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life

이렇게 살다 죽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Nima

몸에 익은 하루 일과, 어느덧 다가온 목요일 밤.

내일이면 금요일이라는 생각에 달력을 보았다.

그가 없어도 시간은 잘 간다.

그가 없는데도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고 있다.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지난주 내내 같이 일했던 파트너로부터 오전에 메일 한 통이 왔다. 아주 간단한, 이 분처럼 베테랑이라면 절대 모를리 없는, 그래서 혹여나 내가 모르는 다른 가능성을 검토 의뢰한 것이 아닌지 겁을 내야할, 그런 무시무시한 포인트를 검토 부탁하셨다.


나는 혹여 틀릴새라, 교과서처럼 단단한 정답을 예쁘게 담아 답장을 보냈다. 보내고 나니, '아차, 오버다. 굳이 그런 걸 쓰나' 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 순간, 내선 번호가 울렸다. 해외 전화였다.


"네! 금방 보내주신 메일에 제가 검토하면서요."

"당연히 잘 해주셨겠죠. 앞으로 있을 00프로젝트도 잘 부탁드린다고 안부전화 드렸습니다.잘지내셨죠?"

"아, 반가워요."


그랬다.

그 분은 정말 거대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계시고, 간단한 리뷰를 맡겼더니 정색하고 헛다리 짚는 내가 긴장하고 있을까봐 전화를 건 것이다. 베테랑 답게 아마추어 긴장을 풀어주려고, 그리고 다가오는 프로젝트 이야기도 안부와 함께 알려주면서.


그 분의 따뜻한 목소리 덕분에 긴장에 쪼들리던 오장육부가 스르르 녹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 그러니까 죽은 사람 하기로 했던 그가 생각났다.


그는 내게 뭘 물어봐야겠다고 회의실로 불렀다. 누가 봐도 그가 더 잘 알것같은 내용이었는데, 굳이 나를 불러 놓고 상냥하게 묻더니, 이렇게 말했다.


"커피 마실래요?"


그가 내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노트북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무심한듯 쉬크한척 커피 타령할 때, 그 표정을 나는 잊기 어렵다. 나는 정말 무던히도, 커피 중독자처럼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계약서를 보다가 커피를 마셨다.


무엇을 해도 결론은 여즉 죽은 그 사람으로 향하는구나.

그와의 기억을 쓰레기통에 온전히 다 버리기까지는 아마 억만겁의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열과 성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부끄러움을 겨우 감춘 채, 눈도 못 마주치며 '커피 마실래요?'라고 하던 그도, 어느샌가 '커피?'라고 성의없이 던졌고, 결국에는 내가 구걸을 해도 커피 마실 시간은 없다고 했다.

우린 완전 박살이 났다. 세상의 모든 시시한 연애처럼 박살났다. 산산 조각 났다. 좋았던 처음, 그 순간에 비해 볼품없이 너덜거리는 그 끝, 그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는 절대 다시 그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만 받아들이면 되는 이 간단한 사실을, 이제서야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점점 그를 잊는 것에 관하여 성공할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니까, 오늘 그 파트너님의 매너 좋은 전화 한통으로부터 다 죽은 그 사람을 떠올리는 일 같은 것은 그만하도록 할 것이다. 지금 이순간, '레드 썬'한마디로 '뿅'하고 그만 둘 것이다.

요즘의 내 생활에 불만이 없다.

몸서리치게 외로움이 몰아치던, 그 지긋지긋한 겨울바람이 잦아들자, 드라이하고 볼품없는 내 홀홀단신 라이프에 꽤 익숙해졌다.익숙해진 만큼 편해졌고, 편해진만큼 만족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를 가고, 회사에서 일하고 사람들과 저녁이나 먹다가 집에 들어와 씻고 누워 인터넷을 하다 잔다.


나라는 사람은, 지금의 나라는 사람은 이 범위에서 한 발자국도 변하고 싶다는 욕구가 없다. 간절히 무엇을 배워놓아 다가오는 미래에 더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열정 같은 것은 이미 강산이 변하기 전부터 사라졌고, 새로운 사람과 알아가겠다는 다짐은 물론, 건강하게 무병장수하기 위해 운동을 하겠다는 다부진 결심 같은 것도 겨울바람과 함께 날아갔다. 나는 정말 기계의 부속품처럼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씻고 눕는다. 주말에는 본가에서 엄마와 하루를 보내고, 일요일에는 하루종일 청소를 한다.


내 곁에 그 누구도 없지만, 나는 이대로 살만하다. 이 상황에 대하여, 이 지경에 대하여 나는 만족하며 사는 것에 더 집중할 것이다. 이렇게 살다 죽는 것이다. 이렇게 10년을 살고 20년을 살면, 나는 은퇴한 할머니가 될 것이고, 하루라도 더 오래 살기 위해, 그제서야 부지런히 약 먹고 운동하고 바지런을 떨 수도 있다.


그 때까지는 그냥, 이렇게 살기로 했다. 이렇게 살다 죽어도 어쩔 수 없다.


샤워 하는데 문득 아빠가 생각났다.

약주 한 잔 하고 들어오신 아빠를 피해, 엄마는 내 방에 들어와 나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빠는 딸과의 수다에 끼고 싶어 안달이 났다. 문을 두드리고, 내 별명을 부르고. 엄마와 나는 귀찮아 죽겠다는 말투로 제발 방에 가서 자라고 했다.


빼꼼히 열린 문 틈으로 아빠가 이렇게 말했다.


"니들끼리 재미있지. 나는 개밥에 도토리야."


그렇게 실망이 가득한 얼굴로 혼자 흥얼 흥얼 노래를 부르던 아빠는 소파에서 골아떨어져 주무셨다. 그 날, 엄마와 내가 한 이야기는 정말 별 거 아니었다. 그 옷을 사냐, 마냐 같은 엄마와 딸의 수다, 뭐 이런 쓸데없는 얘기였다.


그 때, 왜 나는 아빠더러 얼른 들어와 이 옷 얘기를 좀 같이해보자고 하지 않았을까.


샤워기를 틀어놓고 엉엉 울었다.



이렇게 살다 죽겠지 싶다가도

이렇게 살다 죽으면 후회할까 걱정된다.


내가 그를 완전히 잊고, 그의 안부같은 것은 개나 줘버리라며 독하게 굴다가, 결국 그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죽는다면, 나는 울게 될것 같다.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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