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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 Apr 01. 2020

살아지는 사람, 사람답게 살아내는 사람

how you do is what you are

감기 같이 지나가는 거라더니, 온 지구를 들썩거리게 하는 몹시도 강력한 전염병 덕분에 요즘의 나는 쳇바퀴 돌듯 집과 회사만 오간다. 원래의 일상도 회사, 집이 전부였던 점은 동일하건만, 그 때는 그나마 마음만은 늘 어디든 갈 수 있었던 탓인가, 분명한 이유는 없지만 유난히 답답한 봄날을 버텨내고 있다.



황사가 와도 마스크를 쓴 적 없던 내가 지난 2월부터 주머니마다 마스크를 넣어다녔다. 개인 위생에 효용이 있고 없고의 논쟁과 무관하게, 사람들로부터 지적 당하기 싫어서였다. 함께 일하는 선배 역시 나와 같은 스타일인데, 언젠가, 그러니까 그 유명한 31번 확진자가 나오기 전 언젠가,  그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 있다.


"회의 가기전에는 일단 챙기자. 이상한 소리 듣고 싶지 않다."

"네. 저도요. 일단 튀고 싶지 않아요."

"내 말이... 무식한 소리일 수는 있겠지만, 난 그냥 지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마스크는 쳐다도 안 봤거든. 그런데 일단 나를 뭔가 피해줄 수 있는 잠재 바이러스처럼 쳐다볼까봐 챙기게 되더라."

"저도요. 그리고 동선 공개되는 거 보니까, 일단 걸리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동선 오픈되면, 정말 불쌍한 '비구니'같다고 우스워 할 것 같아서."

"그러지 말고, 봄 되면 좋은 남자 좀 만나봐. 모임도 나가고."

"봄 되면. 하하하."


우리는 정말 2주만 지나면, 이 모든 것이 한낱 소동으로 끝날 것이라고 굳게 믿었고, 그 놈의 봄이 오길 그렇게 빌었다.




신파 드라마 싫어하고, '국뽕' 분위기 스포츠 중계에 몸서리치던 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뉴스들이 많아졌다. 하얀 가운의 의사들이 왜 존경받는 직업인지 보여주는 뉴스들을 보면서, 누가 울린 것도 아닌데 대성통곡 한 날도 있었다. 기사를 다루는 톤이나 구성은 흡사 '국뽕 중계'와 유사할 수도 있지만, '메르스때도 난 안걸렸다'며 가족들을 위로하고 대구로 자원 봉사를 떠나는 60대 간호사 선생님의 단단한 목소리를 듣자 눈물이 주르륵 흘렀고, '내 비록 늙었으나 아직 쓸만하니 나를 데려가라'는 은퇴한 의사 선생님이 방호복을 입는 모습이 화면을 지나갈 때에는 목이 메고 코끝이 찡해지더니, 땀에 절어 환자를 수송하는 소방대원들의 모습이 지나가자 대성통곡했었다.


이것은 그들이 죽으러 떠난다는 생각에 슬퍼서 나는 눈물이 아니었다. 뭔가 콕 찝어 말하기 어려울만큼 대단히 감동적이기에 흐른 눈물이었다고 생각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진료 과목의 선택이라는 것은 각자 다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기에, 세상의 의료진을 '돈만 아는 성형외과 의사'와 '돈 못 버는데 고생하는 호흡기 내과 의사'로 양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본인의 일상을 내려 놓고' 굳이 위험한 곳에 자원해가면서 일면식도 없는 대구 사람들을 위해서, 가서 어디서 자야 하는지, 뭘 먹고 어떤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도 막막할 낯선 땅, 대구로 내려가기로 의사결정한 의료진들은 반드시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은 능력이 없어 할 수 없는 의료 행위를, 본인의 일상을 내려 놓으면서까지 대가 없이 제공하기 위해, 어려운 발걸음을 떼는 것을 주저 하지 않은 그 마음들. 이 마음을 느끼자 나는 눈물을 흘린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존경심, 고통을 함께하지 못하는 점에서 오는 미안함 등등 겪어보지 못한 낯선 감정들 여러 종류가 한꺼번에 섞여나온 것이다.


