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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 Feb 13. 2021

아는 만큼 보이는 세상

한 살 더 먹는 내가 마음에 드는 이유

내 돈으로 처음 산 소설책, 그러니까 집에 있던 책 말고, 엄마 책 말고, 애들용 청소년 도서 말고 진짜 소설책은 '펠리칸 브리프'였다. 1993년이었나, '초딩' 고학년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였던 별밤 라디오 광고를 듣고, 동네 서점 아주머니께 '펠리컨 브리프' 내달라던 순간, 아주머니의 표정이 여즉 생생하다. 이걸 어째, 기타 등등의 묘한 찡그림, 돌아보면 백 번 이해되는 표정이다.


캘러헌과 다비는 백짓장 같던 내 머릿속에 강렬하게 들어온 첫번째 캐릭터이다. 그 뿐만 아니라 '펠리컨 브리프'의 많은 부분은 그 이후에도 여러가지로 내게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그 중에 하나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그것은 '머스탱'이다.


책에서 묘사된 캘러헌은 어마무시하게 지적이되, 시니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맨틱한 중년 남자였다. 13살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도, 대단히 섹시한 캐릭터였던 캘러헌은 오래된 머스탱을 타는 남자였던 것 같은데, 그 덕분에 내게 머스탱은 궁극의 섹시, 그 자체였다. 차는 아빠차 밖에 모르고, 어떤 차가 머슬카인지 세단인지도 모르던 초딩에게 머스탱은 '미지의 동물'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머스탱은 그렇게 멋진 차가 아니었다. 맥주 맛도 배우고, 면허도 따고, 나도 차를 한 번 몰아보겠다고 전시장 기웃거릴 나이가 되어 찬찬히 본 머스탱은 내가 생각한 그런 차가 아니었다. '폭스바겐 골프'가 유럽 대학생들이 졸업하고 처음 타는 차라는 사실과 함께 미국 대학생들의 여름 방학 위시 리스트에 있다는 칼라풀한 머스탱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내게 실망을 이만저만 안겨준 것이 아니다. 그 머스탱이 그 머스탱이 아니라니 무슨 소리냐고.  나는 그 오래된 머스탱이 마치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나오는 실장님이 모는 차, 모든 것을 다 이룬 중년 남자가 모는 차라고 생각했다. 존 그리샴이 아무리 노력해서 묘사해줘봤자, 13살의 나에게 떠오른 이미지는 그랬다. 어른인데, 교수인데, 똑똑하다는 중년 남자의 차, 그러니까 성공한 남자의 차, 게다가 뭔가 드라마 주인공 남자같으니까 그런 사람들이 타고 나오는 차 답게 멋있는 차, 이런 이미지였다. 하지만, 실제 그 차는 그렇지 않았다. 올드 카의 매력을 빼면, 머스탱은 그냥 독일차 못 사는 미국인들이 사게 되는 몇 가지 옵션 중의 하나였다.  책 속의 오래된 머스탱은 충분히 지적인데, 로펌가서 돈 잘 버는 변호사가 되지 않고, 굳이 돈 안되는 헌법을 전공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 섹시한 인텔리인데, 여자친구 앞에서 감정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 40대 중반이라기에는 철이 없어보이지만, 깊이 있는 통찰력과 쓸데없이 속물적이지 못한 한 남자를 설명할 수 있는, 성공한 중년이라기보다는, 뭔가 콕 찝어 말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으나 결국은 별거 아닌 중년 교수의 복잡한 상태를 잘 보여주는 차였을 뿐이다.


그러게 뭘 알아야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그 딴걸 글로 배우면 이 사단이 난다고.


밀리는 강변 북로에서 엄동 설한에 뚜껑 열고 내 옆을 동행해준 빨간 머스탱 덕분에 문득 오래 전 나만의 '상상속 동물'을 떠올려보았다. 나만의 머스탱, 이 얄궂게 그리운 나만의 머스탱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는 요맘때 자주 생각나는 이미지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과 함께.




나는 그간 얼마나 알아왔나. 

