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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Jan 17. 2020

맑은 날들




 마침내 해가 비치는 하늘이 무척 반가운 오후였다. 오늘도 느긋한 취준생은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선다. 비 오는 날 걷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맑은 날은 걸으며 생각하기에 더욱 좋다. 정신도 맑기 때문이다. 걸으면서 나는 주로 사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삶을 저울에 달아본다면 그 중량은 얼마나 될 것인가? 어떨 땐 한없이 무겁게 느껴져 하루도 제대로 못 살아낼 것 같으면서도 가끔은 삶이 너무 가볍게 느껴져 허무하고 당황스럽다. 삶의 중량은 그 주인의 마음 가짐에 따른 것일 테다. 나에겐 지금 이 순간, 사는 것이 좀 무거워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래도 강아지와 날 좋은 날 산책하는 일은 항상 마음의 티끌을 한 꺼풀 벗겨내준다. 털이 더러워지는 건 아랑곳 않고 젖은 나뭇잎 사이를 헤집는 강아지의 몽실한 뒷모습이나 나무 밑동에 코를 대고 무아지경으로 냄새 맡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행복하다. 그렇게 걸으며 생각에 잠기다 오늘 생각의 실 끝은 엄마를 붙들었다. 혹시 주변에 인생이 실타래처럼 꼬이고 불행한 사람이 있는지, 나는 있다. 그는 바로 우리 엄마. 

 

 우리 엄마는 젊을 때부터 누가 봐도 힘든 삶을 살아왔다. 엄마는 이제 막 쉰을 넘었고 궂은일을 10년은 넘게 더 해야 하며 작년에 갑자기 쓰러진 남편도 부양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아는 그녀는 결코 불행하진 않다. 마음이 지치는 순간이 있지만 우리 가족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 


 엄마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엄마의 팔자를 안타깝게 여기고 불행할 것이라 짐작하겠지만 그들의 짐작대로 그녀의 삶이 불행이라면, 그 인생이 불행이라면 나는 오히려 거기서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앞으로 내 삶이 아무리 불행해져도 우리 엄마만큼은 행복할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 인생이 좀 덜 무겁게 느껴진다. 


 우리 엄마처럼 정직하고 성실하게만 살아가면 나는 적어도 행복한 사람은 될 테니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엄마는 우리에게 가진 것이 없어 항상 미안해 하지만 이렇게 큰 자산을 물려주었는지는 잘 모른다. 언젠가 엄마에게 꼭 말해주어야겠다. 이런 귀한 걸 물려줘서 정말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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