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0세인 이근후 정신과 교수는 젊은 시절 네팔에 의료 봉사하러 자주 갔다. 이 교수는 어느 해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네팔 룸비니를 방문했다. 버스에 앉아 밖을 보니 소년 하나가 향을 들고 사라고 애원했다. 그는 불자인 어머니를 위해 사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가격을 물었다. 한 통에 2루피(우리 돈으로 몇십 원 정도다)라고 했다. 그는 두 개 살 테니 3루피로 하자며 1루피를 깎으려는 순간 버스가 떠나버렸다. 결국, 그는 카트만두에서 향을 사서 어머니에게 드렸다. 만약 룸비니에서 향을 사다 드렸다면 어머니에게 더 의미 있는 선물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이 사건에서 그가 후회하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어린 소년을 상대로 1루피 깎으려고 했던 치졸한 자신의 행동이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에 대한 불효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100루피, 500루피도 주저 없이 사면서 어머니를 위한 향은 1루피를 깎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근후 교수의 일화를 읽고 난 뒤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20, 30대 조카들에게 물으니 한 아이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했고 다른 조카는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40대 딸아이 친구 엄마가 후회되는 것은 남편과의 결혼이었다. 50대 후반의 성당 자매는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하고 참고 산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50대 대학 선배 언니의 후회는 엄마에 관한 것이었다. 여고 졸업식을 앞두고 그녀는 난감해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그날 한복을 입고 오라고 했는데 한복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녀의 엄마는 숙모에게 한복을 빌렸고 학교에 가게 되었다. 졸업식 당일 단짝 친구 엄마가 점심에 돈가스를 사주겠다는 말에 그녀는 잔뜩 들떴다. 식이 끝나자 한복 보따리를 엄마에게 주며 혼자 집으로 가라고 말했다. 그녀는 보따리를 안고 홀로 돌아서는 엄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봤다. 그리고 엄마는 2년 뒤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엄마를 그날 혼자 보낸 게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후회는 이전에 자신이 내린 결정이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느끼는 감정이다. 이 감정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자책하거나 한심하게 보는 부정적인 느낌도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다니엘 핑크 Daniel Pink는 그의 저서 『후회의 재발견』에서 ‘후회’가 가진 긍정적인 힘에 집중했다. 먼저 그는 전 세계 2만여 명을 대상으로 ‘세계 후회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결과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는 기반성 후회다. ‘그 일을 했더라면’과 같이 우리 삶의 기반을 형성하는 영역에 대한 후회다. 조카의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다른 전공을 택할걸’과 같은 후회가 여기에 속할 것이다.
두 번째 대담성 후회다. 이는 ‘위험을 감수했더라면’처럼 더 대담한 결정을 하지 못한 후회다. ‘그녀에게 고백했어야 했는데’, ‘그 친구와 진작에 관계를 청산할걸’과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도덕성 후회로 옳은 일을 좀 더 하지 못하고 부도덕한 선택을 한 데서 생기는 후회다. 남 흉을 보거나 아이를 혼내고 나면 도덕성 후회가 꼭 찾아온다.
마지막은 관계성 후회로 가족과 친구, 동료를 더 사랑하지 못해 남는 후회다. 이근후 교수의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다니엘 핑크는 네 가지 후회 중 우리 삶에서 관계성 후회가 가장 많다고 말했다. 최근 타인의 관계성 후회로 내 삶에서 진정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일이 있었다.
‘오은영의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에 9개월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는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출연했다. 우등생이자 모범적이었던 아이는 마음의 문을 닫은 채 방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버지와의 관계는 원만했기에 이들의 사연이 궁금했다.
아이의 칩거 이유는 엄마의 사망이었다. 9개월 전 4월 벚꽃이 한창일 무렵, 엄마는 친구들과 7살 난 둘째 딸과 함께 나들이 갔다가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나머지 여섯 명의 친구들은 골절상을 입었고 엄마 품에서 발견된 딸아이는 거의 다치지 않았다.
장남이었던 아이는 어릴 적부터 엄마 말을 잘 들었고 부모님을 기쁘게 하려고 뭐든 열심히 했다. 엄마는 점점 욕심을 내게 되었고 마침내 아들의 과학고 진학을 위한 계획을 초등학교 때부터 세웠다. 그러나 아이는 중학교 2학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엄마와 자주 싸우게 된다. 엄마로서는 학원 숙제는 뒷전인 채 게임에 몰두하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험한 말이 오가는 상황이 자주 벌어졌다. 일요일이었던 엄마의 사망일에도 아이는 학원에 있었다.
아이는 엄마의 부재로 더는 예전처럼 살 수 없었다. 삶의 동력은 엄마와의 관계에서 오는 에너지였는데 갑자기 그것이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또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이 죽을 수 있는 믿을 수 없는 세상으로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었다.
나는 엄마로서 허망하게 떠난 그녀의 심정을 헤아려 보았다. 그녀가 이승을 떠나던 순간 과연 아이와 험난하게 싸웠던 시간을, 과학고를 보내기 위해 공부를 강요했던 시간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녀는 분명히 후회했을 것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초밥집에 더 자주 가지 못한 것을. 공부보다 기타 연주를 좋아하던 아이의 꿈을 지지해주지 못한 것을. 그리고 아이를 안아주며 더 자주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것을.
그녀가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오늘 당장 가족을 사랑하는 일이었다. 누워서 스마트 폰만 보고 있는 딸아이 침대의 온수 매트 전원을 켜주고, 남편이 좋아하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끓이며 그들이 집을 나선 뒤 흩뜨려진 옷가지들을 정리하는 지루한 일들 말이다.
지금 당신이 후회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 우리는 죽을 때까지 후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것이다. 다니엘 핑크는 후회를 줄이는 ‘후회의 최소화’가 아니라, 긍정적인 도구로 만드는 ‘후회의 최적화’를 강조했다.
어제 내가 만든 닭다리살 버터 카레의 맛이 기가 막혀 다이어트의 결심에도 불구하고 김치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꺼내고 말았다. 아침에 재활용 상자에 뒹구는 맥주캔과 부은 눈두덩이를 보며 ‘맥주를 사놓지 말았어야 했는데’ ‘한 캔만 마실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이 시점에서 내게 필요한 것은 후회의 최적화다. 몸무게를 늘린 어제의 시간은 가족 화합의 시간으로 결론 내렸고 나의 의지박약을 받아들였다. 때마침 새해가 밝아오지 않는가. 다이어트는 1월 1일부터 하면 된다. 내 후회는 최적화와 합리화 어디쯤 있지만 어쩌겠는가 후회하니까 사람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