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등에 올라타는 아이들

by 요시



아이들이 하는 행위 중 어디까지가 놀이일까.




아이가 다니게 된 유치원은 요즘 엄마들이 선호하지 않는 유치원이었다. 학습량이 적고 노후된 시설에 재정적 지원이 대단하다는 종교 재단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유치원이 마음에 들었다. 일단 노란색과 초록색이 적당히 섞인 유치원 가방과 원복이 귀여워서 좋았고 오래된 유치원 특유의 마룻바닥이 좋았다. 놀이터에도 우레탄이 아닌 모래가 깔려 있는 점이 좋았고, 공부를 시키기보다는 놀이가 우선인 부분도 너무 좋았다.




하지만 내 마음에 쏙 들었던 그 유치원에서, 아이는 많이도 울었다.









"야, 기어가봐"



이 말을 듣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 알게 되었다. 유치원 친구가 자신의 등에 탔다길래 어떻게 한 건지 엄마한테 똑같이 해보라고 했더니 쭈뼛쭈뼛 내 등에 올라탄 아이는 저런 말을 뱉었다. 일곱 살 때였다.


남편은 눈이 돌면서 당장 유치원에 전화해서 CCTV를 보여달라고 요청하라면서 내가 안 하면 직접 찾아가겠다고 난리였다. 남편은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그런 사람이 화가 나면 주변 공기까지 서늘 해질 정도로 무섭기 마련이다. 정말 유치원을 뒤집어엎어버릴 것 같아서 겁이 났던 나는, 내가 잘 얘기해 볼 테니 일단 기다려 보라며 화난 남편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하지만 그런 나라고 마음이 평온한 건 아니었다.


유치원 친구들이 아이의 등에 올라탄 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아이가 처음 친구가 등에 탔다고 했을 나는 대체 누가 등에 타냐며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근데 아들 TV 강연에서 최민준 소장님이 아주 똑같은 예시를 드는 게 아닌가. 아이가 누군가 등에 탔다고 할 때 엄마들은 다들 누가 등에 탔냐며 놀라 반문하지만 아이가 원하는 반응은 힘에 대한 인정의 말이라고 말이다. 무거운 친구를 등에 태웠다는 힘에 대한 인정. 남자아이란 정말이지 여자인 엄마가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최민준 소장님의 강연을 통해 남자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다음에 또 아이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힘에 대한 인정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도 한 번 더 아이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친구가 등에 올라탔다고. 나는 지난번 강의도 생각나고 해서 "정말? 친구를 등에 태울 수도 있고 정말 힘이 많이 세졌네!"라고 말해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등에 올라타는 것이 놀이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강연 내용의 영향도 있었지만 나도 어릴 때 친구들이랑 바닥을 기어가기도 하고 서로의 등에 타고 놀기도 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내 아이가 했던 건 놀이가 아니었다.



다섯 명 중에 네 명이 재미있다고 해도 나머지 한 명이 즐겁지 않다면 그건 놀이라고 할 수 없다. 게다가 그 한 명은 즐겁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는 유치원 생활의 절반이 지나서야 내 아이가 그 한 명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언젠가부터 자주 울었다. 하원하고 몇 번 유치원으로부터 전화도 받았다. 주로 아이가 친구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어서 울었다는 내용이었는데 유치원에서는 해당 아이에게 주의를 주셨다고 했고 크게 폭력적인 사건들도 아니었다. 엄마 입장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있는 게 속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선생님이나 상대 아이의 부모에게 뭐라고 할 정도의 큰 일도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내 품에 안겨 한바탕 울고 나면 괜찮다고 하는 아이를 위해 충분히 마음을 다해 안아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온갖 책을 들여다보며 아이의 내면을 단단하게 해 줄 방법을 고민하는 것 정도.



어느 날은 유치원에서 가을 운동회를 열었다. 남편은 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해서 나 혼자서 운동회에 참석했다.


그 당시 아이를 괴롭히는 친구들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었는데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다들 친해 보였다. 그래서 그 무리가 아닌 우리 아이를 괴롭히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그 무리에 들어가서 친해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찌어찌 운동회는 즐겁게 마쳤는데 아이가 더 놀다 가고 싶다고 하여 우리 둘은 공원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목이 마른 나는 흙바닥에서 나뭇가지를 모아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아이를 혼자 두고 근처에 있는 자판기로 음료수를 뽑으러 갔다.


잠시 후 음료수를 손에 들고 아이를 향해 걸어가는데 다른 아이들이 아이 주변에 가서 말을 거는 게 보였다. 평소 아이를 괴롭힌다는 유치원 친구 두 명이었다. 거리가 있어서 뭐라고 말하는지 들리진 않았는데 아이가 우물쭈물하며 뭐라 대답을 하자 그 아이들은 피식 웃더니 발로 아이가 만든 나뭇가지 일부분을 차서 망가뜨려버렸다. 순간 아이는 화도 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음처럼 서 있었고 그 아이들은 킥킥대며 유유히 자신들의 가족이 있는 자리로 사라졌다.


