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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 Feb 06. 2021

오, 승리호 너 마저.

아기다리 고기다리 영화의 배신

영화를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평론가도 아니고, 영화는 내게 즐길거리이다. 그러므로, '미장센'이니, '구도'니 이런 말 잡다한 리뷰는 듣지도 보지도 않고 좋으면 좋은대로, 모자라면 모자라는대로 보고 만다. 한 2시간 집중하게 해줘서 고마운 관계 정도인 우리사이, 그렇게 들들 볶고 괴롭힐 생각 없다. 다만, 유일한 취미생활 중 하나이다보니, 마치 '손흥민' 선수가 뛰는 경기마다 새벽잠 설치는 축구팬마냥, 기대되는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렇게 설렐 수가 없다. 간만에 설렌 작품은 '승리호'였다.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SF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장르를 제대로 나누는 것인지도 자신 없는 내가 이 작품을 기다린 것은 일단 '늑대소년' 감독님의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그 감성 하나면 차기작은 설렐 수 밖에 없었고, 더더군다나 송중기에 김태리가 나오는데 애정라인이 없다니.  이것은 의료 드라마라고 해놓고 연애하고, 법률 드라마라고 해놓고 연애하는 우리나라 컨텐츠의 고리타분한 스토리를 벗어나 줄 것만 같았다.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게다가, 봄버 자켓을 입고 쉬크하게 짝다리 짚고 있는 김태리라니. 그녀를 보는 순간, 그야말로 심쿵 심쿵 설레는 내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다.


그러나, 어제 개봉 (넷플릭스 런칭은 개넷인가)이후, 허탈해서 몸져 누웠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은 읽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설국열차'에서 이미 본 것만 같은 UTS 월드는 계급 구조가 시각적으로도 확인되는 사회이다.  빅토르 위고를 위시해서, 슬프고 아름답게 변주 되어 온 인류 최고의 흥행 스토리 가운데 하나는 '계급 v. 계급'의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남이 던진 이야기 속으로 보는이가 감정이입하기 쉬운 캐릭터를 제공하는 것이 이 이야기 구조라고 생각하며, 더군다나 이러한 설정이 비단 '설국열차'가 특허 출원해버린 발명품도 아니고, 거기서 본 듯해도 설정도 다른데 뭐가 문제냐고 지적받기 무서우므로 이 부분을 걸고 넘어질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은 생각보다 신선하지 않았고, 감정이입하기도 어려웠으며, 더군다나 '신파 너낌' 물씬 나는 '아빠 타령'과 이어지면서 엄청나게 촌스러워 보였다고 말하고 싶다.


일단 하층 계급으로 분류된 우주 청소부 일당 가운데, 장 선장의 승리호 구성원들을 보면 신선한듯 안 신선한 식상한 조합이었다.


먼저, 잘 나가던 솔져, 송중기.

그는 갑툭튀 아빠 코스프레로 그 좋은 것들 다 내려놓으며 스스로 하층 사회로 내려오셨으나, 본인의 잘못 때문에 아이를 잃었다고 생각, 꼭지마다 요상한 의사결정을 한다. 입양 아동에 대한 학대로 모두가 쇼크사 직전인 이 시기에 부성애 뿜어내는 송중기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 없으나, '돈돈돈돈' 노래하는 설정으로 비추어보아 현실감각 터져나가는 '빠꿈이 냉혈한'이어야 할 그가, '갬성 터지는' 의사결정들을 연발, 급기야 마치 100달러 지폐로 담뱃불 붙이고, 죽을 고비 다 넘겨놓고 뱃머리 돌려 죽을라고 약쓰면서 형님과의 의리를 지키던 우리들의 영웅본색 '주윤발' 처럼 이성을 상실한 행동을 하자 정말 실소를 참기 어려웠다. 주윤발의 오마주라면 선글라스는 송중기가 쓰던지, 도대체 그는 왜 어정쩡한 변덕쟁이처럼 나와서, 착한 척 했는데도 그를 보는 나로 하여금 눈물 한 방울 못 흘리게 한 것인가. 정 안주려고 노력하는 송중기의 섬세한 표정처럼, 어색하고 개연성 없는 매 장면들을, 순간 순간 영특한 배우의 개인기에 힘입어 넘겼던 많은 부분이 두고두고 아쉽다.


나를 설레게 했던 쉬크 여전사, 김태리는 또 어떠한가.

'민중속으로'라고 외치며 농민봉기운동을 이끌었던 인텔리로 설정된 것인가. 나노봇 설계도만 보아도 척척척 알아먹는 초엘리트 과학도인 김태리는 독재자 설리반을 암살 시도했다가 실패, 여차 저차 하층사회에 숨어살며 '돈돈돈돈'하는 우주 청소부 승리호를 이끌고 있다. 갑툭튀 눈 맞아서 송중기랑 연애 안 한다는 것만으로 감사해해하며, 언젠가 그녀가 선장다운 포스 날리며, 마치 '퓨리오사'처럼 멀고도 험난한 길을 홀로 막아서며 나가주길 바랬건만, 군인 출신이라던 송중기는 운전하고, 선장이라는 김태리는 레이저 총을 쏴대더니 결국은 그냥 예뻤다. 예쁜데 연애 안 해줬으니 좋아해야하나 아쉬워해야하나. 그만큼 설정은 박약했고, 김태리는 너무 예뻤다. 그 예쁜 얼굴 안에서 숨길 수 없는 걸크러쉬 뿜뿜하는 김태리를 기대한 내게 가장 아쉬운 점은 장 선장이었다.


