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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준 Jan 11. 2021

대형 고분 발견 소동

얼뜨기 인디아나 존스

쓸 이야기를 줄이고 줄여, 툭하며 쏘다니던 습관은 운전으로 바뀌었다.
메타세콰이아 숲길을 달리던 중 저 멀리 공사장 주변 낮은 언덕이 보인다. 언덕 앞엔 그 어떤 설명문도 경고문도 없고 풀만 무성했다. 순간, 나는 저 것이 이 시대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제 막 드러난 고분이 아닐까.

고분 주변을 둘렀던 도랑의 흔적, 지배자가 묻힌 정도만큼은 큰 규모, 오래되고 무성한 풀. 게다가 영산강 주변에서만 보인다는 특유의 무덤 양식. 역사학도가 된 지 10년이 흐른 때였고, 내 모든 지식, 아니 감각은 그것이 이제껏 발견되지 않은 고분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어제도 울적하여 홀로 함평, 무안으로 가던 길에, 대형 고분을 보기도 했었지.

문화재청도, 박물관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그걸 내 눈으로 처음 본 것이다. 머릿속엔 진시황릉, 트로이 유적 발굴 등 그 찬란하고 감격스런 풍경이 끊임없이 흐르고, 겹친다. 중학교 역사교사가 삼국 시대 고분을 발견. 수많은 학자와 대학생들이 모여 든 가운데 발굴 당시를 이야기하는 내 모습과, 고분 속에서 유물이 나오면, 또 아이 유골이 나오면 내 이름을 따서 'ㅇㅇ아이' 라고 붙여야지, 하는 등.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저 옆에 집을 짓고 살아야지, 하며.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꼬박 하루를 기다려야 박물관이나 관공서에 연락할 수 있다. 흥분된, 공명심이 휩싸인 가슴을 부여안고서 난 홀린 듯이 산에 올랐다. 그 산 꼭대기엔 옛 성벽이 남아 있다고 하여, 이미 유적에 도취된 탓인지 또 유적에 홀리고 말았다. 내려오다 미끄러졌고, 발이 몹시 아팠다. 그 순간 나는 내가 구두를 신고 있었던 걸 깨달았다. 그건 취업, 곧 임용 합격을 기리며 선물받은, 아끼는 구두였다.

구두는 수선할 수 없다고 한다. 점원은 내가 평소에 구두 관리를 안 했냔 듯 얘기했다. 아, 구두 하나 챙기지 못할 만큼, 난 일상을 팽개쳐 둔 채 환상 같은 것만 쫓으며 살아 왔던가. 구두가 그런 내 대신 찢어진 듯이 느껴졌다. 추억해야 할 것이 하나 늘어 버렸구나.

하루가 지났다. 의기양양한 나는 교무실에서, 교실에서 어제의 고분 얘길 떠들어댔다. '최초'라는 건 이토록 사람을 광기에 휩싸이게 한다. "고분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그 한 마디를 하는 내 목소리는 푸르르 떨리고 있었다. 모든 역사학도가 꿈구는 그 낭만, 그 영광이 지금 시작될 것이었다. 학생들도 저렇게 빛나는 선생님 눈은 처음 본다면서. 직원은 나의 이름과 직업, 발견 장소를 물었고, 그 대답은 그리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

수업 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저 궁금해하는 학생들을 뒤로하고 잠시 복도로 나갔다.

3년전,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공사하는 과정에서 고운 흙만 쌓아 둔 것, 그것이 고분의 정체였다. 다만, 자기들이 봐도 고분같더란 얘기를 했다. 일종의 위로인 셈이다.

교실은 뒤집어졌다. 마치 거짓말이 탄로난 자의 미소를 띠며.

미치도록 좋아하는 게 있냐. 있다면 삶은 재미없지 않고, 살아갈 가치는 있다. 난 내 감각을 믿었다. 그리고 자신있었다. 비록 실패했지만, 망신당할 게 두려워 가만히 있기보단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 도전하는 모습을 너희들에게도 보여 주고 싶었다.

항변이 길었다.

지난 10년간의 여행과 지식, 고분같이 생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릴 만큼은 성장했다. 그러나 3년 전의 흙과 1500년 전의 흙은 아직 가리지 못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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