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펼쳐 놓고 공휴일 앞뒤로 휴가낼 생각에 밤 잠 설치던 일상이 남 일 같이 느껴지는 올 한해.
정말이지 작년 12월 크리스마스는 마라케시에서 보냈더만, 그 사람 내가 아닌 것 같다.
마라케시 넘어가서 깊은 사하라 한 가운데까지, 일주일을 꼬박 같이 보냈던 유목민 가이드 아저씨가 있었다. 이름은 알로이. 알로이는 헤어지는 날, 잠시 사라지더니 열쇠고리를 하나 사서 선물로 주었다. 잘 지내라며, 다시 놀러오라며. 투박하고 엉성한 열쇠고리였는데, 쥐어주던 아저씨도 나도 공항 앞에서 눈물 꽤나 쏟았다.
다시 보자고 돌아서봤자 다시 못 볼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 작별인사라는 사실에 이미 익숙해진 나이여서인가, 그렇게 자주 연락할 것 같이 굴던 나는 냉장고에 자석으로 붙여둔 열쇠고리를 일 년 내내 쳐다보면서도 안부 한 번 안 물었다. 생각이 안 났던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잘 지내냐면서 적극적으로 뭔가 할 생각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던 오늘, 핸드폰에서 울리는 '크리스마스' 일정 알림을 듣자 갑자기 알로이, 그리고 알로이와 보냈던 사막이 생각났다. 리야드 안의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배경으로 하루 세 번 절을 하는 이슬람교 기도소리. 아름답고 매력적인 풍경과 9시간씩 타고 가던 지프 차의 냄새까지 한 꺼번에 밀려왔다. 그래, 알로이는 어떻게 지내나. 여행객들 없으면 어떻게 먹고 사는가. 사흘 내내 아틀라스 산길을 내달리며 버는 돈으로 먹고사는 사람, 올 한해는 어떻게 보냈나. 잠시 생각한 것만으로도 알로이는 올 한해 대단히 고생했을 것 같다. 막막해졌을 그의 심정을 가늠하기만 해도 끔찍하다. 잘 있을까. 잘 있어야 할텐데.
울고불고 요란하게 헤어지며 나눠가진 이메일 주소 메모를 찾았다. 안 보인다. 장난이었는데 진심이 되어 온 책장을 찾기 시작했다. 도톰한 포스트잇, 낱장이 되면 없어질까 떼어내지도 않았던 그 포스트잇 뭉텅이는 도대체 어디 있는가. 딱히 갈 곳 없던 독거노인의 집콕 크리스마스 아침은, 대단한 사이도 아니고 일생에 한 번 봤던 먼나라 가이드 안부 걱정하다가 지나갔다.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사우디에서 일하셨다. 대구 어디였나, 근처 미군부대가 있는 곳에서 사셨다는데, 오며 가며 미군들한테 말 걸던 게 전부였던 아버지는 토목과에서 영어 잘 한다는 오해(?)를 산 것이 계기가 되어 사우디에 가게 되셨다고 했다. 실제 가서는 6개월동안 인삿말도 못하셨다고 하는데, 어릴 적, 우리 집에 놀러 온 산타클로스처럼 생긴 외국 아저씨들이 몇 있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꽤나 유창했다.
사우디가 남긴 것이 몇 가지 있겠지만, 나는 윤 아저씨가 남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소장(그러니까 '현장 소장' 같은 것일 텐데) 으로 계실 때, 기사로 일하셨는데, 윤 아저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8년이 지난 올해까지, 나와 어머니 여동생에게 안부전화를 하신다.
"소장님 보고싶지만 우야겠습니꺼."
"네. 아저씨 건강하세요."
"소장님이 지한테 정말 잘해주셨거든요."
"아저씨, 건강하세요."
동문서답으로 이어지는 이 안부전화는 내 인생에서 나름 연례행사 같은 일정이다. 다만, 나를 알고, 나를 사랑하는, 나의 지인이 묻는 안부가 아니라, 18년 전 갑자기 세상을 떠난 내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이 묻는 안부여서 너무 소중하고, 너무 고맙다.
둘은 인생에서 7년을 같이보낸 뒤, 각자의 길을 살았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아저씨는 창원에서 그렇게 제 인생을 살아냈지만, 항상 때 되면 걸려오는 윤 아저씨의 안부 전화는 오늘이 명절임을 알려줬다. 나는 그 안부전화를 받을 때, "뭐할라꼬 전화하노"라고 하시며 웃으시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아버지는 행복해보였다.
엄마와 동생이 캐나다에 있던 때, 나 혼자 놀러나간 날,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할지도 모르던 스물한 살 그 시간. 윤 아저씨는 3일째 되던 날 눈물 콧물 뿌리며 달려오셨다. 다 아는 레파토리, 그러니까 초등학교 못 나온 아저씨를 집도 사게 해 주신 분이라는 둥, 항상 잘 챙겨주셔서 창원에서 기반을 잡았다는 둥,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다 하시다가 눈물을 뿌리며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지가 잘 할게예."
그리고는 정말 거짓말처럼, 18년째 추석이면 감 상자가 오고, 연말이면 안부전화를 하신다. 친척이라는 사람들도 내가 뭐하고 사는지, 엄마가 어떻게 사는지 관심도 없는데, 아저씨는 늘 우리가 걱정이다. 추우면 추울까봐, 더우면 더울까봐. 노지에서 키운 배추를 보내주면 맛있게 못 먹을까봐 걱정이시다. 나는 이 나이 들때까지 아저씨한테 옷 한벌 해드리지 못했다. 변명 많은 인생이다.
"뭐 하고 사나 궁금하지."
