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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준 Jan 13. 2021

알베르 카뮈, <페스트>

본격 코로나 시대의 책읽기

독서모임에서 <페스트>를 읽던 시절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 도시에서 머뭇거리던 시절의 일이었다. 추가 확진자가 당분간 나타나지 않던 시절이었고, 모두에게 마스크를 쓰고 모일 것을 주문했다. 다섯 명이 카페에서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웅얼웅얼하는, 다소 기괴한 분위기로 모임은 진행되었다. 문득, 미래에 인류가 전염병의 위협이 상존하는 가운데 살아가야만 한다면, 미래의 모임들은 이렇게 이뤄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팬더믹 시대의 책읽기를 하고 있었다.
 
페스트를 듣고, 볼 수 있던 오랑의 시민들과는 달리, 이 도시에선 코로나를 보거나 들을 수 없다. 여전히, 의사와 간호사의 일처럼 느껴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무력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는 갇혀 있다. 우리를 막아서는 건, 도시의 감염 규모가 아닌, 감염의 가능성이다. 봉쇄되지 않아도 ‘벽’은 도시의 곳곳에 세워지고 있었다. 비명소리와 신음소리는 들리지 않은 채로, 늘어가는 피해자-확진, 자가격리, 사망의 규모에 사람들은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었다. 마치 오랑 시민들이 신음 소리에 무감각해지듯 말이다. 마스크의 부족과 혈액의 부족도 걱정이나, 그것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무감각이라는 이 경향이다.
 
생각보다 페스트가 크게 와 닿은 작품은 아니었다. 그것은 핑계겠지만,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절멸에 가까운 위기를 묘사한 <페스트>라 할지라도, 아니 그 어떤 문학도 실제의 가벼운 재난보다는 훨씬 가볍기 때문일까. 재난문학인 <일본침몰>이 어느 현(縣)의 경미한 지진을 넘어설 수 있다곤 생각하기 어렵다.
 
작품과 현실의 안팎을 드나들며 가 보자. 작품 속 소문의 전파는 사람들 사이가 고립되어 있다는 것(고립성), 그러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연결성)을 보여 준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정보통신 기술의 수준으로 인하여, 소문은 이미 그 고립성을 완전히 상실하였고, 연결성만 극대화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이 존재한다면 신부(神父)는 필요없다고,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리외는 말했다. 과연, 사람들은 성 로크를 찾았으나, 그 성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성 로크가 데리고 다녔다던 개는, 페스트의 등장과 동시에 모습을 감춰 버렸다. 페스트는 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일임을, 어쩌면 신이란 무력하다는 것을 이후의 파늘루 신부와 수많은 시민들의 행적으로 카뮈는 역설하고 있었다. 평상시에도 무고한 자를 가리지 않는데, 재난이라고 마찬가지겠는가. 신의 징벌이든, 축복이든, 신이 없든, 이는 중요하지 않았고, 어차피 공평하지 않았다.
 
재난에는 승리가 없으며, 그것은 그냥 지나갈 뿐. 그야말로, 페스트는 끊임없는 패배일 뿐이다. 페스트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페스트를 이겨냈다고 승리가 아니며, 질병과 죽음은 되돌릴 수 없다. 이 시대에는 성 로크같은 영웅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전통적인 영웅상은 사람들이 제 할 일을 하도록 이끌기보단 그저 자신을 응원하도록 만드는 이들이었다. 자신의 행복을 지키고, 불행을 거부하는 것은 박애주의자와 이기주의자의 공통점일 뿐, 둘을 다르게 하는 것은, 행복을 함께 누릴 이들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설정하는가 하는 것이다.
 
신문기자 랑베르야말로 이를 나타내는 인물이었다. 그는 아내를 파리에 두고 온 이방인(카뮈의 명작 중에 <이방인>이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이고, 도시와 자신의 운명은 분리되어 있다고 느낀다. 그를 바꿔 놓은 말은,“사람은 다 그래요. 기회를 주기만 하면 되죠.”라는 말. 최규석의 <송곳>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왔는데, 카뮈의 영향이었을려나. 이 말에 랑베르는 도시와 운명을 함께 하고자 마음먹는다. 오히려 성 로크같은 인물이 있다면, 타루일 것이다. 모든 죽음에 책임을 지고, 그 죽음이 모두에게 닥쳐올 때 그가 보였던 행동. 모두가 영웅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며, 영웅만 쳐다보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여전히, 영웅은 그 스스로 영웅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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