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떠나는 자의 뒷모습이 꼭 아름다워야 할까?
나도 오래 다니고 싶었다.
두번은 내 의지로, 한번은 회사가 망해서, 한번은 팀이 망하면서 난 곧 4번째 퇴사를 앞두고 있다. 퇴사를 3일 앞둔 이 시점에서 나름대로 내가 겪어온 퇴사의 품격을 3가지로 요약 및 정리 해봤다. 다른 분들에게 참고가 되길 바라며, 아직 애송이인 나에게 추가적인 조언을 주신다면 3일 동안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1. 나가는 그순간까지 밀땅의 끈을 놓지마라.
'타이밍 효과'는 퇴사 순간에도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이번 퇴사에서 내가 가장 부족했던것 역시 1번.
밀당의 끈을 놓아버린 탓에 나는 한달치 추가 월급을 못받게 됐다.
회사는 우리팀이 하던 사업을 접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사업을 하는 기관에게 사업의 일부를 넘기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5명중 일부는 잔류, 일부는 바로 퇴사, 또 일부는 그 기관으로 이직이 결정 되었다.
초기에 나의 위치는 그 기관으로 이직을 제안 받았다. 처음에는 '뭐 그래 경력도 좀 있으니 가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는게 정말 맞을지 슬슬 고민이 시작됐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까치가 물어다 준 소식을 듣고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서 다른 기관으로 넘어가는걸 포기했다. 아니 사직하겠다고 말했다. 이순간 나의 1번 '타이밍 효과'는 이미 날아갔다. 이틀동안 너무 많은 고민을 하면서 나 스스로가 위축됐고,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내가 먼저 정리하고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를 부지런하게 만든건 '분노'의 역할이었다. 어느 누구도 내가 다른 기관으로 넘어가서 하게 될 일을 명확히 이야기해주지 않았고, 처음 전달받은 이야기는 100 순수 허구를 자랑하는 뻥이었던 탓에 나름 경력직이라 내 커리어를 중시 여겼던 직장생활에 분노가 활활 타올라 밀땅의 끈을 놓아버렸다.
퇴사를 밟고 있다면 좀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최대한 머리를 굴려서 회사로부터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자.
#2. 그래도 우리 편이 한명은 있다 - ☎ 1350
회사에 앉아있지만 막막했다. 1달치 월급을 더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내 분노가 밀땅의 끈은 끊어졌고, 나에겐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친하게 지내던 지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방법이 없을지 문의했다. 마음적으로 많은 위로를 해주셨고, 신고는 어렵겠지만 정황을 설명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들을 수 있지 않겠냐며 1350에 전화해 보라고 말씀하셨다.
휴대폰을 켜고, 다이얼을 누른뒤 꾹꾹꾹꾹 1350을 눌러 통화를 걸었다. 자 마음을 차분히 갖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그런가? 같은 말인데 참... 와닿게 말씀해 주신다. 하지만 결론 어렵다고.
기관에 전화하는 일은 자칫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겪고 지나보내야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내가 해내야 하는(나를 위해) 일들이 많아진다. 이것도 그중에 하나다. 물론 해결된 것은 없지만, 상황이 명확해졌고, 나는 더이상 한달치 월급을 더 받기 위해 억울해 하지도 몸부림 치지도 않을 것이다.
#3. 가장 중요한건 빙썅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는 말은 퇴사자에게도 해당된다. 나가는 마당에 회사에 하고 싶은 말이 차고 넘치게 많을거라는걸 나도 안다. 나도 같은 마음이니까. 하지만 다 말할 수도, 그렇다고 하나도 말 안하기엔 참 억울하다.
그래서 우리 민족에게는 해학적 요소와 21세기에는 빙썅 (빙그레 썅년)이라는 소중한 자산이 있다. 하고 싶은 말 중 몇개를 골라보자. 그리고 그 말에 빙썅을 덧붙일 수 있는지 함께 고려해서 골라야 할 것이다.
빙썅의 예를 들자면 이런거다.
"혹시 저는 퇴사할 때 이걸 받을 수 있나 싶어서요. 아~ 아 네 그렇구나. 다른 분들받는다고 하더라구요. 아 네네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궁금해서 여쭤봤어요^^" -> 웃는 이모티콘 빠지면 안됨
"회사 방침은 언제 내려오나요? 퇴사가 얼마 안남았는데 언제 이야기해주실 꺼죠? 하루 빨리 답변해 주세요. 아 뭐 그렇다고 제가 님을 쪼으려는 그런 의도는 없으니까 꼭 전달 부탁드려요~" -> 여기에서 느낌표 아주 중요
이모티콘은 누가 만든걸까. '아~' 이런 추임세는 어느 멋진 조상님이 만드신거지? 정말이지 이분들 없었으면 나의 퇴사 과정은 암흑, 정적, 눈 밑에서 빠지지 않는 다크서클처럼 내 숨통을 쥐어 짰을지 모른다. 물론 회사도 나에게 섭섭하거나 억울한 부분이 있을거라 생각한다. 뒤에서 차가 와서 박아도 쌍방과실이듯 모든 일은 양쪽이 맞닿아야 문제가 되니까. 그래서 빙썅이 더 중요하다. 퇴사하는 마지막날 1분 1초까지 같은 공간에서 숨쉬고 이야기를 나눠야하는데... 적어도 그 곳에서 숨이라도 제대로 쉬고 싶다면 빙썅의 미덕을 믿고 꼭 실천에 옮겨보시길 바란다.
나는 2번의 퇴사에서 빙썅을 1도 못해봤다. 마지막날까지 상사와 복도에 마주치는 것도 무서웠고, 양치를 하러 화장실에 가는 것도 시간을 피해서 가야만 했다. 또 한번은 마지막날 1시간 추가 근무를 하고 도망치듯 회사를 빠져나오기도 했는데... 이것 또한 나의 퇴사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일것이다. 미리 빙썅을 알았더라면 좀 더 나은 퇴사를 했을지 모르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퇴사할 땐. 꼭. 빙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