유재석씨였던가, 자원봉사하러 가시는 의료진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방송에 나가자, 댓글에 '대구 사람 모욕하지 마라, 대구가 사람 죽어나가는 지옥이라 슬퍼서 우냐.'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 댓글을 쓴 사람이 진짜 대구에 사람이 아닐 것 같고, 게다가 성년자도 아닐 것 같다. 성년자라면, 그러니까 나이 찬 어른이라면, 왜 이 장면들이, 왜 이들의 움직임이 우리 마음을 울컥하게 하는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포기한 것과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일들의 무게를 잘 아니까.



사촌언니도 감염병 관련 일을 하는 의료진인데, 병원에서 나오질 못하고 있다. 언니가 늦게 낳은 예쁜 딸, 조카는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데 엄마 얼굴을 못 보고 있지만, 의젓하게도 제 걱정 말라며 엄마를 안심시키기까지 한다. 각종 숙제는 밀리지 않겠다는 둥의 약간 못미더운 약속을 남발하면서.


언니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좀 꾀 부리면서 해. 의료진을 갈아넣는 것 같아. 문과 출신 정부 사람들이 '문송'해서 그런 것 같지만."

"여기서 꾀 부리면 남들이 다 죽어. 그럴수는 없다."

"힘 내. 언니가 자랑스럽다. 의료진 모두 자랑스러워. 그리고 너무 고생할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워."

"자랑스럽긴. 너가 이상한거야. 여기 여자 의사 아들이 중학생인데, 선별진료소에서 교대하고 녹초가 되어서 집에 갔더니 시어머니가 그랬대. 지금 애 학원 스케쥴 다 밀리는데 엄마가 의사라고 봉사하고 다니는 게 애한테 얼마나 마이너스인지 아냐고. 지금 뭐 하고 다니는 짓이냐고."

"하아, 은마아파트 할머니 같다. 이것도 일종의 인종 차별적 발언인가."

"은마 근처 우성이긴 하지. 근데, 나는 우리 딸이 학교에서 따돌림당할까봐 걱정된다."

"왜."

"병원 사람이라고 하면, 애들 전염된다고 따돌린데. 방호복 입은 사진이나 인터뷰 나오면 그 동네 맘들이 사진 돌린다네."


알 수 없는 말들이 이어지면서, 나는 상대방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공부한단 말인가. 공부해서 대학 잘가서, 의사되라고 설칠 때를 생각해보라. 왜, 그저 돈이나 많이 벌어다 줬으면 좋겠나. 돈 많이 벌면 뭐 하게. 혼자 비싼 마스크 공수하고 방호복 개인 구매해서 살아내면 뭐하게. 어쩜 그렇게 생각이 저렴할까. 개천에서 용난 사람들이 자다가 깨서도 '돈 많이 벌고 싶다'고 하는 말처럼, 맹목적으로 애들 공부시켜 하고 싶은 일이 뭘까. 궁금하고 화가 났다.


이렇게 속 좁은 이모와 달리 조카는 의젓했다.


"엄마가 괜히 걱정하는 거야. 엄마가 하는 일때문에 나를 따돌릴 애들이라면 친구할 필요 없잖아요. 내 친구들은 그런 애들이 아니니까 걱정말아요."



'국뽕'일 것 같아서 클릭하지 않았던 유튜브 영상이 하도 화제가 되길래, 심호흡 가다듬고 열어본 뒤, 나는 또 혼자 펑펑 울고 말았다. 노인복지대상이었던 80대 할머니가 손수 마스크를 곱게 만들어 주민센터 직원들에게  전달하고 갔다는 뉴스를 토대로 만든 '참 이상한 나라'라는 동영상. 사실 그런 뉴스들은 꽤나 자주 있었다. 가령, 청각 장애인 청년이 몰래 마스크를 기부하고 도망갔다는 뉴스, 기초생활수급자가 본인이 지금껏 너무 많이 받았기에 뭐라도 하고 싶다고 모은 돈을 기부했다는 뉴스 등. 이런 뉴스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몽글몽글해 눈물이 나긴 했었는데, 이 동영상을 보니 눈물을 한 바가지 흘렸다.


