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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kki Sep 26. 2017

유럽서 겪은 인종차별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약 일주일간 출장 차 스위스를 다녀왔다.

유럽 방문은 처음이었기에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비록 머물렀던 기간 대부분 비가 와 아름다운 광경을 조금은 놓치긴 했었지만 그들이 보유한 자연은 놀랍도록 멋졌고  이국적인 도시의 풍경도 무척이나 새로웠다. 하지만 나를 놀랍게 한 다른 요인은 바로 중장년층 유럽 사람들이 갖고 있던 생각과 발언이었다. 바로 '인종차별'이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이것은 전적으로 나에관한 이야기며 이를 통해 받은 충격도 전적으로 나의 몫이라는 것을 밝혀둔다. 비록 이 경험들이 나의 시야를 좁게 만들어 버렸더라도 어찌할 수 없다. 감정적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었던 내 속사정의 한탄으로만 듣고 넘겨겨 주길 바란다.

출장의 성격상 세계 각국에서 온 관계자들이 한 데 묶여 다니는 일정이었다. 내가 속한 그룹에는 나, 한국인, 중국인, 러시아인, 뉴질랜드인, 영국인, 네덜란드인, 스위스인이 포함됐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 뉴질랜드인, 러시아인, 중국인은 20~30대 정도로 비교적 젊은 층에 속했다. 나머지 유럽 국적의 사람들은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으로 중장년층이었다. 이들을 '유러피안 중장년층'으로 총칭하겠다. 참고로 동양인을 제외한 모두의 인종은 백인이었다.

미국에서 거주 경험이 있던 나는 막연히 유럽도 미국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동양인에 대한 인식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미국에서는 대도시에서 살았기 때문인지 피부에 닿는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행동은 받아본 기억이 없다. 있는 정도라면 바에서 백인 아저씨가 한국여자가 좋다는 정도? 그치만 일주일도 채 안되는 시간동안 유러피안 중장년층에게 겪었던 발언들을 생각해보면 그걸 인종차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다.

모두가 모인 첫날, 저녁 만찬이 펼쳐졌다.

내 옆 테이블 중 가장 중앙자리에 앉은 큰 목소리를 가진 영국인은 "한국은 개고기를 먹지?"라며 내게 물었다. 순식간에  테이블 내에서 정적이 흘렀다. 이어지는 그의 발언, "나는 특이한 음식들을 먹는 것을 좋아해. 그래서 언젠가는 꼭 개고기를 먹으러 한국에 방문하고 싶어. 난 김치도 집에서 담궈먹지."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피곤한 몸으로 음식을 입에 구겨넣던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사람 모두가 먹진 않아. 나조차도 한 번도 먹어 본적이 없어." 라고 대답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개고기 식용에 대한 확고한 의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굳이 모두가 얼굴을 익히고 알아갈 시간에 한국이 개고기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저의가 무엇인지, 그것이 조롱이 아니면 무엇일까.

그는 개의치 않고 내게 다시 말했다. "너는 요리 잘하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이어서 그는, "한국 여자들은 엄마한테 요리를 배워서 다들 요리를 잘하지 않아?" 도대체 어느 고리짝 시대의 한국을 논하는지 모르겠다. "아니. 나도 못하고 내 주변의 여자애들도 그렇게까지 잘하는 애 없어. 다들 일하느라 바빠."라고 답했다.

그후 그는 별말없이 식사에 집중했지만 나는 그러기가 힘들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는 저 사람의 오만함은 뭘까. 일정 내내 계속해서 그러한 무지로부터 나오는 유러피안 중장년층의 발언들에 어이없음을 몇 번이나 느꼈다.

이번엔 네덜란드인. 그는 한국에 대해 유일하게 아는 것이 '삼성'이었다. 그는 너는 한국인이면서 대체 왜 아이폰을 쓰냐고 물었다. 참고로 스마트폰이 출시된 이래 나는 아이폰을 계속해서 써왔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기종은 아이폰7. 한국인이어서 한국 브랜드를 왜 쓰지 않느냐니, 어이가 없어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그냥 아이폰이 좋다고 답했다.

그는 그치지 않고 내게 물었다. "너네 총리(Prime minister) 부패하지 않았니?" 대한민국은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다. "우리나라 말하는 거 맞니? 혹시 일본 이야기 하는 거니? 우리나라에는 총리가 없어."라고 설명하자, "아니, 맞아. 너네 나라야. 삼성 총수랑 뭔 일 났었잖아." 아하, 또 삼성이 나오는구나. 그래. 이재용과 박근혜. 그제야 감을 잡은 나는 "혹시 탄핵(impeachment) 말하는 거니?" 라고 재차 확인하자 맞댄다.

내게 담배를 몇 개피 빌려갔던 오스트리아인도 농담이라고 다시금 개고기 이야기를 꺼낸다. "너네 개고기 먹잖아." 한숨이 나온다. "아니라니깐 그러네. 요즘 먹지말자고 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아." 이재명 성남시장이 모란시장 개고기 판매를 금지시켰다는 뉴스가 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러자 그는 "농담이잖아. 농담." 내 기분이 무척이나 상해보였던지 돼지나 소나 먹는건 모두 잔인하지, 하며 멋쩍은 듯 말한다. 대체, 아는 사람이 그런걸로 농을 치나 싶다.

마지막 술자리에서 나와 영국인, 뉴질랜드인 그리고 스위스인만이 남았다. 술이 좀 들어갔는지 스위스인이 운을 떼기 시작했다.


다른 그룹에 필리핀-미국인이 있다. 4세대 째 가족이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거지, 궁금증이 들던 순간 그의 입에서 나온 말.

"How can we say he is American?(그 사람을 어떻게 미국인이라고 말할 수 있어?)"

멈추지 않는 그의 발언. "생긴게 필리핀(아시안)인데 어떻게 미국인이라고 할 수 있는거야?" 이어서, "아시아 사람들은 도통 나가면 섞이질 않아. 다들 자기 세계에만 빠져있지."


반박할 힘도 없다. 앞서 말한 영국인조차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이제 국적은 아무 의미 없어. 우리 모두 하나의 국가에서 산다고 볼 수 있지."라며 그를 조용히 타이른다.

결국 그에게 설명을 해야겠다 싶었다. 아시아인들이 해외에 나가서 서로 뭉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언어와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정보의 교환을 통해 서로 힘을 보태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에 자연스럽게 모인 것이라고. 차세대 이민자들의 경우 교육도 많이 받고 점차 그 사회에 동화되고 있다고.

별로 납득되지 않은 표정이다.

주류 사회에서 아시안을 받아줬더라면 아시안들이 아시안들만의 커뮤니티를 이루며 살았겠는가? 단한번도 소수자 집단에 속해본 적 없으니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거겠지. 자신들의 무지를 확실한 지식이라 믿으며 약자만 탓할게 분명하다.

누군가는 내게 예민하다 말할 수 있겠지만, 이런 경험을 처음 겪어본 것이기에 무척이나 속상했다. 같은 자리에 있었던 뉴질랜드인 조차 자신도 무척이나 충격 받았다고 말한다. 나는 그저 "지금이 르네상스인지 아나보지. 자기네들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아나봐."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해외에 나가면 모두가 외교관이 된다는 말이있다. 내가 내 나라를 대변하는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를 보고 열을 판단할 순 없다. 하지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내뱉은 몇 사람들의 국가에 호감이 가지 않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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