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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 May 20. 2021

유튜브가 미워요

남의 아픔은 내 발가락을 스친 가시만 못하다.


며칠전부터 포털 언저리 끝에 보인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뉴스는 그저 '참 어지간히들 싸우네' 정도일 줄 알았다. 그러다,어떤 동영상을 보았는데, 그 덕분에 그 이후 계속 마음이 불편하다.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생중계되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폭격이 쏟아지더니, 안그래도 남루한 건물이 한 순간에 가루가 되었다. 뭐, 그런 영상이야 '식상할' 법도 하다. 시리아 내전도 그랬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라비안 나이트의 고장, 바그다드가 박살나는 것을 생중계로 보면서 점심 먹고 학원 갔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게 불편하도록 오랜 잔상을 남긴 것은 그것을 중계하던 남자였다. 폭격이 되어 건물이 가루가 되던 순간, 그는 잠시 말을 잊지 못하더니 누군가에게 '괜찮니?'라고 물었다. 목소리는 침착함을 잃었다. 순간 끔찍했다.


내가 길을 가던 중, 하늘에서 포탄이 날아와 내 눈앞 건물이 박살나는 장면을 상상해보려고 했다. 마음 먹는 것만으로도 토가 쏠릴 것 같았다. 저 동네 사람들의 처지가 참 딱한데, 나로서는 딱히 뭘 어찌할 도리가 없다. 대단한 위인이 되어 그 아픔을 공감하다 못해 적극적으로 해결해주면 좋으련만, 나하나 건사하는 것도 허덕이는 주제에 갑자기 우아하게 '세계 평화'의 담론에 뛰어 들자니, 내 인생의 결과는 맞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유난히 마음이 불편했다.



문득 나는 이놈의 생중계 영상들을 좀 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폰카'를 들고 있고, 누구나 '유투버'가 되어 버리는 통에, 'CNN'로고 박힌 영상 말고도 '알고리즘'이 나를 인도하여 각종 폭격 영상이 무수히 업데이트 되고 있다. 뉴스로서의 진실은 밝혀져야 된다고 믿지만, 이렇게 영화보다 더 허무하고 잔인한 장면이 반복적으로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괴롭다. 이런 영상에 익숙해질까봐 두렵다. 히잡을 두른 사람들이 도망다니는 장면에 무뎌질까봐 무섭다. 좀 안 볼 수는 없을까.


"그냥 다른 영상을 좀 봐."

"노력하고 있어, 봤던 동물농장 클립 무한 반복하면서. 그런데 진짜 질리게 터지나봐."

"그러게. 거기 안 태어난게 다행이다."


오. 그래. 친구의 말 한마디가 귀에 꽂혔다. 덕분에 괴로워하지않을 방법을 하나 찾았다. 각자의 인생이 있는 거니까, 너는 참 운이 안 좋구나. 나는 참 다행히 안전한 곳에 태어났어. 이렇게 단도리 하고 시선을 피하자. 나도 좀 편해지자. 하지만, 그건 어려웠다. 유튜브에서는 부모가 산산조각 나버린 뒤 홀로 살아남은 신생아의 영상이 흘러나왔으니까.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에 시차 없이 업데이트 받을 수 있는 이 기술의 시대가 미워졌다. 참 괴로운 영상이었다.


'가버나움'이었나. 무슨 상을 받았다던 영화였는데, 레바논에 사는 시리아 난민 12살 남자아이의 눈빛은 영화를 보고나서도 나를 상당히 괴롭게 했다. 그래서 슬픈 노래는 안 듣고, 슬픈 영화는 안 보는게 맞다. 한 번 사는 인생, 안 그래도 골이 복잡한데, 너의 눈빛까지 감당하려니 난 그릇이 너무 작은 것 같다.




괴롭다는 말을 하는 것도 부끄러운 이 주제를 불쑥 한 마디 꺼냈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더 웃긴 건 뭔지 알아? 모두 그렇게 신앙심들이 깊어. 하나님은 우리만 지켜준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지. 하나님 타령하면서 아이언 돔 설치하니까 천 발 날아와도 천 발 막잖아. 돈의 힘인데 하나님은 숟가락 잘 얹으시더라고."

"인생이 뭘까."

"거기서 인생이 나오는 구나."

"그냥, 난 요즘 중년의 위기인가봐. 그동안은 당연해보였던 것들이 다 부질없어 보여. 일요일 마다 열심히 성당 나가는 이모는 좋은 일이 한 번 없어도 어떻게 기도는 빠지질 않으실까 궁금하거나, 어쩌면 그렇게 사람들이 유튜브 재테크 강사들을 따라 모든 것을 실천에 옮기는지, 그런 모든 게 지긋지긋해."

"중년의 위기 맞네. 팔레스타인에서 유튜브 재테크로 빠지다니."

"유튜브가 꼴보기 싫어. 그래도 몇 시간씩 핸드폰만 붙잡고 있는 내 자신도 지긋지긋해."

"다들 그러잖아."

"뭐만 보면 알고리즘이 자꾸 풍부해져서 그냥 동물농장이랑 유퀴즈 온더블럭 두 개만 봤더니 유재석하고 개새끼들만 알고리즘에 꽉 차 있어."

"이럴 때는 주식 채널 몇 개 추천해주고 싶다."

"차라리 팔레스타인 뉴스를 볼란다."


친구는 진심으로 '장사꾼' 아닌 채널 몇 개는 강력추천하겠다고 했다. 주제를 뒤죽박죽 만든 것은 내 잘못이니 그저 웃어 넘겼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한국 유튜브 채널들이 지긋지긋하다. 아니, 집중적으로 정보제공을 빙자하여 재테크의 탈을 쓰고 투기적 모의를 열렬하게 떠들어대는 사람들과 왕년에 다니던 학원 셔틀들 갈아타는 스케쥴로 그 모든 것을 따라가고 소화해내는 일반인들, 아니지 '2030 3040 4050'들이 드라이하게 중계되는 폭격현장 영상들만큼이나 무섭다.


도대체 왜 태어나서 왜 이렇게 전투적으로 모든 것을 준비하며 모든 것을 해내고 창출해내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나만 받아서 나만 안전하고 너는 산산조각나는 순간들이 실시간으로 중계되어야 하는가.


이렇게 툴툴대봤자, 나란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는 오늘 할 설거지를 내일로 미루고, 오늘할 청소를 내일로 미루고, 오늘 할 강아지 치카치카를 적당히 덴탈껌으로 미루면서 유튜브 보다 잠드는 것일 뿐이겠다.



남의 아픔은 내 발가락에 스친 가시보다 덜 아프다. 기술이 덜 발달하여 지나치게 생생한 영상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현상은 좀 느즈막히 이루어지길 바라며 유튜브나 봐야겠다.


별 거 아닌 고민에 잠시 불편했던 보잘것 없는 밤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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