다만, 이 눈물의 이유는 감동이 아니다. 나는 이 마음들이, 이 순수한 마음들이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뭐라도 해 주고 싶다는 이 지극히 인간적이고, 정 많아 마음 아린 이 순수한 마음들은, 이 놈이, 그리고 저 놈이 이용해먹을 것이다. 그들은 이 순수한 마음들을 알뜰하게 이용해먹을 것이다. 좋은 정보는 나 혼자 알아야 되니까 친구라는 사람 앞에 앉혀놓고, 역정보 흘려대던 사람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들은 이 마음들을 한 톨도 남김 없이 이용해먹을 것이다. 나는 면 마스크 만드느라 침침한 눈 비비셨을 할머니의 마음이 다칠까봐 눈물이 났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 돈이 어디 갈지 모르고, 방법을 모르는데, 뭐라도 하고 싶어 꼬깃꼬깃 모아둔 돈 주민센터에 내버린 할아버지가 마음 다치지 않고, 오래 오래 순수한 마음 지켜지면서 살아내지 못할까봐 속상해서 눈물이 났다. 각지의 김밥 할머니가 끼니 못 먹고 쉰 김밥 먹어가며 모아둔 저축액이 억 단위가 넘어가면, 동네 대학 재단에서는 사람을 보내 장학금으로 기부하라는 작업을 벌인다. 할머니는 그렇게 아껴 그 돈이 어디 좋은데 쓰일 줄로만 아신다. 나는 그 사진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났다. 이번에도 다른 듯 같은 이유로 눈물을 한 바가지 쏟은 것 같다.

 



중위소득 70%니 상위 30%니 뭔가 이해하기 어려운데 남일 같지 않은 '재난기본소득'이라는 게 뿌려질 모양이다. 연말정산할때마다 돈을 뱉어내야하는 싱글가정의 싱글인으로서 싱글세 징글징글하게 내 온 마당에 뭘 더 내라는 말은 아니니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그런데, 다들 이 돈이 그렇게 탐나는 모양이다. 특히, 10원짜리 한 장이라도 남의 돈으로, 법인 카드로 써야 직성이 풀리는 똑똑하고 야무진 배운 사람들이 그런 모양이다.


"좀 받어?"

"제가요?"

"다 주는데, 그거 우리 세금이야."

"소상공인이나 뭐. 이런 분들 주라는 거 아닌가요."

"그거 말고 암튼 우리 받아야지. 소득 기준이 뭐냐면."

"그냥 해당없는 사람인 척 하면 부자 기분 날것 같은데요."

"으이그, 부자도 다 받는데 그러고 있으니 아직 월세 사는거야."


난 없는데 있는 척 하며 사는 허깨비 같은 작은 그릇이라고 손사래쳤다. 듣고 싶지 않은 아등바등 물고 뜯는 이야기들. 뉴스마다 넘쳐나는 '나도 달라'는 사람들. 문득, 매번 '생리대'를 빌려달라는 말은 잘 하고, 빌려주지는 않던, '외제 비누를 빌려달라'는 말은 잘 하고, 핸드크림은 나눠 주지 않던, 대치동 살던 고등학교 동창이 생각났다. 일단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라는 사람들. 바탕을 보면 우아하게 살 법도 한데 실상은 잔잔바리에 껄덕대는 모습. 있는 척 오지게 해놓고 열어보면 아무것도 없는 옷장을 보여주기 싫어서 애쓰던 그 여자처럼 대충 살 때는 안 들켜도 되는 모습을 굳이 긁어서 들키는 지점까지 제 풀에 안내하는 인간들을 보면서 갑자기 달력을 보았다.


벌써 4월이 되었다. 이 봄은, 이번 1사분기는 이렇게 안 봐도 될 꼴만 보면서 지나가버렸다.



요즘들어 어떻게 살아야 사람다운 것인지 고민한다. 단순히 내일 월세 어떻게 내지, 내일 핸드폰 비 어떻게 내지 헉헉대며 살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곳간이 좀 차오르니 이제사 우아한척,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실 곳간과 인간다움은 대가관계가 아니다. 곳간이 모자라도 마스크를 만들어 내어오는 할머니가 있고, 곳간이 꽉 차 있어도 어떻게든 남 주머니에 들어간다는 '꽁돈', 재난기본소득도 내 주머니에 함께 들어와야 한다는 '쌈마이'도 있다. 인생사 어찌보면 애초부터 우아한 종자와 저렴한 종자가 나뉘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여차저차 하여 나는 조금 더 우아해지고 싶다.


준비되지 않은 그 어떤 순간을 맞닥드리더라도, 누가 봐도 내 마음가짐이 참 인간적으로 우아했다고 볼 수 있길 바란다. 내 모든 선택과 내 모든 행동이, 누가 봐도 참 우아했다고 생각되길 바란다. 일단, 이노무 전염병이 잦아들어 모두가 평온해진 다음에.


4월을 맞이하는 첫날 밤.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우아한 선택을 이어가며 살아내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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