 대규모 포로 교환 작전을 통해 하나둘씩 고향으로 돌아갔다. 미 국방성은 그들의 이름을 잊지 않았고, 유엔과 적십자를 통해 끈질기게 송환을 요구했다. 이후 생존한 부대원들의 자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기념관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런데 스미스 부대 포로들의 이야기를 전하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우리 국군 포로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물음 끝에서 읽게 된 책이 바로 이혜민 작가의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았다』였다.

잊힌 존재들, 국군 포로

동아일보 기자였던 작가는 유독 전쟁 이야기에 마음이 갔다고 한다. 이후 아들을 낳고 생명의 가치에 눈을 뜬 그녀는 2013년 귀환 국군 포로를 만나게 된다.

1953년 8월 유엔군 사령부는 6.25 전쟁 중 북한군이나 중공군의 포로가 되거나 실종한 국군이 82,318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포로 교환을 통해 귀환한 국군포로는 8,343명에 불과하다. 적어도 7만 명 이상의 국군포로가 대한민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4년 조창호 소위를 시작으로 이 책이 쓰인 2023년까지 자력으로 대한민국에 돌아온 국군포로는 80여 명에 그쳤다.

이혜민 작가는 아들을 품에 안고 있으면 누군가의 귀한 아들인 국군포로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고 한다. 이 작가는 80여 명 중 생존자가 사라져 가고 있어 그들의 삶을 기록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약 10년에 걸쳐 이어온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우리는 노예였어, 내무성 건설대

이 책은 총 아홉 분의 귀환 국군 포로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북한에서의 삶을 바탕으로 그분들을 내무성 건설대 출신 탄광 노동자, 내무성 건설대 출신 목공·공장 노동자, 교화소 출신 탄광 노동자 그리고 인민군 출신 농업 노동자 출신 네 부류로 나누고 있다.

책에 따르면, 한국 사회로 돌아온 국군 포로의 절반가량이 ‘내무성 건설대’를 경험했다고 한다. 내무성 건설대는 강제노동과 정치적 통제를 위해 조직된 국가 기관으로, 대부분 포로는 막장(갱도) 탄광 노동자로 배치되었다.

그들은 혹한과 굶주림 속에서 평생 감시받으며 노동했고, 결혼해 자식을 낳아도, ‘성분’이 중시되는 북한 사회에서 국군 포로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대학 진학도, 군 복무도 허락되지 않았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 부모와 마찬가지로 탄광에서 평생을 일하는 것뿐이었다. 어떤 국군 포로 어르신은 아들이 그런 현실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자, 그제야 탈출을 결심했다고 한다.

귀환 국군 포로들은 정부 지원금을 3억에서 5억 정도를 받았다. 그러나 남한 가족에게 금전적으로 착취를 당하거나 사기꾼들에게 돈을 잃고 150만 원 정도의 군인 연금으로 지내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거기가 생지옥이야, 교화소

아홉 분의 국군 포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김성태 어르신이다. 이분은 열일곱 살의 나이에 입대해서 전쟁이 일어난 지 나흘 만에 포로가 되었다. 탈북할 때까지 무려 51년간 파란만장한 삶을 북한에서 살아내야 했다.

처음에는 함경북도 집단 수용소에 끌려가 시멘트 공장 노역에 강제 동원됐다. 거기서 탈출했지만 붙잡혀 교화소, 즉 교도소에서 13년 동안 감금되었다. 그곳에서 이 한 번 닦지 못했고, 목욕조차 한 번 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르신은 교화소에서도 또 한 번 탈출을 감행했으나 다시 붙잡혔다. 그는 손발이 쇠사슬에 묶인 채 독방에 갇혔고, 그 자국은 아흔을 넘긴 노인의 손등에 아직도 남아 있었다. 김성태 어르신은 2023년 늦가을,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분들이 남긴 물음 앞에서

이혜민 작가가 귀환 국군 포로들을 만난 것은 역사를 폭로하기 위해, 국가를 위해 헌신한 영웅을 알리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한 인간으로서 전쟁 피해자들의 삶을 듣고 기록했을 뿐이라고 했다.

녹음이 짙어가는 6월이지만, 전쟁의 기억은 점점 흐려지고 있다.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았다』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그분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을 마주할 수 있다.

열일곱 살 소년은 왜 아무도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또 고향을 그리며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밥상을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아들의 귀환을 보지 못한 어머니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떠났을까. 나아가 이 책을 통해서 “나 같은 사람이 또 생기면 되겠느냐?” 하신 김성태 어르신의 말씀처럼 그분들이 남긴 물음을 외면하지 않고 답을 구하려는 마음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길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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