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 설레며 살 수 있기를
출근하고 퇴근하기를 반복하는 내게, 하루살이에 급급한 내 시간에게 문득, 응원이나 위로를 해주고 싶다.
'네가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질거야.'
이렇게 강한 '뽕'이 있어야 하루를 살아내는게 좀 더 쉬울텐데. 요즘의 나는 그 무엇도 기다리지 않고, 그 무엇도 생각하지 않으며, 그저 기계처럼 하루를 버티는데만 집중하고 있는 데, 문득 그 점이 걱정된다. 핸드폰의 통화목록은 전부 드라이하고,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 통화는 없다. 나는 이렇게 겨우 겨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떠올려보자. 노력해보자. 내 옆에 아무도 없다 하더라도, 나 스스로가 만족하며 설레는 무엇은 있지 않을까. 하루를 되짚어 보자, 일부러, 굳이, 의도적으로 쥐어짜낸 내 하루의 기분 좋은 순간들, 가령, 사이렌 오더로 뽑아둔 커피를 성공적으로 Pick-up 한 뒤 택시를 잡아 타는데 성공한 순간, 햇살 덕에 보석처럼 빛나는 한강변을 내려다볼 수 있는 오후의 한 순간, 퇴근해서 돌아오는 길 출석도장 찍듯 들르는 아티제에서 ‘오늘은 일찍 끝나셨나봐요’라고 센스있게 인사해주는 아르바이트 아가씨와 눈 인사를 나누는 순간, 무엇보다도, 평온하게 침대에 눕는 순간이 최고의 순간이군. 비록, 나 혼자 핸드폰이나 쳐다보다 잠이 들어야 하는 침대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돌이켜보고 나니, 더더욱 내 인생이 외로워보인다. 누군가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로 시작하고, 전화로 마무리하던 그 시간들과 비교하니, 이야말로 홀홀단신 독거노인이 아닐 수 없다.
안되겠다 싶은 마음에 무엇인가 해 보기로 했다.
뭐든 배워볼까? 그러면 좀 설레지 않을까?
그래, 그러고보니, 나는 펜화며, 유화며 그림을 배우고 싶어하지 않았던가. 바스키아도 아니면서 혼자 색연필 쥐고 낙서하는 것만 십수년 하던 것, 이 기회에 제대로 배워볼까.
취미미술반을 알아봤다.
마포구, 관악구, 선생님들은 지천에 계셨다.
좋다, 좋아. 그럼 화실에 가서 그리자. 선생님들과 시간을 알아 보았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야 했고, 앞 뒤 레슨 시간별로 조정해가며 나를 위한 커리큘럼을 짠다고 했다.
갑자기 목이 조여지는 듯 답답했다. 커리큘럼, 약속된 시간, 쫓기듯 뛰어다니며, 약속 장소에 늦을까봐 조바심 낼 일을 생각하니, 배움의 길을 포기하고 싶다.
그래, 꼭 뭘 배워야 겠니.
그냥 혼자서 잘 노는 방법을 찾아보자.
나는 블로그니 마켓 셀러니, 그런 에너제틱한 일을 해보자. 블록체인도 아니고 블로그인데 뭐라도 내가 좋아하는 아이템을 찾아 열정적으로 시간을 보내보자.
차근 차근 사진도 찍고, 심지어 올리기도 했는데, 두 어번 하다보니, 나 스스로 내 블로그에 안 들어간지 한 달이 넘었다.
타이트하게 나 스스로 사진을 올려주고, 제품을 설명하겠다는 일련의 다짐은 힘없는 티라이트 캔들처럼 스물스물 사그러들었다. 재미가 없지는 않았지만, 시간을 쪼개서 바쁘게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점이 나를 옥죄였다.
퇴근하면 9시가 넘는데, 또 에너지를 끌어 올려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난 그냥 늦은 밤까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누워 있다가 이 생각 저생각 하다 자고 싶다. 생각나는 글이 있으면 글이나 좀 쓸 수는 있겠지만, 회사일과 전혀다른, 그래서 무엇인가 내게 집중을 요하는 월급 이외의 일은 집중할 자신이 없다.
무엇인가 손에 잡히지 않는 목표를 가지고 1분, 1초를 나눠쓰면서 이 일, 저 일을 멀티로 해결하는 일들은 지긋지긋하다. 나는 그냥 살아지고 싶다.
‘나 이거 해야되는데, 시간이 안 맞으면 어떻게 하지?’
라며, 발을 동동 굴렀던 학창시절처럼 살고 싶지 않다.
파랑새를 찾으러 등떠밀려 나선 애들마냥, 그 긴 시간동안 나는 학교를 바꿔가며 ‘up-tight’하게 굴렀고, 최근까지 나는 워커홀릭을 가장한 집착증 환자 밑에서, 24시간을 컨트롤 당하면서도 참아냈다. 더 나은 내일이 온다는 말에 속아, 참는자에게 복이 있다는 거짓에 발목 잡힌 채 내 하루를 음미할 여유같은 것은 완전히 빼앗긴 채 살았다.
다행히도 파랑새는, 행복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점을 이 나이에라도 깨달았다. 나는 그냥 내 하루를 살아내면서, 가장 기다리는 한 순간을 만날 생각에 설레어하며 겨우 겨우 살고 싶지,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내 오늘을 저당잡히며 정신 없이 보내고 싶지 않다. 등 떠밀려 헉헉 대는 모든 기억이 지긋지긋하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새로 배우는 것도,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저지르는 것도 나란 사람은 해내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하므로, 나는 새로운 것으로부터 설레는 그 무엇은 포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4시에 올거라는 네 말 덕분에 나는 3시부터 행복했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왕자님이 없는 이상, 나는 그저, 아침에 커피 한잔 뽑아 들고, 제 시간에 와준 택시를 잘 탔다고 잠시 행복하고, 오후에 잠깐, 그나마 날 좋을 때, 창문 바라보다 혼자 만족하고, 퇴근하고 돌아올 때, 파이 잘 팔아준다고 아는 척 하는 아르바이트 아가씨가 그나마 내 안부를 묻는 유일한 사람인지라, 그냥 이렇게 살아야겠다.
가정의 달이라며, 모두가 들떠 있을 때, 조카에게 인형하나 사준 것이 전부인 내 연휴를 돌아보다가, 문득, 지난해 오늘, 그가 내게 한 말이 생각났다.
'가족들이랑 여행 갔다가 친척집에 들러야 돼. 어쩔 수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