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정 송림 맨션 나동 310호

by 수연길모

중학교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지배하던 물음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은 왜 태어났을까’였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벌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가족을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았으며 낮엔 집에 누워있다가 저녁만 되면 술에 취해 유치하고 졸렬하게 가족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자신의 그런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젊어서 아버지에게 짐승처럼 맞았다. 아무 이유 없이 맞을 때도 있었고, 아버지가 화가 나서도 맞고, 말대꾸한다고 맞았다. 신체적 폭력은 습관적이었고 자식들 앞에서 차마 입에 올릴 수도 없는 엄마를 향한 정서적 학대를 일삼던 아버지를 떠올리면 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러나 철저한 가정 폭력의 피해자였던 엄마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 눈치를 본다던가 주눅이 들어 우울해하는 전형적인 피해자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맞으면 맞았지 신물이 나오도록 할 말을 다 토해서 아버지를 진저리나게 했다. 지금은 오히려 때렸던 아버지가 약자처럼 느껴진다.


거기에 더해 엄마는 아버지에게 맞은 다음 날도, 싸운 다음 날도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정성껏 요리했다. 가을이 되면 미꾸라지를 사다가 추어탕을 만들고, 없는 돈에 외상으로라도 갈치를 사다 무를 수북이 깐 갈치조림을 얼큰하게 지졌으며, 수시로 밥상에 올랐던 조기 매운탕과 백숙은 아버지의 원기회복을 위한 일상적인 일품요리였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안되면 엄마는 구포시장 후미진 뒷골목에 가서 개고기를 사 왔다. 토란대, 고사리, 고춧가루, 들깻가루 등 양념을 아끼지 않고 완성된 전라도식 보신탕은 골골대던 아버지를 또 한 번 살리게 하는 엄마의 비밀병기였다.


엄마의 아버지에 대한 양극단의 태도는 선천적으로 길듦을 거부하는 호전적인 성격과 후천적으로는 지아비를 섬기라는 외할머니의 가르침에서 온 것 같다. 비록 남편에게 맞고 살았지만, 아이들의 아버지란 존재를 음식으로 섬겼던, 이해할 수 없던 엄마의 행동은 가난 속에서도 우리가 엇나가지 않게 막아주는 거대한 옹벽과도 같았다.







80년대 온 나라를 휩쓸던 아파트 건설 붐이 부산에도 들이닥쳤다. 엄마는 모라동에 5층짜리 아파트가 들어서자 그곳에 마음을 뺏겼다. 이층집에 이어 엄마의 꿈은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같이 세 들어 살던 이웃이 학장동에 가서 철사 공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이웃에게서 학장동에 규모가 작은 신축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곳은 삼정 송림 맨션이었다. 내 아파트라는 꿈을 위해 엄마와 큰오빠는 다시 머리를 맞대고 의기투합했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었다. 일단 엄마와 내 집 마련의 꿈에 함께 탄 큰오빠가 퇴직금을 밀어 넣으며 그 꿈은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둘째 형부가 돈을 빌려주면서 엄마의 큰 그림은 마침내 완성되었다.

삼정 송림 맨션은 산등성이를 따라 지어진 5층 건물에 네 동짜리 소형 아파트인데 멀리서 보면 지네 두 마리가 승학산을 기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아파트 왼쪽에는 이번에도 도살장이 있었고 그 뒤로는 구덕터널이 이어져 있었다. 오른쪽에는 크린랩 공장과 아파트 3층 높이의 두 개의 사료 탱크가 무시무시했던 금성 사료 공장이 있었는데 사료 공장 앞을 질주하던 차들의 징글징글한 뿌연 먼지를 뒤집어써야 시장이든 학교든 갈 수 있었다. 아파트 정문 아래로 좁은 골목길 입구에는 늘 철컥철컥 소리가 나던 박스 공장과 문방구가 있었고 그 아래로는 학장천이 흐르고 있었다. 그 학정천 쪽으로 상점들이 즐비했는데 내가 가기 싫어했던 목욕탕, 엄마가 월급날이면 달려가던 양품점과 내가 매일 채소튀김을 사 먹던 분식 포장마차도 있었다.

삼정 송림 맨션으로 이사 가던 날이 생각난다. 내가 6학년 때였는데 아파트의 준공 검사 승인은 났지만, 조경용 나무가 쓰러져 있고 우리가 길을 만들어 이삿짐을 옮겨야 할 정도로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나동 310호’로 향하는 현관문과 계단은 다행히 멀쩡했다. 3층으로 올라가면 현관을 마주하고 두 집이 있었다. 311호 가족은 네 식구가 모두 동글동글하게 생겼던 원중이네였다.


나동 310호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앞에 화장실이 있고 오른쪽엔 안방과 작은방, 앞 베란다가 자리 잡고 있었다. 화장실 맞은편엔 방이 하나 더 있었고 그 앞엔 부엌과 뒤 베란다가 널찍했다. 거실이라고 할 것도 없는 화장실 앞 좁은 공간은 술에 취한 아버지가 앉아있던 곳이다. 그 집의 독특한 부분은 뒤 베란다 부엌 쪽 벽에 스케치북 크기만 한 쇠문이었다. 그 문을 앞으로 당기면 그 안은 캄캄해서 무서웠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굴 같던 그곳은 쓰레기를 버리면 바닥으로 떨어지는 벽 쓰레기통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하고 환경 문제 따윈 묻어 버린 방식이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도 편리하고 획기적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일요일마다 다 같이 계단 물청소를 했다. 그 물청소는 꼭대기 5층 세대가 물을 부으면서 시작되었다. 일요일에 늦잠을 자다가도 계단에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면 엄마는 바지를 걷고 빗자루를 갖고 나가 바닥을 싹싹 닦은 다음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쏟아부어 아래층으로 내려보냈다. 지금도 계단 물청소할 때 ‘쏴’하는 엄마의 물 붓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사진: 네이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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