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남 Oct 20. 2022

34. 쉬었다 갑시다: 휴(休)

_게으름 귀신과 대화하기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오래전 TV 광고에 등장해서 유행했던 말이다. 우리는 늘 바쁜 일상에서의 탈출과 휴식을 꿈꾼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옛날에도 일과 쉼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영조 때의 이덕수 (1673~1744)는 힘이 부치면 쉬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라고 말했다.

     

피곤하면 쉬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오래 빨리 가다 보면 말이 힘들고 하인은 지치니 쉬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요, 노역을 많이 하다 보면 몸이 피로하고 기운이 헐떡거리니 쉬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바람과 파도에 시달리는 사람은 강가 언덕에서 쉬고 싶고, 도롱이를 입은 사람은 나무 밑에서 쉬고 싶고.......    

  

김홍도_새참

 그렇지만 사람들이 부귀와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쉽게 쉬지를 못한다며 조선 초기의 강희맹은 이렇게 표현했다.     


사람은 쉬지 않는 것이 병인데, 세상은 쉬지 않는 것을 즐거워하니 어찌 그러한 것일까...... 백년도 못 사는 인생, 끝없는 우환을 겪어야 하지 않는가. 이것이야말로 세상 사람들이 우환에 시달리면서도 끝내 쉴 기약이 없는 까닭이라네.     


옛사람들은 자신의 별호나 정자에 휴休라는 글자를 많이 넣었다. 휴식을 얻고자 하였으나 그만큼 쉬기 어려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나라의 사공도는 자신의 정자를 삼휴정三休亭이라 짓고 “재주를 헤아려보니 쉬는 것이 마땅하고, 분수를 따져보니 쉬는 것이 마땅하고, 늙어서 귀가 먹었으니 쉬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성종 때 《악학궤범》을 편찬한 성현이 게으름 귀신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쓴 글이 있다. 스스로 너무 게으름을 피웠다고 자책하는데 정작 게으름 귀신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는 장면이 매우 흥미롭다.      


경우에 따라서는 근면이 도리어 화근이 되는 것, 당신과 같이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도리어 복의 근원이 될 수도 있지요. 세상 사람들은 형세를 따라 우왕좌왕하여 그때마다 시비 소리가 분분하지만, 지금 당신은 물러나 앉았으니 당신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시비하는 소리가 없지 않습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귀신의 입을 빌려서 대신 말한 것이다. 나는 이 글의 ‘게으름’이라는 단어를 ‘쉰다’는 의미로 해석해보았다. 또한 소동파는 “병 때문에 한가할 수 있으니 그다지 나쁘지 않네. 마음 편한 게 약이지 달리 처방이 있겠는가”라며 쉼의 중요성을 명구로 남겼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인 신흠(1566∼1628)은 “사람이 명예에 대한 욕심을 가지면 처자식 앞에서도 뽐내고 싶은 것”이라며 인간의 숨길 수 없는 욕망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그는 숨어 사는 선비의 즐거움을 언급하였는데 그중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일은 어느 정도 마음에 흡족하다고 생각할 때 그만둔 줄 알아야 하고, 말은 자기 마음이 흡족하다고 생각할 때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하루에 착한 말을 한 가지라도 듣거나 착한 행동을 한 가지라도 보거나 아니면 스스로 착한 일을 한 가지라도 행한다면 그날은 결코 헛되이 산 것이 아니라 할 것이다.     


내 주변에 워커홀릭(workaholic), 즉 일 중독자가 많다. 그들은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낭패를 보곤 한다. 이번 기회에 언제, 어떻게 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지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

                

일 중독


이전 29화 33. 살아남은 자의 슬픔 :도망시悼亡詩(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