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돈으로 시간을 살 수만 있다면

너와 있는 시간을 사고 싶다, 시라쿠사의 바다 (1)

by Nima

기대하지 않았던,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트라파니를 뒤에 두고, 우리는 드디어 시칠리아의 남부로 내려가기로 했다. 정말이지 고르고 골라 담은 남쪽 첫 번째 행선지.


시라쿠사.

시칠리아에 도착한 첫 날, 공항에서 나를 픽업해줬던 미르코는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는 여행지로 시라쿠사를 꼽았다. 나는 마치 로또라도 당첨된 것처럼 기뻤다. 어마무시한 고민의 결과 집어넣었던 행선지였는데, 현지에서 여행 가이드를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부터 추천을 받으니, 뭔가 검증받은 기분이 들고, 우쭐해졌다. 나는 가는 길 내내 그 점을 친구에게 어필했다. 그녀가 또 다시 오랜 시간 차를 몰아야했기 때문에 미안해서였던 것 같다.

“진짜 좋댔어.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더마, 동네 전체가.”

“그래, 근데 진짜 멀다.”

“그러게, 이놈의 도로는 왜 이번엔 해안도로가 아닌 이냐?”

아닌게 아니라, 우리가 머물렀던 트라파니가 시칠리아의 북서쪽이고, 우리가 가려고 하는 시라쿠사가 시칠리아의 남서쪽인데, 그 와중에 정말 길이 많고 많았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우리의 구글맵은 팔레르모로 다시 돌아가 고속도로를 타도록 추천하고 있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친구의 맵 기본 설정 중, ‘Toll Free (통행료 없는 길)’ 요건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 서쪽 해안도로는 개방된 것이 없는지, 지금 다시 확인해보지는 않았다. 다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길이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서쪽에는 그 유명한 아그리젠토(아그리헨또가 현지 발음 같다. Agrigento)도 있고, 라구사(Ragusa)로 들어가는 길목에도 어마어마한 여행지들이 있기에.


숙소 앞 바다 한 조각
우리 붕붕이가 있던 주차장

어찌되었든, 우리는 다시 4시간 반 걸린다는 그 험한 산길을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긴 여정이라는 생각에 커피도 충분히 마시고, 달달한 당 충전도 충분히 해두었다. 그래서인지 다시금 접어든 돌 길도 그렇게 신났다.


시칠리아를 돌면서 느낀 여러 가지 감흥 중, 돌 들이 난무하는 낡은 도로 위의 시간들을 잊기 어렵다.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말해왔지만, 일단 인프라가 노후화 되어 있는 점이 마음 아팠고, 우리 나라 같았으면 사방 팔방에 흉측하게 경관과 따로 노는 각종 휴게시설이 난무할 법도 한 지점에서, 그야말로 우물 하나 찾기 어렵다는 점이 현실적으로 난감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다 잊게 만드는 생각이 있었으니, 그것은 시칠리아의 거대한 자연이 부럽다는 점이었다. 척박한 돌산인가 하면, 돌 산을 비집고 들어간 해안 마을에는 올리브나무가 우거져있고, 다시금 시칠리아의 내륙으로 돌아가면 갑자기 비옥해지는 산 비탈을 만나다가, 누가 유럽 아니랄까봐, 신재생 에너지, 육상 풍력 발전기들이 유유자적 돌아간다. 풍력 발전기들을 지나치며 룰루랄라 산 비탈을 내려오면, 갑자기 아름다운 해안도로가 나타가다가, 이윽고, 마법같이 아름다운 중세 도시의 입구에 들어서게 된다. 시칠리아 일주일 여행의 반은, 렌트한 자동차 안에서 보냈고, 그 안에서 느낀 감정의 흐름은 정말 이와 같았다. 돌 길의 애잔함, 풍광으로부터의 감동, 그리고 아름다운 중세 도시에서 압도당하는 즐거움. 이 여행을 남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사실 도로에서 보낸 시간 덕분일 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시라쿠사에서도 가장 남단인 오르테지아 섬의 페리 부두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이미 해가 기울어지기 시작한 오후 3시반, 부랴부랴 짐을 챙겨 나간 구 시가지 끝자락에서 나는 이번 여행 통틀어 가장 값진 시간을 만났다.

아름다운 오르테지아섬
풍랑없는 지중해 바다

잔잔한 지중해 바다가 펼쳐진, 오르테지아 섬의 남단.

내가 만약 돈을 주고 시간을 살 수 있다면, 나는 시라쿠사에서의 시간을 다시 사고 싶고, 오후의 오르테지아를 다시 사고 싶다. 잔잔하게 펼쳐진 터키색 지중해 바다에 오렌지 빛으로 부서지는 오후 햇빛. 발 길 같은 건 어디 안 돌리고, 다시금 그 벤치에 앉아, 해가 떨어질 때까지 앉아 있고 싶다. 내게 돈이 있다면, 모든 돈을 쏟아 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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