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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kki Sep 26. 2017

뚝이가 계속 달렸으면 좋겠다

내 첫 차 이야기

2015년까지만 해도 나는 대중교통 예찬론자였다. 저렴할 뿐 아니라 편리한 환승시스템을 갖춘 대한민국의 대중교통은 사실 아직도 무척이나 매력적이긴 하다. 그 땐 서울 시내 도로를 꽉 메운 자동차들을 보며 '도대체 이 복잡한 도시에 차가 왠말이야'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아니다. 그들의 마음을 백번 이해한다. 출퇴근 시 콩나물처럼 빽빽하게 지하철 혹은 버스에 내몸을 뉘일 때면 생각나는 내 첫 차,'뚝이' 때문이다.

요녀석이 내 첫차 '뚝이'다. 1998년 산 인피니티 I30. 연식으로 치면 할아버지.

2016년. 미국의 한인언론사의 인턴 기자로 한 해를 보냈었다. 부푼 '아메리카 드림'을 안고 출국하기 전, 회사는 내게 자동차와 운전실력을 요구했다. 자유자재로 취재를 나가야하는 직업 특성 때문이란다. 그 때문에 출국 전, 일주일만에 부랴부랴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시동을 걸고, 깜빡이를 키고, 엑셀과 브레이크의 위치를 안다는 것(!)뿐 이었다. 면허를 손에 쥐면서도 '정말 이래도 되는건가' 싶을 정도로 불안했었다. 이런 물시험으로 얻은 면허로 차를 모는 건 택도 없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미국에서 다시 현지 면허를 취득할 때는 필기는 한 번에 붙었지만 실기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었다. 주위 분들의 혹독한 운전 실습 코치 덕에 결국 세번 째에 붙을 수 있었다.

각설하고, 면허 취득과 동시에 차를 구입하기 위해 이리저리 발품을 팔았지만 '아, 이녀석이다'하는 느낌을 주는 차는 없었다. 뚝이를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뚝이는 잠깐 같이 살았던 룸메이트 친구의 차였다.


얼마간 몰지 않아 눈에 뒤덮여있던 뚝이는 시동을 걸자 그 위용을 드러냈다. 일본 고급차 브랜드 인피니티 I30, 1998년식, 빵빵하고 음질 좋은 보스 오디오, 추운 시카고 기후에 최적화된 운전석 및 보조석 열선시트, 깔끔하고 고급진 검정 가죽시트, 밟는대로 막힘없이 나가는 액셀, 그리고 재빠른 브레이크,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

그렇다. 나는 뚝이에게 첫눈에 반한 것이다.

오래된 연식 때문에 들 수 있는 각종 걱정과 달리, 뚝이는 튼튼한 아이로 매케닉에게 특급 인정을 받았고 그 후 나의 미국생활의 발이 되어 주었다.

'뚝이'는 뚝배기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국이 식지 않도록 오래토록 따뜻하게 현상유지를 시켜주는 뚝배기처럼 뚝이 또한 오랫동안 달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지었다. 뚝이는 할아버지 차 답게 운전에 서투른 손녀를 가르치듯 나를 부드럽게 품어주었다.  

사실 처음엔 차를 몬다는 사실이 싫었었다. 좋아하는 술을 어쩔 수 없이 줄어야만 했고, 옆 길로 무자비하게 달리는 차들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뚝이를 모는 당시에 많은 투정을 부렸었다. 주차비도 비싸고, 기름값도 아깝고, 걷질않으니 살만 찐다 등등.. 그럼에도 일 년을 함께해서 였을까. 녀석에게 점점 편해져가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뚝이는 비록 20년이 다되가는 차였지만 내 눈엔 그저 든든하고 멋진 녀석이었다. 고속도로서 시속 70마일로 달려도 짱짱하게 잘 달려주었다. 솔직히 바쁜 일상 때문에 깔끔하게 사용하진 못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청소해주려 노력했었다. 서투른 운전실력 덕에 왼쪽 헤드라이트가 빠져 회색 덕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이고 다녔었다. 지금 생각하니 괜스레 미안하다. 아끼긴 많이 아꼈는데.. 더 아껴줄걸 그랬다.

뚝이는 한국인 신혼 부부에게 넘겨졌다. 그 부부는 취재 때 한번 스쳐지나간 사람들이었다. 나를 믿고 구입한다고 했다. 말인 즉슨, '깔끔하게 관리했을거라 믿어요'다. 괜히 미안해졌다. 그렇게 깔끔하진 못했으니까. 하지만 단순히 내가 깔끔히 관리했을 것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뚝이를 구매하진 않았을 것이다. 시운전 때 느낄 수 있었거든. 뚝이를 운전하던 신랑 분의 반짝이던 눈빛을. 그 또한 점잖은 뚝이에게 반했을 것이다. 그게 뚝이를 구매한 진짜 이유일 것이라 믿는다.

가끔씩, 아니 자주 뚝이가 생각난다. 힘들 때 뚝이와 달리며 신나는 음악을 듣다보면 또 기분이 그럭저럭 풀렸었다. 고됐던 내 생활의 작은 위로였다. 내가 어딜 다녀오든 나를 집 앞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었다. 한 번도 내 속을 썩인적이 없었다. 내겐 정말 자랑스러운 첫 차였다.


더 많이 세차해줄 걸 그랬다. 반짝반짝 광이나면 꼭 2008년 식 마냥 젊어보였는데. 뚝이가 건강하고 오래오래 드넓은 미국 땅을 끊임없이 달려주었으면 좋겠다.

엄청난 눈에 파뭍힌 뚝이. 시카고는 눈이 참 많이 내리던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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