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일차
2021.11.18. 글쓰기
00은 나의 힘
'수치심'에 대한 베스트셀러 책을 쓰고 테드 강연으로 유명한 브레네 브라운은 수치심을 단절에 대한 공포라고 불렀다. 나의 부족한 점을 상대가 알게 되면 나를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따른다. 사람들은 거짓된 자아상으로 자신을 꾸미거나 타인에게 자기의 참모습을 쉽게 열지 못한다. 모욕이나 모멸을 느낄 때도 우리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분리되어 배제된 느낌과 고립감을 경험한다.
모욕은 한 인간을 집단적 우리(WE)에서 고립시키는 행위다. 모욕당한 사람은 국외자가 되고 비인칭적 존재가 된다. 모욕을 당하면 내면의 공감 본능의 스위치가 꺼진다. 따돌림을 당해 존재감을 못 느끼고 자신의 가치를 찾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다른 사람의 곤경 앞에서 공감의 수문을 열 수 없다. 다른 사람과 정서적인 유대를 나눌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은 위축되어 뒷걸음질 치게 된다. 버려졌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게 된다. 왜 화를 낼까? 화를 내는 것만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제레미 리프킨 [공감의 시대]
화를 내는 것만이 유일한 소통 방법이라는 구절에서 2년 전 뉴스가 떠올랐다. 당산역에서 한 취객이 주사를 부리며 소란을 피웠다. 두 명의 경찰이 제지했지만 남자는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 근처에서 지켜보던 청년이 다가와 말없이 그를 끌어안았다. 영상은 "포옹의 힘"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는 존엄의 힘으로 그 남자의 억울함과 화가 가라앉았다고 생각한다. 청년이 보여준 것은 타인을 향한 존엄이었다.
오늘 주제 '00은 나의 힘'에 들어갈 단어로 '존엄'이 떠올랐다. 게랄드 휘터는 독일의 유명한 뇌신경과학자로 존엄에 대해 연구한 결과 존엄이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갖고 있는 본능"인 것을 밝혔다. 모든 아이들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감각을 지니고 태어났으며 “존엄함이란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하는 방법, 인간이 인간을 위해 책임지는 태도의 문제로 얼마나 존엄한 관계를 맺느냐의 문제”라고 정의했다. 매주 목요일마다 대학원 청강 수업이 있는데 오늘 수업에서 존엄한 관계에 세 가지 차원이 있음을 공부했다.
1.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2. 내가 남을 어떻게 대하는가?
3.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존엄은 사람을 수단이나 이용가치로 평가하지 않고 대체 불가능한 목적, 유일무이한 존재로 대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좌지우지되고 자신에 대한 가치 척도로 삼는다. 상대가 나에게 웃으며 다가올 때 순수한 호감인지 내게 물건을 팔려는 건지 예민한 촉수를 세운다. 내가 남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의 차원으로 생각을 넓히면 나에 대한 반성적 사고가 일어난다. 오늘 나는 학교에서 주변 선생님들, 학생들을 목적으로 대했던가? 집에서 남편, 아내, 아이, 부모님을 존재로 대했는가?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 모두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는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이다. 몸에 난 상처는 곧잘 돌보면서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자신을 더 아프게 하기도 한다.
연민의 대상 중에 자기 자신이 없다면 불완전한 연민이라는 말이 있다. 일터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수치심과 모욕을 느꼈다면 자책하지 않고 그런 자신을 연민의 마음으로 돌보고 마음챙김을 하는 것도 존엄을 지키는 한 방법이다. 교수님은 시와 음악처럼 흐름이 있는 예술이 존엄을 지켜주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영화 <쇼생크 탈출> 속 한 장면을 인용하였다. 감옥 운동장에 <피가로의 결혼>이 울려 퍼지고 죄수들이 활동을 정지하고 경이로운 표정으로 하늘 높이 솟은 스피커를 바라보던 대목이었다.
말년의 렘브란트가 조금의 필터링 없이 늙고 볼품없는 자기 얼굴을 그린 것도 존엄을 지키는 행위였을 것이다. 존엄이란 빈틈과 부족함이 '나'라는 사람의 내용을 짜임새 있게 갖추는데 필요한 성분이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불교에 심취하고 수도승 생활을 오래 했던 캐나다의 소설가이자 가수인 레너드 코헨은 그의 노래 '송가(Anthem)'에서 모든 것에는 갈라진 틈이 있으며 그 틈새를 통해 빛이 들어온다고 노래했다. 생명을 가진 것은 상처입기 쉽고 연약하다.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면서도 내면이 평화로울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
존엄을 지킨다는 말은 근사하지만 현실은 바쁘고 실제로 행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필사하고 책을 읽고 명상한다. 복효근의 시를 읽고 수많은 실금의 틈, 벌어진 사이에서 삶의 진동과 충격을 견디는 힘이 나온다는 것을 오늘의 드로잉에 메모했다. 매끈한 건물벽보다 미세한 실핏줄 같은 틈이 생긴 벽이 추위와 비바람에 견고하다. 노후를 대비해서 보험에 가입하고 적금을 드는 것도 좋지만 존엄을 지키는 방식을 다양하게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