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A Star Is Born 을 보고
가끔, 그래도 제일 자주 퇴근 후 한 잔하는 선배가 물었다.
"그럼, 걔를 찼단말이야?"
"찼다기보다. 나는 개털이었으니까. 뭉게는데 일조한 거지."
"야, 너무 허무하다."
그는 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곱씹다가 내가 한 때 결혼할 수 있었던 그 옛날 이야기를 했다. 한 두번 얘기했었던 것 같았는데, 아니었던가. 나는 히히 웃어가며 손사래를 쳤다. 선배는 발을 동동 구르는 듯 했다.
"여전히 걔가 제일 아까운 남자였다는 거잖아."
"맞아요. 내게는 과분했던 정말 멋있던 사람."
"그런데다가 개털이 다 뭐야, 공부만 끝나면 되는 거였는데. 너무 양심적으로만 스케일링 한 거 아니니."
"너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공부한다는게 벼슬도 아니고, 나는 거지에다가 밑빠진 독이었고, 그는 그 모든 걸 뒤집어 써야 했어요. 그런 상태인 주제에 동등한 척 하는 건 싫었어요. 알잖아, 그 때의 내 상황."
"하아. 미치겠다. 아까워."
오빠는 계속 입맛을 다셨다.
헤어지고 돌아서서 자정 무렵, 오빠가 톡을 보냈다.
'옛날 얘기를 하다보니, 상념이 많아지는구나. 마음이 뭔가 아리다.'
듣기만 해도 제3자를 아리게 하는 일들.
왜 그랬냐고?
너무 사랑하니까.
사랑해서 그랬어.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휴일이 낀 월요일, 그렇게 술을 진탕 마실지 모르고 나는 점심 무렵 영화를 하나 예매해두었다.
A Star is Born.
볼 영화에 대해 아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노래가 나오는데, 남자가 브래들리 쿠퍼라는 것, 이것만 알았을 뿐인 나는, 숙취에 허덕이던 나는,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내내, 오래도록 들춰내지 않았던, 감정을 다시 꺼내들었다.
너무 사랑해서 그랬는데, 미안해서 죽을 것 같은데, 그래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그 죄스러운데 복스러운 감정.
누구나 예측가능한 결말이 시작도 되기 전부터, 나는 촌스럽게도 눈물 콧물을 찍어내고야 말았다.
[스포일러가 있음]
잘 나가는 락앤롤 스타 잭슨 메인(브래들리 쿠퍼)은 술과 약에 쩔어가며 정점을 찍은 가수인데, 우연찮게 들린 퀴어 바에서 샹송을 부르는 여자, 앨리 (레이디 가가)에게 빠진다. 앨리는 이쪽 경력은 일천한 아마추어 싱어인데, 잭슨은 그녀를 신데렐라로 만들며 사랑도 나누는, 어찌보면 꿩먹고 알먹고, 도랑치고 가재잡는 시너지 폭발의 모멘트를 잠깐 누린다. 그러다가, 여자가 더 잘나가게 되고, 하필이면 남자는 점점 하향세를 그리고, 약과 술이 사람 잡고, 고쳐보려 노력하지만, 결국 그녀의 발목을 잡을까봐 걱정되고, 그녀가 그렇게 괜찮다는데도 그는 그렇게 그녀를 떠난다. 그 방법 참 모질고 독한 것으로다가.
어찌보면 무난하고 보편적인, 이미 익숙한 사랑얘기의 새드 엔딩일 뿐이지만, 그 독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잭슨을 바라보는 것이, 잭슨의 마음이 읽혀지는 내내, 너무나도 따갑고 아파서 견디기 힘들었다.
앨리의 장점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아는 사람.
앨리가 더 큰 세상에 나가 훨훨 날기를 간절히 바란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날아오르면, 내 옆에 없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그녀를 질투하지 않을 만큼의 존재감을 유지해야한다는 압박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뒤쳐지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사랑받고 싶은 고독감 등등으로, 미친듯이 복잡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술과 약에 몸을 맡기던 잭슨.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 너 말고.
다른 사람 (Stranger)는 사랑하지 않겠다.
새로운 사람은 보지 않겠다.
