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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준 Jan 25. 2024

번역은 '부재하는 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것

번역의 의미와 역할

번역이란 외국어로 된 텍스트의 문장을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옮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가령 일본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것은, 어쩌면 거기서부터가 번역의 시작이다.

한때 번역 대상은 모든 텍스트였다. 오늘날은 지식ㆍ기술의 발달로 모든 텍스트를 번역해야 할 필요는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번역을 필요로 하는 텍스트들이 있다. 어떤 텍스트들에는 결코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서사들, 관점들이 있다. 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이라는 서사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기에 일찍이 일본에 존재하지 않았고, 거기 존재한 이후에도 한동안 한국에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한 적 없었던 것에 대한 관점을 정립하는 것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부재하는 존재'들이 역설적이게도 '지금, 여기'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번역은 '지금, 여기'에 '부재하는 존재'-아직 번역되지 않은 존재들을 '존재'하게 하는 작업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존재하게 되는 데는 그 맥락이 필요하다. 그런데 때로 맥락은 텍스트 그 자체이기도 해다. 그런 텍스트는 압축하거나 일부만을 잘라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텍스트는 전체로서 번역되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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