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life

우리가 함께한지 50년이라

결혼한 베프의 백년해로를 기원하며

by Nima

어릴 적에 알았으면 참 좋았을 것들이 몇 개 있지만, 그 중의 으뜸은 아래의 사실이다.


'우리가 또 언제 보겠니.'


사람은 또 보기 어렵다.


누군가 계속 노력하지 않는한, 우리의 시간이 끝나면, 다시 보기 어렵다. 노력을 더 많이 하는 쪽이 포기하면 그나마 그 관계도 끝이다. 결국 우리는 헤어지면 또 언제 볼지 모르는 사이들이다. 사실 우리 사이는 변변치 않다.




각자의 이유로 한 공간에 몰려서, 어쩔 수 없이 가까이 지내야 했던 그 수많았던 별 것 아닌 사람들에 대하여,

함께할 시간도 끝이 있다는 사실을,

그 끝이 오고나면, 오기만 하면,

온갖 노력을 다 해야만 두 어번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조금만 빨리 알았더라면 좋았겠다 싶다.


졸업, 퇴사, 이사, 이민, 그리고 결혼.


우리가 헤어지게 되는 사연들은 대개 인생의 한 '절기'가 마무리될 무렵 생긴다. 아, 물론 그냥 대판 싸워 헤어질 수도 있지만.


보통의 경우, 각 절기의 마무리 단계에서는 당장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며, 자기는 매일 같이 나에게 연락할 거라며, 너나 바쁜척 하지 말라며, 매일 저녁, 함께 돈 만원씩 반반 내던 그 식당에서 별 거 아닌 메뉴를 찬찬히 훑으며 밥이나 먹자며, 호기롭게 헤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대개 1-2년 안에 무너지는 약속들이다, 그 놈의 야속한 현실 때문에.



'결혼'이 이별의 계기가 된다는 말에 반대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아주 단단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볼 때는 무지하게 밝은 성격이라지만, 실제의 나는 거의 '사기치는 수준'으로 어둡고, 폐쇄적이라고 한다. 틀린 말 아니다. 다만, 그렇게 배타적이고, 장벽이 많은 내가 그 와중에 오래도록 만나는 사람들은 정말 가까운 사람들인데, 내게 정말 가까웠던 그, 내 20대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었던 그는 결혼해도 달라질게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었다.


"너 00하고 만나면 안 돼?"

"왜?"

"00싫어? 키 크고, 몸도 좋고."

"친구잖아."

"야, 친구니까 사귀라고."

"뭐야."

"난 너 오래 보고 싶은데, 00이랑 나는 베프고, 그러니까 너랑 00이랑 사귀면 나도 너 오래 보잖아."

"사귀다 헤어지면 안될걸?"

"아냐,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안 달라져."

"달라져."

"나랑 내기할래?"

"내기는 무슨. 그냥 졸업하고 너 결혼하면 나랑 이렇게 못 놀 거면서, 왜 00하고 나는 엮어."

"나 결혼해도 너네랑 매일 볼 거야. 아니 매주는 보겠지."

"그 마음은 잊지 않을게."

"두고 봐. 나 결혼하면 어떻게 하는지."


그는 그렇게 나를 오래 보고 싶어서 나를 00에게 팔고 싶어했었다. 그러다 우리는 남자와 여자로 만났고, 그는 내가 아닌 여자와 결혼했고, 우리는 서로 연락하지 않는다.


그 뿐만인가.


내가 그렇게 붙어다녔던 내 베프는 독박육아로 과천 아파트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질 못하며, 내가 보낸 카톡은 아드님이 잠 들어야 겨우 볼 수 있다. 나는 그녀에게 서운하지 않다. 다만, 나와 그녀 사이에 놓인 '야속한 현실'이 우리 사이를 오래간만에 다시 본 순간, 어색하게 만들지 않기만을 바란다.




나는 촌스럽게도, 결혼하면, 가정이 우선이라는 주의다.

내 남자가 제일 중요하고,

내 아들이 제일 중요한 것.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렇게 사셨고,

나는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존경하는 외삼촌은 고등학교 2학년때, 고등학교 3학년 누나와 빵집에서 미팅을 했다고 하셨다. 나름 그 지역에서 공부를 제일 잘한다던 외삼촌이었는데 미모에 눈이 멀어 대학을 재수했다고 하셨다.


작년에 팔순잔치를 하셨던 외삼촌은 그 빵집 미팅 누나와 53년째 살고 있다. 그 연배 치고 180이 넘는 덩치에 누가 봐도 잘 생긴 외삼촌께 한 번 여쭤본 적 있다. 정말 인생에 여자가 한 명이냐고.


외삼촌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연한 거 아이가. 그 미팅 한 번 하고 여기 까지 왔네."


연분이라는 말, 이거는 정말 다른 그 어떤 인연이랑은 비교할 것이 아닌 것 같다.


열 일곱에 만난 같은 반 친구,

인생의 고비마다, 모든 것을 공유했던 내 남사친.

김 군이 결혼했다.


저는 멍청해서, 나는 소심해서, 푸 앤 피글랫이라던 세월이 20년인데, 그나마도 푸가 더 능력이 있어, 장가를 가고 말았다.


결혼해도 똑 같은 것이라는 진부한 말을 남긴 그에게

제발 달라지라고 쿨하게 말하고 돌아왔다.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지긋지긋했던 시험들이며,

그 지긋지긋했던 각종 남녀문제며,

그 지긋지긋했던 먹고사니즘은 이제 예쁘고 지혜로운 와이프님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실 것이다.


멋진 척 박수치고 돌아오는 길.

나는 정말 늙는 것이 무서워졌다.

나는 정말 혼자 양로원에 갈 수도 있겠다.




예전에 만난 무리보다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새 인연과 만날 수도 있다. 새로운 친구, 새로운 인연에게도 일정 부분의 시간을 써야하고, 그러다보면 예전 친구는 점점 단톡방에서 'ㅋㅋㅋ'만 연발할수도 있다.


내 인생이란 작품에는 러닝 타임이 한정되어 있고,

각 단계별로 새로운 터닝 포인트 마다, 새로운 인연이 있고,

그래서 새로운 무리를 이룰지도 모른다.


나 역시 예전의 친구로서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고,

나 역시 새로운 인연으로서 조바심을 낼 수도 있다.

어디 하나에 치우쳐 한 가지 감정만 강조하기엔,

나와 당신의 관계에서, 내가 무엇을 얼마나 잘 했는지 자신이 없어 그저 웃으며 넘기고 싶은데,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게 있다.


나는 당신의 가족 다음의 사람이며,

그 가족의 이름으로 험난한 인생 여정을 시작하시며, 나와 멀어질 가능성에 대해서 기쁘게 예상하고 있다고.

당신과 나라는 인연이 여기서 끝은 아니겠지만,

당신 인생의 새로운 막이 열렸고, 그 막의 주인공은 당신의 가족이라는 것.

당신이라는 영화에서 조연을 맡은 내가, 그 막이 오름에 진심으로 축복하고 있다는 것, 잊지 마시라.


당신은 반드시 50년을 살아내고 이렇게 말해주시라.

"우리가 함께 산지 50년이라."


이것은 내 기준 최대의 축복이오, 김 군.




오후에 마신 홍차 덕분에 잠이 안와 술한잔을 하다보니.

어제 있었던 결혼식 이야기를 조금 끄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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