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였던 꼬꼬마와 나는 어느 순간부터 묘한 썸을 탔다.
그러다 갑작스레 꼬꼬마가 고백을 했다.
처음에는 친구끼리 왜 그러냐며 안된다고 고백을 밀어냈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한 공간에서 나는 고민하고 걱정했다. 그리고 망설였다.
그러다 다시 마주 앉은 나는 꼬꼬마에게 '그러자'라고 답했다.
고민 부자인 나는 이번에도 고민의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고민했다.
'진짜 소중한 친구인데... 사귀다 헤어져서 친구를 완전히 잃으면 어떡하지?'
'나 때문에 꼬꼬마도 힘들어지면 어떡하지?'
수많은 고민은 이렇게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었다.
고민의 크기가 컸지만, 그보다 꼬꼬마를 좋아하는 마음. 이렇게 어색한 사이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꼬꼬마의 고백에 응했다.
어색했다.
10여 년을 친구로 지내왔던 꼬꼬마와 손을 잡고 걷자니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우정의 주파수가 아니라 간질거리는 연인의 주파수로 이야기를 나누자니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사랑해라는 말에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어지기도 했다.
근데 참 좋았다.
간질거리는 연애 초반의 어색함도,
우정으로 쌓아온 시간 덕택의 편안함도,
우리 관계에 새로운 장이 펼쳐진 설렘도.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힘든 내색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못하는 걸 들키기 싫어하고,
이 정도는 힘들지 않다고 괜찮다고 포장했다.
근데 꼬꼬마에게는 자주 속 이야기를 꺼냈다.
때로는 편지에 꾹꾹 눌러 담아 부치기도 하고,
때로는 전화로 재잘재잘 떠들기도 했다.
그런데 진짜 아프고, 정말 힘들어지자 꼬꼬마에게까지 나를 숨겼다.
괜찮은 척, 잘 지내는 척 웃었다.
그렇게 척을 하며 살다 보니 내가 정말 괜찮아진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래서 꼬꼬마와 연애를 결심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어둡고 축축한 민낯을 들켜버렸다.
웃으면서 괜찮은 듯 포장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의 병은 전보다 심해졌다.
우울도, 공황도.
그래서 꼬꼬마와 데이트하는 약속에 못 나가기 일쑤였고,
연락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무서웠다.
꼬꼬마가 '진짜 나'를 보고 떠날까 봐.
속았다고 생각하고 도망갈까 봐.
나 때문에 꼬꼬마까지 망가질까 봐...
그래서 꼬꼬마에게 일부러 못되게 굴었다.
신경질을 내기도 하고, 마음을 아프게도 했다.
내 마음에서 밀어내는 작업이었다.
꼬꼬마가 나를 떠나도 내가 조금이라도 덜 다치게끔.
그 시절 나는 꼬꼬마에게 정말 몹쓸 여자친구였다.
나는 웃는 가면으로 어두컴컴함을 덮어두고 연애를 시작한 사기꾼이었다.
그리고는 사기 연애가 들킬 위험에 처하자 적반하장으로 화를 낸 나쁜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