파격적인 드래드 머리에 그림같은 타투까지. 캐릭터를 구축해주려고 최선을 다한 진선규는 역시 개인기로 고군분투했지만, '가오갤' 주인공 중 하나처럼 보일 뿐 그저 그렇게 소비되었으며, 목소리만 들어도 자꾸 3끼 챙겨 먹고 싶어지는 유해진의 업동이도 그냥 '개그'를 담당한 것 이외에는 특별한 존재감은 없었다. '가오갤'에서 그루트는 대사 한 마디 없어도 할 일을 다 한다. 그렇게 많은 대사를 쳤던 업동이가 스토리 라인에서 특별히 하는 일이 없어보인 것은 대단히 아쉬웠다.



사랑받고 있는 사실을 영악할만큼 잘 확인하면서, 표현에 서툰 어른의 마음을 다 헤아려가며, 이 집 저 집 응원하고, 본인 맡은 바도 다 해내는 슈퍼 히어로같은 소녀 '꽃님이'는 사람이라 '똥'도 싸지만, 슈퍼 히어로 그 자체였다. 꽃님이를 위한 꽃님이에 의한, 꽃님이의 영웅 서사시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았다. 눈 색깔만 변해주면 산산조각 났을 사람들도 살려 돌려보내는 전지전능함.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AI 시나리오가 스필버그 감독 손에 들어가면서 갑자기 해피엔딩 맞이했던 기억이 난다. 모든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시던 스필버그 아저씨 덕분에 집요하게 후벼파는 스탠리 아저씨의 철학적 시도는 그냥 아기 로봇이 엄마 만나는 엔딩이 되어버렸다. 설 특집 영화가 된 것이다. 승리호는 '어린이용 설 특집 영화'였다. 허탈해서 헛 웃음이 났다.


결론적으로 빛 나는 캐릭터들이 러시안 훅 한 번 제대로 후려주길 바란 내게, 2시간 내내 잔잔한 잽만 여러개 날린 캐릭터들은 참 아쉬운 지점이다.


 


하지만, 이 깊은 실망의 기저에는 캐릭터 잘못은 없다. 캐릭터를 탓하기에는 이야기 자체가 얄팍했다.




굳이 스페이스 오딧세이처럼 우주 공간으로 나가지 않았어도 된다. 아름다운 CG 기술의 성공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이 이야기는 그저, 차고 넘치던 그간의 이야기들 '폭탄을 던져 어딘가를 날려버리겠다는 테러집단'과 '그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집단' 정도의 설정에서도 충분히 소화되었을 것이다. 그동안 톰 크루즈가, 크리스천 베일이, 맷 데이먼이 최선을 다했던 이야기로도 충분하다. 다만, 그 집단의 원 스트라이크 맨이 '에단 헌트 요원'처럼 능력 터지는 1명과 그를 도와주는 서브 멤버들이 아니라 '천진난만한데 능력 터지는 소녀'와 기사님들 정도의 설정이었어야 하나.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쉽다. 이야기가 너무 아쉽다.


감독님은 무엇이 하고 싶었을까. 내 생각에는 그냥 예쁜 CG를 보여주고 싶으신 것 같다. 2D로만 즐기던 웹툰의 우주 공간을 기깔나는 영상으로 만들어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잔잔한 인간미는 덤으로 장착하고. 이게 목적이었으면, 내가 실망했다고 이러는 건 오지랖이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셨고, 나는 그저 웹툰을 즐기듯 호호 웃으면 끝이다.


그런데, 나는 조금 아쉽다. 이 영화가 사회 문제를 후벼파고 싶어한 것만 같아서. 드러내놓고 주입시키는 이분법적 구조는 이미 지루하다. 영화 한 번보는 것이 맘 먹고 해야할수 있는 이벤트이던 시절은 지났다. 모두가 핸드폰 손에쥐고 지하철안에서도 영화한 편 뚝딱 본다. 학습의 정도가 다르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에 노출된 시청자들에게 메세지를 던지고 '갬동'까지 주는 일은 질적으로 힘들어졌다. 그래서 고3수업은 중1수업보다 선생이 힘들다. 이미 많이 들어둔 애들 앉혀놓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화자 자체가 '빡세게' 준비하지 않으면 금방 밑천이 드러난다.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설국열차처럼 드러내 놓고 쉽게 이해시키는 쪽을 선택했다면, 다른 신선함이 더 보충되었어야 한다. 상황만 보고 구조적 문제를 짚어내고 싶었다면, '로스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처럼 철저하게 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해도 충분하다. 가난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사는 인생에서 탈출하고 싶어 발버둥친 하워드 형제만 보고도 21세기 자본주의의 잔인한 모습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꽃님'이가 차라리 '태호 조종사'의 '순이'였다면, 어땠을까. 잃어버린 입양 딸 순이에게 나노봇이 주입되었다는 둥의 설정으로 보다 이야기가 좁혀진다면, 주윤발처럼 죽을 곳에 멋진척 나타나 '돈이고 나발이고'를 외치는 송중기에게 감정이라도 한 번 이입하고 끝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참 아쉽다.

참 멋질 수 있었는데, 참 시시하게 끝나버렸다.


짐승의 시간도 그렇고, 승리호도 그렇고, 왜 때문인지 나를 슬프게 하는 우리 영화들의 넷플릭스 개봉들.

언젠가는 넷플릭스 개봉작이 나로 하여금 2시간 내내 아무일도 못하게 하는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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