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life

Good to have, bad to need

사랑하고 싶은, 사랑받고 싶은 계절

by Nima

24시간 중에 제일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본부 사람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끼니때마다, 내가 밥은 먹고 사는지 챙기는 팀이 있다. 우리 팀 일부터 빨리 해달라는, 귀여운 아부가 없진 않지만, 제일 죽이 잘 맞기도 해서 여즉 신나게 같이 다녔는데, 그저께 그 팀 김과장 덕에, 나는 다시 고독병이 도졌다.


"야, 이 집 진짜 맛있다. 와이프랑 한 번 와야겠네."


아.

김과장도, 부장님도 다 있는 처자식이 나에겐 없었다. 나는 그 말이 몹시도 부러웠다. 내 표정이 무너지자 왜 그러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내가 불쌍하다고 말했다.


"과장님이 뭐가 불쌍해."

"누가 맛있는 집, 이렇게 비싼집, 와보면 내 생각해줄까요?"

"하하하, 그게 뭐 대수야."

"야, 김과장이 잘못했네. 나는 안 그랬다."


웃음으로 마무리된 저녁 자리를 파하고 돌아서는 길, 동갑내기 김과장이 내게 물었다.


"결혼이 하고 싶은 건 아닌 것 같아."

"나?"

"응, 이 과장은 결혼이 급한 건 아니야."

"그럼 나 뭐가 급해?"

"연애를 해. 연애가 급한 거 같아."

"하하, 말은 쉽지. 연애를 하자. 그래, 언제, 어떻게"


김과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과장은 일단 회사말고, 다른 관심거리를 가져.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돼.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우리랑 먹으면 어떤 남자를 만나니."

"고마워. 그런데, 일은 하고 가야지. 야근이 있는데 어떻게. 나랑 놀아주기 무섭지? 매번 말끝마다 외롭다고 징징거려서. 이제 안 그럴게. 연말이라 무너졌나봐."

"그런거 절대 아니고."


김과장은 주먹을 쥐며 말했다.


"결혼한다고 비싼 거 거둬먹이는 거 아니야, 진짜. 나는 결혼기념일이라는 숙제가 있어서 고민하던 중이었거든. 그래서 그랬어. 한 달남았다. 올해 아직 안 끝났어."


김 과장은 애처가이다. 애처가가 와이프 밥 한 번 좋은 거 사주고 싶어하다가, 험한꼴을 당했다. 올한해의 나는 결국 요모양 요꼴이구나.




처음엔 뭐든 다 '내가 할게, 내가 낼게'를 외치다가도 결혼하면 무조건 반반이라고들 한다. '반반무많이'의 컬쳐탓을 해야하나 웃은적도 있다.


친구 하나는 이런 고민을 털어 놓기도 했다.


"통장을 안 보여주니까, 나는 하숙집 룸메 같아."

"통장을 보여주면 룸메 말고 부인되나?"

"너는 몰라."


친구는 섭섭해보였다. 나한테 말고, 신랑한테.

마트가서 주차비를 낼 때도 '니가 내'라고 하고,

제가 살 때가 되자, '싼 거 먹자'를 외쳤다는 말, 이 말 자체는 친구에게 중요하지 않아보였다.


친구는 지금, 뜨거웠던 연애시절의 오빠가 그립다.

돌아서면 보고 싶었던, 헤어지면 전화걸었던, 옆에 없으면 못 살것 같은 그 때 그 오빠 말이다.


오빠는, 지금의 오빠는, 드라이하게 생활인이 되어버린 오빠는, 친구를 섭섭하게 하고 있다. 결혼은 연애랑 다르다고, 그래서, 싱글일 때 즐기라고, 연애나 실컷하라고들 말한다. 나는 그래도 섭섭해할 대상이 없다. 나는 완전히 혼자다. 나는 아주 꼴이 좋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더 좋다."


70이 넘은 이모가 이모부를 구박하며 한 말씀.

이모부가 놀러라도 가시면, 밥을 안 해도 되어서 좋다고 농을 치셨다. 모두가 안다. 이모가 50년 해다 바친 저녁상은 수라상이고, 그 수라상 한 번 차리는 것은 여느 집 잔치상 공수가 든다. 그러니까 이모부는 집 밥을 찾고, 그러니까 이모는 이모부가 놀러가면 행복하다. 그래놓고 둘은 매번 '카톡질'이다. 요새는 '읽씹'도 아신다.


부부는 남녀이자, 친구이다.

남녀는 남녀이자, 친구이다.

남자는 남자구실만 하는 게 아니라, 사실 내 하루에서 가장 많이 생각되고, 가장 많이 교감하고, 그러다보니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친구로서의 세월이 쌓이면, 남녀로 쌓인 시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게가 생긴다. 때론 섭섭하고, 때론 속이 끓겠지만, 술에 꼴아 아무 정신이 없을 때, 문득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우리 와이프, 사랑하지."


와이프라는 말, 참 낯설다.

나는 정말 몹시도 그 말이 낯설다.



회사 인사팀의 꾀돌이 대리가 대표님께 주례를 부탁했다.

대표님은 흔쾌히 주례를 맡으셨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음엔 누구 주례 해야 될까요?"


사람들은 낄낄대며 나를 가리켰다.

나도 낄낄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있으면 좋은, 애타게 필요하면 슬픈,

남자를 만나는 일은 참, 녹록치 않다.



무생물이라 그런지 일복이 터져,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달력을 보니 12월이 시작된지 며칠이다.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가는, 겨울밤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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