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야 보이는 것들

1일 1드로잉, 만드는 그림책

by 혜윰

#144일차

*2021.12.7. 10분 글쓰기*

바느질, 뜨개질, 퀼트...핸드 메이드 이야기


중학교 가정 시간에 처음 뜨개질을 배웠다. 몇 가지 뜨개 기법을 배운 다음 가로 15cm, 세로 15cm 이상 되는 직사각형의 뜨개질로 실기평가를 받았다. 평가용 외에는 아무 쓸모없는 네모난 천이라니.. 가정과 선생님의 의욕이 꺾인 것인지 집에서 부모 도움을 받아올 아이들이 있을까봐 그렇게 제한하신 건지 기억나지 않는다. 무념무상으로 뜨개질을 하면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직접 만든 네모난 천이 자랑스러워 제출 전에 다림질을 했다가 누렇게 타버렸던 일이 지금도 생각난다.


고등학교 때는 잠옷 바지를 만들었다. 친구들과 약속해서 동대문에 찾아가 마음에 드는 옷감을 골라 몇 마 떼어 올 때부터 재밌었다. 실습실에서 옷본을 대고 천을 잘라서 박음질, 세발 뜨기, 공그르기, 홈질, 시침질.. 미싱 없이 손바느질로 체크무늬 파자마를 완성했다. 바지에서 밑위길이가 중요하다는 걸 그 파자마를 만들며 깨달았다. 가랑이가 많이 불편했지만 내가 만든 바지라서 한동안 즐겨 입었다. 뜨개질도 잠옷바지도 실기 평가결과는 좋지 않았고 핸드 메이드에 재능 없음을 확인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격무에 시달린 교사로 추천되어 마음 회복(?) 연수에 갔다가 라탄 바구니 공예를 처음 해봤다. 얇은 등나무 끈을 물에 불렸다가 순서대로 엮으니 금세 바구니가 완성되었다. 바늘이나 송곳이 필요 없고 맨손으로 가능하다. 재능 여부를 떠나 누가 만들든지 결과의 차이가 크지 않고 노력만 하면 그럴싸한 만듦새를 모두에게 안겨주는 라탄 공예가 마음에 들었다. 만들기가 복잡해서 소수의 아이들만 성취감을 맛보고 재능이 부족하거나 끈기 없는 아이들이 소외되지 않는 제작방식이 평화롭고 대단해보였다. 모든 학생들을 포섭할 수 있고 만드는 법이 안전해서 반 아이들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안고 돌아왔다.


며칠 전 다문화교육지원센터에서 주관한 <평화, 사람책으로 만나다> 마지막 수업에서 마음 돌봄 동화책 키트를 받았다. 재주 없는 손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 만들기 재료를 앞에 두면 호기심보다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종이가 아닌 펠트라서 소리 나지 않는 "조용한 책"으로 불리는 그림책 키트는 코로나바이러스로 불안한 아이들에게 안정을 찾아주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졌다. 큐알코드로 연결된 동영상을 보며 가위로 재단하고 양면테이프와 약간의 바느질을 하면 끝난다. 너무 간단해서 별거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자꾸 눈길이 가고 정이 들어서 단추를 끌러서 여러 번 매만지며 저절로 여러 번 읽게 되었다. 직접 경험해보니 책을 기획한 이들의 아이디어가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서 별을 보기 힘든 건 빛공해 탓이다. 고층빌딩, 야경을 위한 불빛들이 24시간 켜있으면 하늘의 별은 자취를 감춘다. 주변이 어두워야 별은 반짝인다. 부정적이고 어두운 감정이 내게 찾아와 마음을 가득 채우더라도 별처럼 빛나는 새로운 배움과 깨달음이 있다. <알록달록 내 마음>은 불안이나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일러준다. 이어서 내가 가진 힘을 기르기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가방에 담아보자는 내용이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들, 나를 지킬 수 있는 아이템은 무엇일까?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 속에서 리스트를 만들어보니 마음이 잔잔해졌다.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라는 이문재의 시가 있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라는 시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엄마가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뜨개옷을 만드는 것도 기도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난로를 펄펄 끓이는 것도 기도하는 것이다. 추위로 서리가 낀 뿌연 유리창으로 들여다보이는 실내가 편안하고 포근해 보이는 건 겨울이 선물하는 풍경이다. 난로 위 주전자가 뿜어대는 수증기는 칙칙폭폭 기차 연기가 되어 우리를 아늑한 곳으로 데려간다.

매거진의 이전글진정한 노후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