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life

와이프가 아파서 집에 가봐야 된다

판타지 같은 한 문장이다

by Nima

꼬리뼈가 3조각이 났다는 진단을 받았다.


지난 주말 계단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만취상태였던 덕분인지 나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택시에 실려 귀가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 몸을 일어켜 세우는 것 자체가 극강의 고통이었다.


그 때, 병원을 갔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술병인 줄 알았다.

그래서 그저 쉬다가,

마사지를 받고 풀겠다고 마음 먹은 뒤

아작 나 있던 꼬리뼈를 중점적으로

조선족 마사지사로 하여금 흠씬 두들겨주도록 하였다.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7시반에는 책상 앞에 앉아 있어줘야 하는 직장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새벽 4시에 기어이 맥주를 한잔 마시고 잠이 들었다.


월요일 출근을 하는 길이 고통스러웠다.

그제야 병원을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X ray정도는 점심시간 잠깐 이용하겠다는 마음에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들렀다.


의사선생님이 이리 저리 눌러보며 내 비명 소리를 듣더니

CT를 찍자고 했다.

그리고 꼬리뼈가 3조각으로 부서졌으니

무조건 누워있으라고 했다.

한달은 누워있어야 붙는다고,

3달은 각오해야 한다고,

게다가 움직일수록 안 붙는다고,

그런데 너는 지금껏 막 다닌 거 같다고,

골진이 나올때 얌전히 있어줘도 붙을까 말까라고,

겁을 줬다.


머리가 핑돌았다.


병가를 낼 수 있던가.

이게 본인 잘못으로 사고가 난 것인데도 병가처리가 되나..

끝도 없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아프다는 생각보다는 회사를 못 나가게 되면

지금까지의 업무는 어떻게 하나

대타가 들어와서 일이 흐트러지면 어떻게 하나

뭐 이런 류의 영양가 없는 고민들로 머리가 아팠다.


그러나 그 고민이 무색하게

회사에서는 소견서대로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모든 고민이 눈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니, 그랬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입원한 순간부터

내가 대단히 잘 못살아 오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호자 이름에 우리 엄마를 적는 순간부터

그리고 면회 와서 옷 가지 등을 챙겨주는 사람이

늙은 우리 엄마라는 점이 새삼 와닿자,

나는 별로 영양가 없는 인생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내 나이는 곧 마흔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남편도 없고, 아들도 없고,


아프면 여즉, 늙은 노모가 보호자로 나타나 수발을 든다.


나는 사회적 나이가 여즉 미성년자인가.


결혼이 선택이고,

비혼이 당당해졌다는데,


모아놓은 자산은 없으나, 매달 꽤 괜찮은 벌이가 있어서

마치 혼자 살기로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뻔뻔하게 자기 합리화하고

요즘말로 정신승리(?)하면 좋은데,

그것이 내 안에 와 닿지 않는다.


결혼을 해서 다치면 정말 지금 보다 나을까.

그 때는 또 그 만의 고통이 있겠지.

일단 신랑이 신경쓰이고

애기가 있다면 애기가 걱정될 거고,

기타 등등의 걱정거리가 더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아무것도 없다.

내가 믿을 것이라고는

실비보험의 커버력.


텅빈 병실에 혼자 누워있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말이 있었다.

얼마전 친구가 갑자기 집에 가야한다며

전화로 내뱉은 말.


"집에 가야돼, 우리 와이프가 아파서 회사도 못갔어."

"집에서... 너가 밥하고 그러는 거야?"

"그건 아닌데, 내가 나가 있을 수가 없지. 미안하다."


나는 아무도 없다.


어느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반려자마저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사람이 국민의 행복을 담보로 정치가가 되고, 사원들의 목숨줄을 쥐고 경영에 나서다니, 이처럼 웃기는 상황이 또 있을까 싶다.'


반려자조차 없는 나는 이 부분을 오래도록 다시 읽었다.

나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꽤나 오래 아무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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