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다시 만나러 올게.
사람들은 무언가를 버리기 위해, 혹은 버렸던 마음을 다시 줍기 위해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잊기 위해서 섬을 찾아온다. 그래서 올 때마다 제주는 새롭고, 또 낯설다고 말한다.
하지만 십 년을 지내왔던 내가 느꼈던 사실은 오로지 하나,
변한 건, 풍경속의 사람들 뿐이라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섬은 언제나 그대로였고, 변한 것은 나 였다.
연애, 를 시작했을 때 둘이 나란히 보았던 제주의 바다는 잔잔한 호수처럼 윤슬이 아름다운 지중해였다.
아무리 폭풍우가 몰아쳐도 태풍이 와서 쓸려나가도 회오리치는 그 쓰레기조차도 아름다워 보였다.
마치, 우리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이게 해준 제주라는 섬은 그때
내게 이국의 섬처럼 아름다움,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나고, 혼자가 되었을 때
제주의 바다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그저 삭막하고 거친 쓸모없는 지평선 그것 이상도 아니었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사람 한 명이 풍경속에서 사라졌을 뿐인데
그랬다. 정말로 바다가 이유없이 싫고 미웠다.
-나는 여기 왜 왔을까?
그렇다고 육지로 훌쩍 떠나지도 못했고 도망갈 수도 없었다. 고작 가봤자 섬안의 섬, 이었다.
나는 여전히 나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고 섬안의 섬, 에서 바라본 제주도는 아득하게도 멀었다.
-여기에 같이 왔었잖아. 사랑한다고 했었잖아. 같이 해줄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왜 없어? 왜 나를 두고
떠났어? 여기에 ... 여기에 나와 너의 아이가 있는데.
사랑이 전부라고 믿었던 그 시절에는, 그가 버리고 간 티셔츠를 주워들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 그가 아니면 안될 것 같았고, 그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내 아이가 있어서 언젠간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고, 아이가 있으니까 버림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떠난 사람은 떠난 것이었다.
-도망가는 것 같아.
제주를 떠난다는 건, 내게 자존심의 문제였다.
모든 게 변했어도 나만큼은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남아서 버티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곳을 사랑해.
사랑하니까 섬이 주는 평화를 내 속에 묻고 오랜 시간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떠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아이와 내 삶을 위해 용기를 냈고, 제주는 이제 마음속의 고향으로 남았다.
-제주 가고싶다.
-살아보니 어땠어?
주변 사람들이 가끔씩 묻는다. 그럴때마다 나는 그 시절의 섬을 떠올려 본다.
그 시절의 제주는 내 아픔이었고 사랑이었다.
나는 당신을 버리고 떠나왔으나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는 애처로운 나의 사람.
-엄마, 내 고향은 제주도야?
-응. 너는 아름다운 제주 섬에서 태어났단다.
지금의 내가 제대로 성장하지 않았다면 이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아팠던 그 과거를 뒤로 하고 앞으로 걸어나간다.
언젠가 다시 과거와 마주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