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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 Jan 24. 2021

네, 마흔하나, 혼자 삽니다.

'실례지만, 어떻게...'

'네, 올해 마흔하나, 혼자 살아요. 결혼 안 했고요.'

 

처음 만난 사람이 조심스럽게 뭔가 묻는 듯하자, 나는 자동응답기마냥 저따위로 대답했다. 새삼 내가 정말 뻔뻔해졌다 싶다. 지나치게 솔직했던 내 대답을 돌이켜보니, 성의 없고 무례하게 느껴진다. 그나마도 작년까지는 오묘하게 애둘러가는 대답으로 피해 갔고, 그나마도 쉽게 포기해주지 않는 질문러들에게만 부끄러워하며 살포시 알려주던 것이 개인정보였건만.


그나저나 '마흔하나'라니. 나 정말 4학년 1반이란 말인가.

곱씹어 본 내 나이는 소름이 다 끼친다.

나 정말 오래 살았구나. 정말 무겁네.


당연한 듯 저녁답무터 침대에 기어 올라들어가 히키코모리마냥 핸드폰만 쳐다보아야 할 평범한 저녁.

나는 마치 '암 선고'라도 받은 사람처럼, 한 나절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 인생, 나라는 사람이 낯설고 무서워서.


 


문득, 변사체를 부검하던 검시관 한 분의 말씀이 떠올랐다.


"피해자는 자살했을 리가 없어요. 보통, 자살로 추정되는 경우에는 치아들이 엉망이거든요.  경제적으로 힘들고, 인생 막판이다 싶은 경우에는 치아를 치료할 겨를이 없어요. 그래서 다들 치아가 망가져있는데, 이 피해자 같은 경우에는 치과 치료를 최근까지 받은 흔적이 있단말이죠. 그만큼 열심히 산 사람이에요. 죽을 생각하는 사람이 비싼 치과 치료를 어떻게 받아요."


어금니 생각이 났다. 타이레놀을 찾게 만드는 내 어금니. 치과 가기 귀찮다며 부둥켜 안고 살던, 때되면 욱신거려주고 밤이면 우리하게 나를 자극하던 내 어금니들은, 내가 어떻게 살아져버렸는지 나타내는 방증이다. 나는 미련해서 통증을 참아낸 것이 아니구나. 나는 내 인생을 활기차게 즐기지도 못하고, 대충 살아내 때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길로 오래도록 욱신거리는 어금니를 치료하러 갔다. 태어나 첫 치과 치료도 아닌데, 어금니 하나에 관한 치과 진료가 이렇게 수 차례 내방해서 이루어지는 것인지 몰랐다. 아니, 기억 못했다. 다만, 이번 기회에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 최근까지 치아를 치료받은 피해자는 자살할 생각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을 왜 하셨는지.




생각해보니, 새해랍시고 뭐 하나 의식적으로 기분전환 해 둔 것도 없다. 새해라고 청소하고, 새해라고 다이어리를 새로 장만하며 이것 저것 계획을 세우던 마지막 나는 언제인가. 갑자기 생각나 책장을 뒤졌다. 언젠가 치우겠다고 쌓아둔 다이어리 무덤이 보였다. 최근의 15년은 다이어리라고는 스타벅스뿐인가 싶더니, 그 사이에서 뭔가 떨어졌다.


2020년 스타벅스 다이어리 전용 쿠폰3장.

아, 내게 2020년의 시작은 이따위였구나. 그 어떤 설렘도 없이 맞이한 신년. 신난다고 받아든 새로운 다이어리에서 제일 먼저 챙기며 친구랑 만나 해먹을 생각하던 쿠폰 같은 것은 화석이 되어 나타나는구나.


나는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가.

나는 잘 살고 있나.

잘 살다니,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잘 살아내고 싶은 것인가.

나는 그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가.

아니, 그 가는 길에서 나는 행복한가.


그러게. 이게 문제다.

나는 현재 행복하지 않은 것 같은 내 모습을 회피하느라, 모든 것을 뒤로 미루며 살았다. 입 속에 맴도는 수 많은 문장들도 시작하는 것이 무슨 의미냐며 모르는 척 했었고, 수 많은 에세이집을 사들고 줄을 쳐가며 읽는 시늉을 반복했지만, 결국 어쩌라는 거냐며 책을 덮어두었다. 공감을 해가며, 다시 거듭나주길 바랬지만, 나는 수많은 순간, 무기력해진 내 모습만 발견했고, 귀찮아졌었다. 모든 것이 심드렁해졌다. 하기 싫어졌다. 수동적으로 시간이 떼워지는 것이 좋았다. 세상은 편해졌고, 핸드폰만 잘 충전하면 그 까이거 대 여섯시간은 그냥 사라질 수 있었다. 나는 매우 편리하게 시간을 태워먹고 있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나의 하루하루가 불현듯 몹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져버린 지난 시간들이 갑자기 아쉬웠다.


인생에 없을 고비를 넘길때마다 '이것이 바닥이다, 앞으로는 좋을 일만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인생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이 산을 넘으면 저 산은 더 무자비했고, 죽을 힘을 다해 저 산을 지나면, 거대한 산이 또 하나 나타났다. 산 넘어 산,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더니 그 말은 정녕 참말이지만, 그 덕에 나는 하루하루를 고마운 줄 모르고 살아지는대로 살아지도록 버려뒀던 것 같다. 지난 해의 나, 그 지난해의 나.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거니와, 올해의 나는 정말 어디로 가는지조차 애닳아하지 않은 채, 하루 하루 때우며 뭉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치과 진료를 시작했다. 최소한 나는 무기력하게 푹 삶긴 사람처럼 살다 죽어도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몸을 던진 변사체로는 보이지 않을 것이며, 하는 김에 나라는 사람을 좀 돌아보고 싶어졌다. 어쩌다가 마흔하나까지 혼자 사는 여자가 되었는지도 돌이켜보고, 앞으로는 섹시한 할머니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도 고민해보고 싶어졌다.


어떤 방향의 글들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 여정을 통해서, 이 글쓰기들을 통해서, 없는 시간 쪼개서 걸어가면서도 글이 쓰고 싶던, 모든 감각이 날카롭게 살아있어 손 끝까지 에너지가 넘치던 그 시절의 내 마음을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덤으로 혼자사는 마흔 줄 모든 사람들이 나의 뜨거운 고백을 통해 위로 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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