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kki Apr 11. 2018

부산, 온전한 나의 도시

조금 철 지난 나의 이야기


지난해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날, 부산행 ktx에 몸을 실었다. 그로부터 1주일 전, 한 통의 전화와 메시지로 싱겁게 헤어져 버린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만남을 미친 듯이 구걸한 후에야 겨우 볼 수 있었지만 마주친 그 순간 픽, 하고 웃음이 나버렸던 건 아직까지도 모를 일이다. '새로운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그 사람의 말. 자칫하면 내 마음을 수 천 개로 갈라놓을 수 있는 그 말이 허망하게도 생각만큼은 아프지 않았다. 정말 안쓰러운 건 나인데, 외려 울고 있는 그 사람이 안쓰러웠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훌쩍대는 그 사람이 귀여운 막내 동생 같아 괜히 웃음이 나는 건 연인으로써의 애정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조금은 다른 형태의 애정이었겠지.


털레털레 언덕을 내려와 어둠이 내려앉은 길거리에 앉아 친구와 간단한 통화를 마쳤다.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아침부터 거의 아무것도 먹질 못했다.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몸에는 분명 무리가 갔을 터, 택시를 탔다. 습관처럼 이어폰을 꼽았으나 언제 고장 났는지 한쪽이 들리지 않았다. 속이 메슥거려 창을 살짝 열었다.


그렇게 돌아온 후, 방 밖으로 보이는 광안대교를 한참을 바라보며 잠을 청했다. 눈을 감아도 감기지 않는 마음에 한참을 뒤척이다 밤을 새웠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사흘간 내리 부산에 머물렀다. 그때 동안 부산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으며 낯선 이들과의 술자리를 갖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삼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손가락에 껴져 있던 반지와 그 친구가 전해줬던 편지들을 바다에 던지며 그 사람의 안녕을, 그리고 나의 평화를 빌기도 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부산을 방문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개월 뒤, 나는 다시 '부산'땅을 밟고 있었다. 그곳에서 지난해 마지막 일몰과, 올해 첫 일출을 모두 목도했다.


이별 후,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났다. 소주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친구로 나에게 진정한 소주의 맛을 알려준 장본인이다. 지금까지도 종종 그 친구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작은 낙이다. 친구는 실체 없는 외로움과 불안감을, 다소 자조적이고도 염세적인 헛소리를 통해 웃음으로 전환시킬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그 친구의 태도와 유머가 좋다.


다소 힘에 부쳤던 지난해 연말, 우리는 무작정  2박 3일 여정으로 부산으로 떠났다. 늦은 저녁 기차에 몸을 실었기에 1박 2일과도 같은 타이트한 스케줄을 소화해야만 했다. 우리가 계획했던 건 단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먹고 취하는 것. 두 번째는 2017년 마지막 일몰과 올해 첫 일출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계획을 위해 대한민국의 마지막 주막인 부산포를 찾아 카리스마 넘치는 주모를 뵀다. 또한 남포동 언저리에서 친구가 좋아하는 새우를 먹었다.

부산 1세대 문인들의 사랑방이었던 부산포.
껍질 까기가 유난히 어려웠던, 또 그리고 무척이나 비쌌던 꽃새우와 닭새우.

계획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그저 마음 편히 아무데서나 쉬자는 것이 목표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광안리해수욕장을 방문했던 때다. 간단한 산책 후 광안대교를 눈요기 삼아 스타벅스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이날 카페에 앉아 당시 마음속으로 수십 번 고민했던 두 번째 타투를 받기로 결정했다. 2년 전, 1년 간 거주했던 '시카고'를 말이다. 부푼 꿈을 가득 안고 떠났던 곳. 현실과 이상이 수도 없이 부딪쳤었던 곳. 짧지도 길지도 않은 내 인생의 하나의 전환점이었던 곳.


시카고에 거주했던 그 해보다 그다음 해, 그러니까 지난해에 나는 극심한 우울감과 절망감에 젖어있었다. 어쩌면 그게 앞서 겪었던 이별의 가장 큰 사유일지도 모른다.


한참은 앓았던 사랑하고 또 죽도로 원망했던 그 도시를 몸에 각인시켜서 이제는 나를 놓아주고 싶었다. 기억하고 있으니 이제는 괜찮다고. 새해에는 좀 더 단단해지자고 다짐하고 싶었다. 또한 부산이 시카고의 자매도시인 것과 더불어 2017년 마지막 날에 새기는 것도 꽤나 의미를 더하겠다 합리화했다.


검색해두었던 광안리 근처 타투숍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하고 카페를 나와 천천히 그곳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친구와 나는 로또를 샀다. 당첨되면 뭐할까, 헛된 대화를 나누는 사이 타투숍에 도착했다. 타투이스트와 몇 개의 도안을 살핀 후 결정을 마쳤다. 타투를 새기기 위해 분홍색 거적때기로 환복 했다. 그 꼴이 흡사 드래곤볼의 마인부우 같아 친구와 나는 깔깔 웃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옆구리는 무지 아파요. 절대 움직이시면 안 돼요. 그림 다 망가져요."


타투이스트는 왼쪽 옆구리를 비쭉 내밀고 옆으로 누워있는 나에게 신신당부했다. 잉크가 가득 찬 바늘이 윙 소리를 내며 옆구리를 쿡쿡 찌를 때 세상에 이런 고통도 있나 싶어 신선했다. 지난 한 해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타투를 받는 그 순간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이 수만 배는 아파서 앓았던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두서없이 튀어올랐다. 그 속에서 앞으로는 더욱 나아질 것이라는 묘한 확신이 피어올랐다.


시술 후 새까맣게 새겨진 타투가 눈에 들어왔다. 그 후 몇 주간은 피부가 덧나지 않게 끊임없이 약을 발라댔다. 당연하게도 지금, 타투가 새겨진 부위에는 어떠한 통증도 없다. 그렇게 나는 부산에서 시카고와 2017년을 이겨냈다.


2017년 마지막 일몰은 타투를 시술받느라 싱겁게 놓쳐 버렸다. 2017년 12월 31일에서 2018년 1월 1일로 넘어가는 그 순간, 숙소 옥상으로 잠깐 올라가 카운트다운을 마쳤다. 저 멀리 광안대교 언저리에서 폭죽이 터졌다. 광안대교에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따위의 문구가 새겨졌다.


이후 잠을 청했지만 뜨거운 난방 덕에 술이 몇 잔 들어간 상태였음에도 쉬이 그러질 못했다. 결국 의자에 앉아 떠오르는 2018년의 첫 번째 해를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뻑뻑해진 눈을 비비던 그 순간. 걷히지 않을 것 같던 암흑 사이로 밝은 해가 솟았다. 또 한 해가 밝은 것이다.


숙소에서 바라본 올 해의 첫 해돋이.




부산은 온전한 나의 도시이다. 그것이 애초에 내가 지난해 연말 부산을 다시금 방문한 이유다. 부산에는 지나간 사랑, 이제는 잃어버린 우정의 흔적 등 나만의 소소한 추억들이 묻어있다. 즉, 나의 애정 어린 손길이 서린 곳이다.


그렇기에 벚꽃이 흩날리는 지금, 이 봄날에도 나는 부산을 생각한다. 그리곤 미소 짓는다.





 


작가의 이전글 에어비앤비 트립 VS 마이리얼트립 in 태국 방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