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義湘)이 창건한 절로 잘 알려진 영주 부석사. 이곳에는 그 유명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배흘림기둥이 무량수전을 떠받치고 있다. 무량수전을 서쪽으로 돌아 나가면 뜬바위, 곧 부석(浮石)이 있다. 크고 작은 바위 위에 거대한 바위 하나가 위태롭게 올라타 있는데, 바위들 사이에는 제법 틈이 벌어져 있어서 때로는 떠 있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부석사'라는 절 이름 또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부석사 뜬바위 ⓒ박용준, 2022.
『송고승전(宋高僧傳)』에 따르면, 의상이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배를 타고 신라로 돌아갈 때에 그를 흠모하던 선묘(善妙)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러나 선묘는 용이 되어 의상이 뱃길을 건널 때 수호하였으며, 의상이 부석사를 세우려 할 때에는, 이미 이 일대를 차지한 5백여 권종 이부(權宗異部)의 군승(群僧)들을 큰 바위를 띄워 워협하여 모조리 쫓아내 버렸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어찌되었든 의상이 부석사를 세운 것은 저 거대한 뜬바위와는 결코 떼어내어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런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부석사보다도 뜬바위가 훨씬 더 오래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뜬바위는 부석사를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부석사야말로 저 뜬바위를 지극히 의식하여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뜬바위를 바라보면 마치 거대한 고인돌처럼 보인다. 이처럼 큰 바위들은 원시 이래 종교적으로 숭배되었다. 『송고승전』에서 의상이 여기에 오기 전에 이미 자리잡고 있었던 '군승'들은 화엄종 개창 이전의 승려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나 아무튼 의상 이전에 이미 이 일대는 어떤 의미에서 종교적 중심지였으며, 거기에는 이 뜬바위가 있었다. 부석사, 혹은 그 이전에 절이 세워졌다고 해도, 여러 사람들이 모인 까닭은 거대한 바위를 제외하면 그밖에는 아무래도 생각하기 어렵다.
부석사 뜬바위의 벌어진 틈 ⓒ박용준, 2022.
의상은 아마도 이곳에 부석사를 세워, 거대한 돌을 숭배하는 기존의 원시 종교를 불교, 그 중에서도 화엄종으로 대체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방법은 기존의 성역을 대체하기 위해, 이를 둘러싼 넓은 일대에 새로운 성역을 만들어 덧씌우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거대한 돌을 중심으로 한 종교 공간보다도, 부석사 경내는 훨씬 거대했으리라. 『삼국유사』에는 신라에서 절이 세워지던 초기에, 굳이 천경림(天鏡林)이라는 공간에 절을 세우려던 내용들이 자주 나오고 있다.
원래는 그 스스로가 숭배의 대상이었던 뜬바위는, 굳이 뜬바위라고 불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숭배받을 만큼 거대한 바위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바위 역시, 부석사가 창건되면서 그 스스로도 부석사의 일부가 되었다. 부석사 창건 설화에서 바위는 오직 부석사를 세울 목적으로만 움직였다. 그 시점에서 바위는 있는 모습 그 자체만으로는 더 이상 신비스러운 존재가 되지 못하게 되었으리라. 굳이 공중에 뜨는 이야기가 덧붙여진 것은, 그런 이야기도 없이 그저 크기만 큰 바위만으로는 크게 의미를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뜬바위라는 명칭도 그 즈음에서야 만들어졌을 것이다.
선묘의 존재도 이러한 점에서 살펴볼 만하다. 선묘는 자결한 후 먼저 바다의 용이 되었으며, 그 후에는 허공에 큰 바위를 띄웠다. 공교롭게도 부석사는 마치 선묘가 변한 용을 연상하게 하는 석룡(石龍)이란 암맥 위에 만들어졌다. 이 또한 원시 종교의 대상이었을까. 그리고 선묘가 띄웠다는 뜬바위는 부석사의 금당인 무량수전의 서편에 있다. 설화 속에서 부석사는 선묘의 도움으로 만들어졌지만, 실제로는 선묘로 상징되는 석룡과 뜬바위라는 거대 암석들이 위치하였다.
이와 같은 악조건을 건축 과정에서 극복하면서 부석사는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리 해야할 만한 이유, 곧 원시 종교를 불교, 특히 화엄종으로 대체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굳이 이곳에 어렵게 절을 세우고 나서야, 거대 암석들은 독자적인 원시 종교적 권위를 잃고서 석룡과 뜬바위라는, 선묘라는 인격, 그리고 불교적 성격을 부여받았을 것이다.
문득 생각이 드는 것은, 뜬바위 뒤에 위치한 더욱 거대한 암벽이었다. 울산의 반구대, 혹은 천전리를 떠올리게 된다. 이 또한 원시 종교의 대상은 아니었을까. 한번 시작된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