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우 장군님, 응원봉 보셨어요? 2

까칠하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DNA

by 수연길모

전시 상황도, 국가 비상사태도 아닌 시국에 비상계엄이라니.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와 무장한 군인들을 보며 국민은 분노와 충격에 빠졌다. 시민들은 국회로 달려가 군인들의 총부리와 장갑차 앞을 막아섰다. 시민뿐만 아니라 장병들도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으며 작전시간을 늦추고 국회 장악에도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시민들은 군인들에게 진입이 막힌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도록 도와주었다.

드디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 처리되어 2시간 만에 계엄령은 법적 효력을 잃었고 오전 4시 30분경 국무회의 의결로 계엄 해제를 선포함으로써 약 6시간 만에 완전히 종료되었다.

8년 전 우리 국민은 국정 농단과 비선 실세 의혹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석 달 동안 차가운 도로에서 밝힌 촛불로 박근혜 탄핵을 이루어 냈다.

2024년 12월 광장에는 또 한 번 촛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대통령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에서도 보기 힘든 계엄령으로 대한민국을 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든 대통령을 끌어내려야 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집회에서는 40, 50대가 주체가 되어 촛불을 들고 평화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러나 2024년 12월 집회 풍경은 MZ세대의 출현으로 달라졌다. 그들의 손에는 꺼지기 쉬운 촛불이 아닌 어디서나 밝게 빛나는 아이돌 팬클럽의 ‘응원봉’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시위현장에는 비장한 민중가요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사라지고 다양한 세대의 애창곡이 흘러나왔다. 젊은 세대는 민중가요를 배우고 중장년층은 아이돌의 노래 가사를 외워 참가했다.

사실 20대, 30대 젊은이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고 개인주의적 성향의 세대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비상계엄이라는 국가적 재앙에 기죽지 않고 SNS를 이용한 연대로 모두가 즐거운 콘서트형 시위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문화에는 그들의 성장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민주화된 시기를 산 첫 세대이다. 가정의 양육, 학교의 교육, 군대의 훈련 방식이 과거와 엄청나게 달라졌다. 한국의 국가 민주주의 지수가 아시아 1~2위를 다투는 시대에 성장한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투쟁의 결과물이 아니라 공기처럼 당연했다.

또한, 이들은 역사상 최초로 한류를 누리며 성장했다. BTS, 블랙핑크, K-드라마, 웹툰 등 한국의 문화가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는 과정을 목격하며 자부심을 지니고 자란 세대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한류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소비하고 재창조하며 글로벌 문화와 기민하게 연결한다. 시위현장에서 울려 퍼진 음악, 춤, 그리고 응원봉은 이들의 성장 배경을 반영한다.

이러한 문화 생태계 속에서 자라난 세대들에게 비상계엄 선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시대착오적 유물이다. 청년들이 광장으로 나와서 응원봉을 들고 K-POP을 부르며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기성세대에겐 문화 충격이지만 그들에겐 생득적 행동 양식이었다.




곽재우 장군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 나서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의 운명 앞에 자신을 내던졌고 위기의 순간에 창의적인 가능성을 찾아냈으며 개인의 부와 명예보다 공동체의 가치를 우선시했다. 나아가 매 순간 현실의 불의와 부조리, 관행과 치열하게 싸우며 임금에까지 소리쳤다.

이와 유사하게 2024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에 참여한 젊은이들도 개인의 안위보다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응원봉을 들고 축제적 분위기 속에서 창의적 연대를 택했다. 그들의 모습에서 곽재우 장군의 불덩이처럼 타오르는 성정이 느껴졌다. 그의 정신은 역사책과 박물관에 박제된 것이 아니라 현재 젊은 세대의 심장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장군의 나라를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마음을 상징했던 붉은 옷은 백성들에게 희망을, 적에게는 두려움을 주었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응원봉은 세대 간 연대의 장을, 민주주의의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보여주었다.

곽재우 장군이 응원봉을 흔들며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후손들을 보면 뭐라고 하실까. 아마 응원봉 보다 더 빛나는 그들의 눈빛을 보며 미소 짓고 계시지 않을까. 백성이 주인이 된 나라를 보며 기뻐하시지 않을까.




*오마이뉴스 24.12.27 '응원봉, 민주주의의 새로운 불빛'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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