유치원에서 늘 저런 모습인 걸까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달려가서 음료수캔으로 그 애들 머리통을 내리쳐버리고 싶은 욕구가 없던 것도 아니다. 그 애들 멱살을 잡고 부모들 모인 자리로 끌고 가서 자식 교육 똑바로 시키라고 소리 지르고 애를 내팽개치고 싶었다. 솔직한 마음은 그랬지만 나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달라질 부모와 아이들이었다면 애초에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당장의 상황보다 더 심해질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한참 멍하니 서있던 아이는 이내 다시 쭈그리고 앉아 만들기를 시작했다. 나도 조용히 아이에게 다가가 망가진 나뭇가지를 다시 세워주고 음료수를 주며 즐거운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아이도 바로 나를 보며 웃었고 그 미소에 내 화도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넘겨서는 안 되는 일이었을까.



어느 날 아이가 "엄마, 나는 그림을 왜 못 그려?" 하면서 대성통곡을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유치원에서 무언가를 그리면 친구가 와서 "이게 뭘 그린 거야? 진짜 못 그린다, 하나도 안 똑같아"라고 말하고, 만들기를 하면 "그게 뭐야? 진짜 못 만든다"라고 한다고 했다. 블록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놓으면 와서 부숴버리고 그래서 다른 장난감을 갖고 놀면 와서 뺏어간다고 했다. 반에 아이가 유독 좋아하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랑 놀거나 줄을 서있으면 아이들이 와서 그 친구를 데려가버린다고도 했다. 그 친구가 원래 그들의 무리였기 때문일까. 더 심한 건 아이의 양 어깨를 잡고 정면에서 푸레질을 해서 얼굴에 침을 튀게 하고, 바닥에서 놀고 있으면 등에 올라탄다고 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날이 "야 기어가봐"를 듣게 된 날이었다.




일곱 살은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친구에게 어떤 행동을 하면 안 되는지 충분히 아는 나이다.


꼭 피가 나고 뼈가 부러져야만 폭력은 아니다.





유치원에 갔다.




"이 아이는 걱정할 게 하나도 없는 아인데...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집에서는 별 말 없나요?"



걱정할 게 하나도 없는 아이를 친구들은 왜 그렇게 괴롭히는 걸까. 하지 말라고 하는데 왜 계속하는 걸까. 선생님 말씀을 듣는데 그냥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괴롭히는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바로 제지해 주시고 혼내기도 하신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는 없기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그럴까 봐 걱정이라고 하셨다.


실제로 매일 같이 혼나기 때문에 웬만한 괴롭힘은 그냥 별말 안 하고 넘어간다고 아이가 제 입으로 얘기했다. 나는 친구가 너무 혼나는 게 안타까운 마음에 본인이 괴롭힘 당하는 것도 참는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하지만 나라도 그럴 것이기에 할 말이 없었다.


내 아이를 괴롭히던 아이들 사이에는 주도하는 한 명의 아이가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그 아이는 내 아이를 괴롭히는 것 말고도 이래저래 지적을 많이 당하는 아이라고 하셨고 해당 아이의 부모님한테도 일이 있을 때마다 말씀드리기 때문에 다 알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 반복되는 걸까.


남편의 의견에 따라 CCTV 공개도 요청했지만 유치원에서는 뭐가 곤란한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고 그쪽 부모님들께 다시 한번 주의를 주겠다고만 하셨다.


이 얘기를 들은 주변 지인들로부터 괴롭힘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으니 상대 아이 부모님의 연락처를 받아 직접 이야기해 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아무래도 유치원 측에서 상대 부모에게 강하게 얘기할 수 없을 거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하며 유치원에 문의해 보았지만 연락처는 받을 수 없었다.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나는 상대측 연락처를 받는다고 해도 먼저 연락할 자신이 없었다. 서로 불편한 상황을 만드느니 자신이 그냥 감수하는 사람. 나도 아이도 그런 사람이었다.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었고 선생님은 매일같이 사진과 함께 아이 상태를 전달해 주셨다. 사진 속 아이는 항상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이젠 정말 괜찮아 보였다. 나는 담임 선생님이 내 아이에게 너무 지나치게 신경 써주시는 것 같아 특별한 일이 생기면 그때만 연락 주셔도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 후로는 내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고 아이가 우는 일도 없었으며 그렇게 그 아이들의 괴롭힘은 사라진 것 같았다.




문제는 그 아이들의 괴롭힘만 사라졌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