새털같이 많은 날들, 새털처럼 날려먹기만 한 것일까. 그래도 매일 매일 혜안이 깊어지는 어른으로 성장해왔나.

어른이 되어간다는 생각에 나 스스로가 뿌듯했던 순간들이 있었던가.


다행히 하나 떠오른다. 

사람 보는 눈이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 정도면 많이 나아졌다. 나 스스로 사람을 구별할 줄도 알아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제 나는 어떤 사람과 친구를 해야할지 정도는 스스로 자신있게 의사결정한다. 그저 같은 반에 밀어넣기만 하면 모두와 친해져야 하는 줄 알았던 순진한 시절과는 다르다. 산전 수전 공중전 겪어가며, 누가 좋은 사람인지 맥을 짚을 줄 아는 눈은 글로 배울 수 없다. 그런 남자 조심하라고 백날 말해봤자,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돌아서서 눈물샘 다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울고 나야 겨우 그 놈 별 거 없었다고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나중에 다른 남자 만나보면, 지난 시간의 그 남자가 얼마나 찌질한지 논문하나 써 주고 나올 수도 있어진다. 그거 다 보는 눈이 자라고 혜안이 깊어져서 얻은 것이다. 그거 글로 배울 수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


어릴 적, 앞이 깜깜하여 어찌 살아야 잘 살아내는 것인지 갈피를 못 잡던 나를 만나면 해 주고 싶은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데, 너는 지금 모른다고. 그런데 급하게 알 수는 없다고. 뭘 알고 싶으면 시간이 필요하니 조바심내지 말라고. 무서워 하지 말고,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하던 거 잘 하라고. 


그 시절 나를 만나면 꼭 말해주고 싶다. 


뭘 배워보겠다고 급한 마음에 아무데나 기웃거리며 애쓰지말라고 해주고 싶다. 특히, 만사를 글로 배우는 짓거리 좀 하지 말라고 가서 뜯어 말리고 싶다. 서점을 돌면서, 앞 표지만 삐까번쩍한, 1년 뒤에 다시 읽을 내용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월간 잡지만도 못한 자기개발서 한 무데기 사 놓고, 밑줄 쳐 가며 읽는 일 따위는 정말 뜯어말리고 싶다. 그런 책 사 모을 에너지로 일기라도 한 두 줄 적어봐라. 오늘의 이불킥은 무엇이고, 내일은 그런 이불킥은 없이 살자고 소소하지만 야무지게 스스로 다지는 노력이나 조금 더 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니지, 이러다 또 지나간 시간 부여잡고 후회하다 하루 다 보내는 바보가 될 수는 없지.


과거의 나를 만나겠다는 생각 같은 건 집어치워버리고, 오늘의 나에게 내일 일을 잘 해보라고 응원 한마디 더 해주고 싶다. 어제보다 더 많이 알아낸 오늘, 수고했다고. 어제보다 조금 더 지혜로워졌으니, 내일은 더 잘 보일 거라고, 이불 속 파고들며 출근하기 싫어할 나더러 꿈이나 잘 꾸라며 응원해주자. 


우리 모두 피를 토하며 살아낸 그 시간 속에서 심봉사 눈 뜨듯, 상처만큼 깊어진 눈을 얻는다. 나라를 구하는 비책을 알아내는 것도 아니고, '그 까이거' 뭐라고 속이 다 문드러지게 살아내어야 겨우 볼만한가 싶으나, 그래도 나 스스로 쳐 내고, 나 스스로 손 내밀 수 있는 이 순간이 만족스럽다.  늙어간다는 사실은 몹시도 비애롭건만, 그래도 나는 20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이 좋다. 지금의 나한테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앞으로도 매일 나아지라며 응원하고 싶다.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운 줄 알고, 머스탱보다는 bmw 430i가 더 마음에 드는 지금이 말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이 맛에 나이가 들어지나보다.  한 살 더 맛있게 먹어버리자.

마흔 한번째 떡국을 들이키고, 씩씩한 척, 올 한해도 알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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