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고 하면 멈출 줄 아는 것

by 요시


역지사지(易地思之)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여 봄.



내가 살면서 계속 되뇌는 말이자, 아이에게도 자주 하던 말이었다.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습관을 들일 것.


이런 생각을 갖고 살다 보니 아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순간이 와도 단번에 화를 내는 일은 적었다. 몰라서 그랬겠지. 실수로 그랬겠지. 어쩌다 보니 그랬겠지. 다음엔 안 그러겠지.


그렇게 일 년을 넘기던 어는 날,

아이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그냥... 너무 심하게만 안 괴롭혔으면 좋겠어"



그럼 적당한 괴롭힘은 괜찮다는 뜻일까?


아이의 모든 상황을 지켜봐 온 나로서는 '일상이 괴롭힘이지만 너무 심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로 받아들여졌다.









아이와 같은 유치원 같은 반을 다니다가 같은 초등학교 같은 반이 된 친구가 있었다.


유치원 때부터 소소하게 아이를 괴롭히는 부분이 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첫 초등학교 생활에 아는 얼굴이 있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 친구는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쁜 똑소리 나는 여자친구였다. 같은 단지에 살았기 때문에 유치원 셔틀버스도 같이 타고 다녔는데, 가끔 우산이나 보조가방으로 아이의 가방을 찌르곤 했지만 그냥 아이들 장난이라 여겼다. 그때마다 아이의 부모님도 그렇게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기 때문에 별 문제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은 그 아이 부모님이 일찍 출근을 해야 해서 내가 아이 둘을 데리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놀고 있는 아이들이 귀여워 사진을 찍으려던 찰나 아이가 바닥에 무언갈 떨어뜨려 손으로 주웠는데 그 순간 여자친구가 아이의 손을 밟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뭐지?


손을 밟힌 아이가 아프다고 소리치자 슬며시 발을 치웠다.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내 핸드폰에 찍혔다.


아이들을 차에 태워 보내고 아이의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아이들은 잘 갔고, 애들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이런 일이 있었다고. 그러면서 찍힌 사진을 보내드렸다. 그 아이의 부모님은 너무 죄송하다며, 그런데 아이가 다른 데를 보고 웃고 있는 걸 보니 일부러 그런 건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 그 아이가 아들의 발을 보고 밟은 뒤에 나를 보고 웃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것까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래, 정말 우연히 그런 거겠지, 내 아이가 이런 상황에 처할 수도 있으니 예민하게 굴지 말자.


그 아이와의 2년에 걸친 생활에서 크게 폭력적인 사건은 없었다. 그저 다 소소했다. 아이가 말해준 내용들은 이러했다. 줄을 서면 뒤에서 머리카락이나 옷을 잡아당긴다거나, 아이가 아끼는 물건을 들고 도망치기. 기껏 만들거나 정리해 놓은 무언가를 엎어뜨린다거나 각종 소지품으로 살살 때리는 것들. 소소하지만 내 아이가 원치 않는 행동이었기에 그건 분명한 괴롭힘이었다.


게다가 하지 말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계속하고, 선생님한테 걸리면 혼나기 때문에 선생님이 안 계실 때만 한다고 했다. 유치원에서나 초등학교에서나 어른들이 없는 곳에서만 그런다고. 하면 안되는 행동이란 걸 안다는 뜻이었다.


"엄마, 걔는 나 괴롭히는 게 재밌나 봐."


도대체 이 애매한 괴롭힘 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없앨 수 있는 걸까. "엄마가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괴롭히지 않게 도와줄까?" 물었지만 아이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어차피 선생님이 있을 땐 괴롭히지 않고, 그 외의 상황에서만 잠깐씩이니 괜찮다고.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된다고 했던가.

내 아이는 정말 가마니가 되었다.



"야! 쟤 잡아! 쟤 공격해!!"

여자 아이는 내 아이를 가리키며 소리쳤고 동네 아이들은 모두 내 아이만 공격했다.


잡기 놀이 였을까?

범인 역할을 하는 아이도 웃으며 즐겨야 놀이라 생각한다.



여자 아이는 놀이터 징검다리 위로 도망가는 아이를 뒤에서 잡아당겼다. 티셔츠에 목이 졸리도록 잡아당기는 바람에 아이는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바닥으로 떨어진 아이를 보며 주변의 모든 아이들이 깔깔대고 웃었다. 누구 하나 괜찮냐고 묻거나 손 잡아 일으켜주지 않았다.


사람은 지나가다 실수로 부딪힌 상대에게도 사과를 하고 괜찮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기가 잡아당겨서 높은 곳에서 떨어진 친구를 보며 사과는커녕 즐거워하며 웃었다.


정상인가?

아이니까, 그럴 수 있는 걸까?



그 현장에는 나도 없었고, 그 여자아이의 부모님도 없었다.

우리 집에 놀러 온 동생네 부부가 목격했을 뿐.


나는 동생네 부부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이걸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지?


그 여자아이와 부모님의 입장에서 많이 생각했다. 내가 2년간 지켜봐 온 그 아이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인기 많고 똑똑한 아이, 다른 친구들한테는 안 그러는데 내 아이만 괴롭히는 아이, 나에게도 붙임성 있는 태도로 애교도 잘 부리는 싹싹한 아이. 그런데 도대체 왜, 다른 아이들까지 동원해서 내 아이를 못살게 구는 걸까.


나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장문의 메시지를 작성했다. 상대가 불쾌한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하지만 내 의사는 정확히 전달될 수 있게. 몇 번이나 다듬고 나서야 남편과 친정 식구들에게 먼저 보여주었다. 너무 감정이 드러나진 않는지, 예의가 없진 않은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잘 들어갔는지. 괜찮다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상대측 부모님에게 메시지를 전송했다.


그쪽에서도 정중한 메시지로 답변이 왔고 나는 그걸로 충분했다. 내 의사가 제대로 전해진 것 같았고, 아이에게도 충분히 주의를 주실 것 같았다. 상대측에서는 아이 둘을 직접 만나게 하여 사과를 전하고 싶다 하셨지만 사양했다. 나는 이미 내 뜻을 전한 것으로 되었고, 아이도 원치 않았다. 아이는 그 여자친구를 미워하지 않았다.


나는 이번 일로 서로 불편해지는 걸 원치 않으니 나중에 오다가다 마주치면 그때 웃으며 인사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마무리 지었다. 그 후로 우리는 학교 행사나, 단지 내를 오가며 가끔 마주친다. 그리고 웃으며 인사한다.




어른들도 상대가 뭘 싫어하는지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는데
아이들이다 보니 더 자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도 누군가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상대가 싫다고 표현하면 멈출 줄 아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문제인데 아이나 어른이나 그거 하나 하는 게 어려워서 세상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관계는 언제든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는 마음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