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괴로울까

프롤로그

by 요시


"니 아들 같은 애면 열 명도 키우겠다"



장난꾸러기 아들을 키우는 친구가 말했다.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가해니 피해니 따지는 것은 좀 그렇지만 그 친구는 주로 가해 사실로 전화를, 나는 피해 사실로 전화를 받곤 했다. 어느 쪽도 기분 좋은 연락은 아니다.


그렇다면 가해자의 부모와 피해자의 부모 중 누가 더 괴로울까?


물론 둘 다 겪어보지 않은 입장에서 어느 쪽이 더 괴롭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맞고 다니는 아이의 부모 입장에서 겪어 보니 한 가지는 분명했다. 때린 아이의 부모는 괴로워하는 경우보다 아무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애들이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엄마들이 딸에게 하는 말 중 "딱 너 같은 딸 낳아봐라"라는 대사가 있다. 뒤에는 '그래야 내 마음을 알지'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우리 엄마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나는 딱 나 같은 아들을 낳았다.


내성적이라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누군가가 먼저 말을 걸어줘야 친해지는 경우가 더 많은데, 그러다 친해지면 한없이 까불거리는 장난꾸러기가 된다.

사람이 많은 곳보다는 없는 곳을 선호하며, 앞에 나서는 것은 질색, 주목받는 것도 싫어한다.

싫은 소리도 잘 못해서 웬만한 피해는 스스로 감수하고 속상한 일 있으면 혼자 삭히거나 집에 와서 운다. 양보를 하고 싶어서 한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양보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 타인을 배려한다고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내 욕심이나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생각을 표현하기보다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줬으면 하는 기대치가 있는 편이고, 안 알아준다고 해서 실망하진 않지만 누군가 그걸 알아줬을 때 너무 감동해 버린다. 기본적으로 친절, 상냥, 다정 같은 걸 좋아한다.


이게 나이자, 아들의 성향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여자, 아들은 남자라는 것에서 오는 성별의 차이.



나와 비슷한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엄마로서 아이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가 굉장히 쉽다는 장점이 있다. 너무 좋은 장점 같지만 그 부분이 때로는 날 너무 아프게 했다. 아이가 괜찮지 않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착한 아이라고, 쉬운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