네 옆에 있고 싶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쓸 때마다 묻어져 나오는 묵직한 깊은 사랑을 겨우 한 번 불러줘 놓고, 그는 못난 자기가 혹여라도 그녀에게 짐이 될 것이 무서워, 피눈물을 뿌리며 목을 멘다.
마지막 결말은, 그가 살아 있을 때, 앨리에게 들려주고 싶어 몰래 몰래 적어둔 사랑 노래를 부끄러워하며 처음 들려주던 그 장면과 오버랩처리 되었다.
불 같이 타오르는 사랑의 감정이 죄스럽고 미안할 지경에 이를 만큼, 앨리를 열렬히 사랑했던 잭슨의 마음을 이 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나오는 길에 다시 확인했다.
감독이 브래들리 쿠퍼, 자신이라고 했다.
오 마이 갓.
붉어진 피부에 지저분한 턱수염 장착은 기본, 남부 남자 특유의 뭉게는 액센트까지, 완벽하게 애리조나 남자가 되어버렸던 브래들리 쿠퍼가 그 모든 장면을 스스로 연출했다고 한다. 대단한 배우안 줄은 알았지만, 대단한 감독이기 까지 하다니. 영화의 여운을 깨 먹은 것은 여우같이 완벽했던 감독의 존재였다.
진부한 사랑 노래 메들리가 2시간 넘게 이어졌지만, 나는 단 한 순간도 잭슨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진 적이 없다. 브래들리 쿠퍼는 적어도 나라는 관객으로 하여금, 한 순간도 잭슨의 마음에 감정이입하지 않는 허튼 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두 시간 내내 잭슨이 되어, 가시밭 뒹구는 그 모진 고통을, 기꺼이 받겠다는 그 즐거운 모순을 온 몸으로 함께 겪었다.
너무 사랑해서 그랬던 것,
그래서 미안한 것,
그런데도 계속 사랑한다는 것.
이 말도 안되게 복잡한데, 따지고 보면 너무 간단한 이야기를 간만에 꺼내보게 되었다.
행복했다.
이 영화를 봤다는 친구가 있었다.
개봉일에 각자 혼자 개봉작을 보고 나와, 말 못할 비밀 처럼 속으로 삭이던 우리는 우연찮게 공유된 이 독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브래들리 쿠퍼의 자상한 눈빛.
레이디 가가의 대담하고 솔직한 도전.
둘 다 같은 영화 두 번 더 볼 것처럼 이야기하다가 한 지점에서 갈라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을 주고 받다가 결국싸운 장면에 대한 것이었다.
친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굳이 긁는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어. 잭슨도 지가 굳이 그런 말을 안 했으면, 서로 바닥을 안 보는 건데, 왜 그런데."
자괴감과 불안함이 증폭시킨, 뒤틀린 속에 엇나가는 말을 속절없이 뱉어내던 시간이 떠올랐다. 방법이 없는데, 약도 없는데. 나는 피식 웃었다.
"어쩔 수 없어. 못난 놈이 엇나가는 순간에는 잘난 놈이 알아듣고 참아주거나, 같이 싸우면 더 사랑하는 사람이 미안하다고 먼저 접어주거나 하는 수밖에."
"그러니까, 왜 미안하다고 접을 일을 벌이느냐고."
"약도 없다니까. 못나서 그래. 그런데 너무 사랑해서 그래."
"아, 나참. 그래서 나는 예술인이 남자로 안 보이나봐."
예술인인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은, 너무 사랑하는데, 못난게 미안한, 바보가 하는 일이다.
잭슨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렇게 상처줘놓고, 돌아서서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말해서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하는 속에는 못나게 구는 나를 버리지 말라고, 나 이렇게 엇나가게 두지 말라고, 나 계속 온 몸을 불태우며 산산 조각 나더라도, 너를 사랑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절절한 기도가 들어있다.
그와 내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둘다 못났었지만, 우리는 둘다 먼저 굽히지 않았다.
우리는 결국 바보들이었다.
내 생애 제일 아까웠던 남자이야기를 해 놓고도, 가장 별 볼일없던 그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이별 자체가 바람직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나, 그 순간이 아쉬웠다는 점에 대해서는 여전하다.
잭슨의 마지막 선택은 나로 하여금, 잠시나마 잊고 있던 어떤 날들을 기억나게 했다.
나는 여즉, 이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