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살 더 먹는 내가 마음에 드는 이유
나는 그간 얼마나 알아왔나.
새털같이 많은 날들, 새털처럼 날려먹기만 한 것일까. 그래도 매일 매일 혜안이 깊어지는 어른으로 성장해왔나.
어른이 되어간다는 생각에 나 스스로가 뿌듯했던 순간들이 있었던가.
다행히 하나 떠오른다.
사람 보는 눈이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 정도면 많이 나아졌다. 나 스스로 사람을 구별할 줄도 알아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제 나는 어떤 사람과 친구를 해야할지 정도는 스스로 자신있게 의사결정한다. 그저 같은 반에 밀어넣기만 하면 모두와 친해져야 하는 줄 알았던 순진한 시절과는 다르다. 산전 수전 공중전 겪어가며, 누가 좋은 사람인지 맥을 짚을 줄 아는 눈은 글로 배울 수 없다. 그런 남자 조심하라고 백날 말해봤자,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돌아서서 눈물샘 다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울고 나야 겨우 그 놈 별 거 없었다고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나중에 다른 남자 만나보면, 지난 시간의 그 남자가 얼마나 찌질한지 논문하나 써 주고 나올 수도 있어진다. 그거 다 보는 눈이 자라고 혜안이 깊어져서 얻은 것이다. 그거 글로 배울 수 없다.
어릴 적, 앞이 깜깜하여 어찌 살아야 잘 살아내는 것인지 갈피를 못 잡던 나를 만나면 해 주고 싶은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데, 너는 지금 모른다고. 그런데 급하게 알 수는 없다고. 뭘 알고 싶으면 시간이 필요하니 조바심내지 말라고. 무서워 하지 말고,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하던 거 잘 하라고.
그 시절 나를 만나면 꼭 말해주고 싶다.
뭘 배워보겠다고 급한 마음에 아무데나 기웃거리며 애쓰지말라고 해주고 싶다. 특히, 만사를 글로 배우는 짓거리 좀 하지 말라고 가서 뜯어 말리고 싶다. 서점을 돌면서, 앞 표지만 삐까번쩍한, 1년 뒤에 다시 읽을 내용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월간 잡지만도 못한 자기개발서 한 무데기 사 놓고, 밑줄 쳐 가며 읽는 일 따위는 정말 뜯어말리고 싶다. 그런 책 사 모을 에너지로 일기라도 한 두 줄 적어봐라. 오늘의 이불킥은 무엇이고, 내일은 그런 이불킥은 없이 살자고 소소하지만 야무지게 스스로 다지는 노력이나 조금 더 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니지, 이러다 또 지나간 시간 부여잡고 후회하다 하루 다 보내는 바보가 될 수는 없지.
과거의 나를 만나겠다는 생각 같은 건 집어치워버리고, 오늘의 나에게 내일 일을 잘 해보라고 응원 한마디 더 해주고 싶다. 어제보다 더 많이 알아낸 오늘, 수고했다고. 어제보다 조금 더 지혜로워졌으니, 내일은 더 잘 보일 거라고, 이불 속 파고들며 출근하기 싫어할 나더러 꿈이나 잘 꾸라며 응원해주자.
우리 모두 피를 토하며 살아낸 그 시간 속에서 심봉사 눈 뜨듯, 상처만큼 깊어진 눈을 얻는다. 나라를 구하는 비책을 알아내는 것도 아니고, '그 까이거' 뭐라고 속이 다 문드러지게 살아내어야 겨우 볼만한가 싶으나, 그래도 나 스스로 쳐 내고, 나 스스로 손 내밀 수 있는 이 순간이 만족스럽다. 늙어간다는 사실은 몹시도 비애롭건만, 그래도 나는 20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이 좋다. 지금의 나한테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앞으로도 매일 나아지라며 응원하고 싶다.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운 줄 알고, 머스탱보다는 bmw 430i가 더 마음에 드는 지금이 말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마흔 한번째 떡국을 들이키고, 씩씩한 척, 올 한해도 알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