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lish as they may seem
새로운 경험이 많을수록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고 한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 새로운 사건들. 그런 것들이 많을수록 뇌는 그 경험을 세세하게 기록한다. 반대로 매일 같은 루틴을 반복하면 기억은 압축된다. 그러다 어느 날 달력을 보면 몇 년이 통째로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내 최근 몇 년이 그랬다. 마치 자동조종모드처럼. 그걸 신기효과(Novelty Effect)라고 한다.
10년 만에 그리피스에 올랐다.
10년 전에도 이곳에 왔었다. 늦은 밤, 친구 차를 타고 올라가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야경을 한참 동안이나 즐겼다. 라라랜드 개봉 전이라 영화의 여파 같은 건 없었고, 그저 엘에이의 불빛이 아름다웠다.
그때 나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미국에 왔다. 취재기자라는 직업을 갖는 것, 온갖 종류의 사랑을 인정하는 나라에서 사는 것, 큰 물에서 크게 놀아보는 것. 나로서 존재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곳. 그런 것들이 꿈이었다. 그렇게 시카고에서 인턴 기자로 일하며 500여 개의 기사를 썼고, 주말이면 하루에 7~8개의 행사를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새로운 장소를 다녔고, 새로운 사건들을 취재하며 1년을 보냈다.
하지만 결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이켜보니 내가 추구했던 건 대부분 무언가(What)였다. 기자라는 타이틀, 합법화된 환경, 큰 도시라는 배경. 그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How) 삶을 살고 싶은지는 사실 명확하지 않았다. 막연했다. 그곳에 가면 뭔가 될 것 같았고, 그곳에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무언가'는 생각보다 쉽게 바스러진다. 스스로가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타인 혹은 환경에 따라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일상이 시작됐다.
적당히 괜찮은 직업을 가지려 노력했고,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 말을 골라했다.
최대한 내 생각을 드러내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심했다.
또 맹렬히 무언가를 추구하며,
그 과정에서 오래 함께 갈 파트너도 찾았고, 집도 샀다. 객관적으로 보면 꽤 괜찮은 10년이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원하는 건 항상 두 번째, 세 번째가 됐다.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먼저였고, 해내야 할 목표들이 우선이었고, 지켜야 할 것들이 앞섰다.
월요일 아침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 출근했고, 업무를 했고, 저녁을 먹고, 넷플릭스를 보다 잠들었다.
화요일도 그랬다.
수요일도 그랬다.
'무엇을 하고 싶었지?' 어느 순간 문득 자문했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일과 집, 해야 할 일들. 그 외에는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텅 빈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며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다가, 또다시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릴스와 쇼츠 세상으로 들어가 무한 스크롤링을 했다. 그렇게 시간을 죽였다. 그런 '알 수 없음'의 상태를 가지고 이번에 엘에이에 갔다.
다시 그리피스에 방문한 건 동행인의 요청 때문이었다. 석양을 보고 싶다고 했다. 10년 전보다 적어도 다섯 배는 많아진 관광객의 인파에 놀랐다. 아무래도 라라랜드의 여파가 있겠지. 해가 질 때쯤, 격자 모양의 엘에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2월의 캘리포니아는 아무리 햇살이 좋아도 해가 지면 춥다. 그럼에도 어스름한 일몰 속에서 시시각각 바뀌어가는 엘에이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10년 전엔 “이곳에 있으면” 뭔가 될 것 같았다. 무엇이 되는지, 어디에 있는지, 어떤 타이틀을 가지는지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니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매우 컸다. 삶은 하나의 장면이 아닌 매일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수년간 도착점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는 다르고 싶다. 지금은 꿈을 이룬 후의 '어떻게'를 보고 싶다.
매일매일 짬을 내어 거리를 사랑하는 사람과 강아지와 함께 천천히 걷는다.
나의 생각과 일상을 누가 보지 않더라도 -하지만 누가 봤으면 좋겠는 마음으로- 꾸준히 기록한다.
식사는 세련되진 않아도 건강과 맛을 고려한, 집밥을 꾸준히 해 먹고, 이따금 맛집에 들른다.
어딘가에 발 묶이지 않는다. 풍경과 날씨가 좋은 곳에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다.
나에겐 지속성이 부족했고, 어떻게를 꿈꾸는 능력이 거세되어 있었다.
어쩌면 기록하는 것, 그게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을 이뤄줄 수도 있을지 모른다.
이젠 그걸 잡아야 한다. 그게 내 몫이다.
라라랜드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사실 이에 관한 글들은 다분히 감성적이라 최대한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히도 2016년, 또 2026년 엘에이를 다시금 방문하니 자꾸만 2016년 개봉한 라라랜드가 겹치지 않고서야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끝내 함께하지 못했지만 각자의 꿈을 이뤘다. 미아는 배우가 되었고, 세바스찬은 재즈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다. 그들은 꿈을 좇아 엘에이에 왔고, 나는 그저 여행으로 왔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어스름한 석양 아래 내려다본 엘에이는 자칫 불가능해 보이는 꿈도 마구 꾸고 싶게 만든다.
"Here's to the ones who dream, foolish as they may se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