"만나고 싶어?"
"막 꼭 만나야되는 건 아닌데, 밥 한번 먹고 싶긴 하네. 뭐 하고 사는지, 잘 지내는지. 잘 지내면 좋겠다."
대학원 다닐 때 요즘 말로 '썸타던' 동생은 외유내강의 남자였는데, '메가리 없어'보이는 외모와 달리 상당히 매력있는 내면이 진짜 '매력'이었다. 그는 과감할 땐 과감하다가 고심하는 순간에는 한 없이 망설였는데, 가령 '뽀뽀는 사귀고 나서'하는 게 아니냐는 이론을 제시하며, '그냥 먼저해?'라고 묻는 등의 순간이 그 예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는 정말 너무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그가 '그런 짓(?)을 하는 것'은 두 번째라고 했는데, 첫 번째인 그의 첫 여자친구를 추억하며 안부를 궁금해하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난다. 당시에도 당장 질투를 한 것은 아니다. 그냥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준 것 같다. 그요즘 말로 '아련한' 표정을 짓더니 곧 그녀더러 '잘 지내면 좋겠다'라고 말하던 그의 모습,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도 오래도록 생각났다. 그렇게 누군가가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안부'를 묻는 일, 그 때까지는 별 생각 없었는데 나는 그 날이후, '그런 걸' 신경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가 잘 지내는지, 잘 지내길 바라면서 가끔 시간을 보낸다. 나름 중요한 일상이 되었다.
어릴 적, 맥주맛도 모르던 시절의 나는 상당히 순진하고 영양가 없는 사람이었는데 (무, 물론 지금도 그런것 같긴 하지만) 모두와 친하게 지내야하는 줄 알았고, 좋은 게 좋아야 하는 줄 알았다. 친구라고 하기엔 그저 '비즈니스'관계같은 사람들인데, 그 관계를 '우정'이라고 포장하다보니 서운하고, 마음 상하고, 상처를 받았다. 어떤 '친구'는 아버지 장례식에 사람들이 좀 있다고 생각되었는지 '우리 할머니 장례식때 이렇게 안오기만 해봐라'라고 이를 악 문적 있다. 나는 그녀와 20년간 연락하지 않는데, 대단히 잘 한일 같다. 하나도 친하지 않았던 고등학교 동창 여자는 장례식때 식탁에 앉은 사람들을 보면서 '저기는 어느 그룹이냐, 어느 집단이냐'를 한 30분 물었는데, 나는 다행히 그녀와 연락을 주고 받지는 않는다. 살면서 귀신 보다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는 진리를 몸소 깨닫는 중요한 시간들을 보냈고, 의식적으로 조금 더 주변을 줄이고, 내 사람을 줄이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지나치게 간사해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저 관짤때 상주하시게요? 왜 그렇게 저한테 관심이 많아요?'라고 되물을 정도로 뻔뻔해지는데 성공한 나이지만, 여전히 상처를 안 받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너 번호 언제 바꿨어?"
"나? 내 번호 뭐로 저장되어 있니?"
"011이구나..."
아, 그래. 내가 비록 2010년까지 011을 사수하던 '라스트 모히칸' 이긴 하지만, 너는 그 후로 10년간 내 안부는 궁금하지 않았던 생활을 했잖니. 그런데도 10년만에 만난 자리에서 어떻게 이 말을 편하게 말하는가.
"어머, 독한 년! 연락 좀 하지 그랬어."
그러게. 우리 사이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데, 나는 왜 친구라고 생각되어야 할까. 10년만에 친구인 척 하는 내 자신이 불쌍하고, 이 시간이 아깝고, 이 상황은 더 슬프다. 내 안부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나는 그냥 아무도 아닌 사람으로 변신하고 싶은데, 나는 여전히 '친구'여야 하는가. 이런 것이 상처가 된다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나는 올해 마흔인 것을.
안부를 주고 받는 것.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는지와는 무관하고, 얼마나 마음 깊이 헤아리는지와는 연관된 일이다. 나는 과연 누구에게 안부를 물었나. 문득 쑥스럽다. 나 스스로는 그렇게 살가운 사람은 아니었던가. 용기를 내어 한 명 한 명 찾아본다. 잘 지내길,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들. 건강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들. 자주 보지 못해도 내가 사랑하는 만큼 잘 풀리길 바라는 사람들. Love Actually라도 찍을 기새로 축복 충만한 마음으로 덕담을 찍어 누른다. 카톡 창이 없어지면 날아가버릴 것들이지만.
"너 크리스마스에 뭐해?"
"나 정말 계획 없어."
"뭐야, 다들 이런 날때문에 미리 계획 세우는데 너는 어쩌자고 여즉 그 모양이냐."
"그런 시기는 10년 전에 지나간 거 아니야?"
"싱글은 여전히 노력해야지. 올해는 개도 샀겠다 그저 개랑만 놀려고?"
"개라도 있어 다행이야."
그래도 나 뭐하는지 궁금해하는 친구 몇이 너 뭐 하냐고 물어주는 것이 전부였던 크리스마스 밤이 저물어간다. 알로이의 안부를 물어야겠다고 비장하게 시작했던 아침의 나와는 달리, 중간 중간 핸드폰 바라보며 넷플리스 몇 개 보다보니 끼니 때가 되었었고, 다시금 뭐라도 해보려고 와르르 짐을 끌어 내리다가 개 뒷바라지 하다보니 자정이 다 되었다. 이렇게 부질없고 허무한 인생! 하며 짐 꾸러미를 걷어찼는데, 이런. 여기에 신주단지처럼 모셔둔 알로이의 이메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