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을 먹듯이

1일 1드로잉, 책

by 혜윰

#111일차

*2021.11.4. 10분 글쓰기*

요즘 읽는 책, 추천하는 책


책을 사서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베스트셀러는 사지 않는 편이다. 추천받은 책이나 이전에 읽고 좋았던 작가의 책, 소장가치가 있는 책으로 골라 산다. 집을 정리하면서 책을 버린 적은 거의 없으니 집에 책이 많은 편이다. 읽은 책 보다 안 읽은 책이 비슷하거나 더 많을 수 있다. 영화도 그렇고 책도 보통은 한 번만 읽고 두 번 읽은 적이 없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좋아서 갖고 싶을 경우에 책을 산다. 주로 읽는 분야는 인문학, 사회과학, 시집, 명상, 학교에 대한 것이다. 자기계발서는 사지 않고 소설도 소설가에게 미안하지만 잘 안 사는 것 같다.


요즘 읽으려고 책상에 꺼내놓은 책은 여섯 권이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유리 동물원>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이다. 코로나19로 잠정 중단되었던 연극모임이 조심스럽게 시작되며 올해는 기존 시나리오를 가지고 낭독극을 발표하게 됐다. 그래서 모임 구성원들이 나눠 갖게 된 올해 산 책이다. 아직 배역은 정하지 않았다. 등장인물인 마거리트, 브릭, 딕시, 메이, 구퍼, 할머니, 수키, 할어버지, 투커 목사, 레이시, 아이들 역할 중에 나는 어떤 역할을 맡게 될까?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탐색하며 끌리는 인물을 골라봐야겠다. 책 표지 흑백 사진 속 남자의 분노한 얼굴과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갈망하는 듯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퓰리처상, 뉴욕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훌륭한 희곡을 써낸 테네시 윌리엄스는 어이없게도 병마개가 목에 걸려 질식해서 죽었다고 한다.


<몸은 기억한다>는 나의 선생님인 김현수 샘이 감수한 책으로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베셀 반 데어 콜크가 자신이 주로 연구해온 트라우마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관해 쓴 책이다. 이 책은 세월호와 군 위안부 문제 등 사회적 참사와 역사의 트라우마부터 개개인의 트라우마를 포함하여 전공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몰입해 읽을 가치가 있다. 책을 엄청나게 읽고 어마어마하게 공부하고 많은 시간 글을 쓰는 김현수 선생님이 강력 추천한 책이라서 주저 없이 구입해서 언젠가 읽으리라 벼르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도 커다란 상처는 아니라도 일상에서 스몰 트라우마가 쌓이며 삶과 영혼이 분리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자기 자신을 존중하면서 밝고 안전한 삶으로 인도될 것 같은 기대감이 있다.


<고엔카의 위파사나 10일 코스>의 부제는 내면의 평화에 이르는 여행이다. 유발 하라리가 추천하는 책이기도 하고 대학교 은사님이 마음챙김에 대해 잘 설명된 책이라고 추천해주셔서 알게 된 책이다. 명상, 마음 챙김, 마인드풀니스에 대한 책은 많이 사고 모으는 편이다. 읽고 소화해서 내 생각을 만들어야 하는데 등산으로 치면 이제 국립공원 입장료를 구입한 형편이다. 골짜기를 지나 능선을 타고 오르다 거센 바람에 잠시 몸을 피하고 비박을 하며 쉬었다 가는 상상을 해본다. 산세를 살펴 나아갈 길을 가늠해보고 자신의 상태를 재정비하고 등산을 이어가다 정상에 도착한 다음 다치지 않게 하산하는 그 모든 것이 내 앞에 남아있는 느낌이다. 욕심과 욕구를 구분해서 마음챙김 공부를 해보고 싶다.


'어떻게 배울 것인가'라는 부제가 달린 엘렌 랭어의 <마음챙김 학습혁명>은 작가의 이전 책 <마음이 삶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가-마음챙김>을 감탄하며 읽었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구입했었다. 나에게는 마인드풀니스로 일어나는 인지과정의 변화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해주는 책으로 다가왔다. 왜 우리가 비슷한 패턴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쉽게 풀어주는 책으로 생각을 바꿔 삶의 태도가 바뀌고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지과학적으로 보여주었다. 읽는 동안 바보 같았던 과거의 행적이 명쾌하게 이해되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녀의 <마음챙김 학습혁명> 또한 기대된다. 사 둔지 꽤 오래된 책이기도 한데 아직까지 못 읽고 있었다. 이 책을 먼저 읽고 다른 책을 읽거나 공부하면 비약적인 발전이 있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와 정희진의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는 산문집이다. 정희진의 책도 여러 권 갖고 있는데 어떤 책을 사도 아깝지 않을 작가 중 한 사람이다. <페미니즘의 도전>이나 <낯선 시선>에서 정신이 번쩍 차려지는 예리한 문제의식과 깊은 탐구정신에 배우고 느끼는 바가 컸다. 신문 칼럼도 챙겨 읽었던 터라 작년에 나온 이 책을 올해가 가기 전 읽고 싶다. 황현산은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는 저명한 문학평론가이자 프랑스어 번역가다. 2018년에 돌아가신 선생님을 기리며 2019년에 1주기를 기념해 시 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이 재출판되었다. 제목에 끌려 도서관에서 빌려봤는데 너무 어렵고 너무 두꺼워서 몇 장 못 읽고 반납했다. 생전에 트위터리안으로도 인기를 얻어서 그의 트위터 글을 모아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라는 유고 산문집이 나왔고 이 책을 필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황현산의 책을 갖고 있기만 하고 아직 펼치지 못하고 있다.


속독, 다독 모두 소질이 없어 책 읽는데 오래 걸리고 에너지가 많이 든다. 한 해 두해 나이를 먹어가며 기억력이 흐려지고 집중력도 약해지는 것 같다. 예전에 사둔 EBS 다큐 <기억력의 비밀> 책을 마중물처럼 먼저 읽고 오늘 뽑아놓은 여섯 권의 책을 차례로 읽어봐야겠다. 다독가로 유명한 일본의 어느 학자는 동시에 열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한다. 그것도 서로 다른 분야의 책을 집과 직장, 책상과 식탁, 현관 앞, 화장실 등 곳곳에 둔다. 하루 중에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손에 잡히는 대로 읽으면 책의 내용이 교차되며 자기 안에서 새로운 짜임이 구성된다고 한다.


뇌과학 연구자들이 인간의 두뇌가 최대로 활성화되는 전성기는 60대 무렵이라는 말을 듣고 이제 나이 탓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정희의 시처럼 한 알의 사과를 먹듯이 그 향기와 붉은 빛깔을 음미하며 한 알의 사과를 먹듯이 책을 맛있게 열다섯 해쯤 먹다 보면 치유의 힘과 여유로운 미소를 가진 60세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사둔 책을 모두 읽고 소화해서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 책을 나눠주며 상처를 낫게 해 주고 예방하는 책 처방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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