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식을 먹고, 이 옷을 입고

1일 1드로잉, 누텔라

by 혜윰

*2021.11.1. 10분 글쓰기*

다이어트


술래잡기를 하며 막다른 골목에 이를 때까지 달려본 적 있다. 숨이 턱 끝에 차고 체력이 바닥나서 벽이 가로막히지 않았어도 더는 못 갔을 거다. 이만하면 되었다 싶어 술래에게 잡혀도 아쉽지 않았다. 내게 다이어트는 해볼만큼 해봤기 때문에 뱃살과 군살에 붙잡힌 지금에 아쉬움이 없다.


우중충한 대학시절을 보낸 뒤 교단에 서고 나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그 당시 아이들은 치마 입고 머리 길면 예쁜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1학년 담임을 했을 때 복도에서 우리 반 아이와 옆반 아이가 서로 자기네 선생님이 더 예쁘다고 말싸움을 했다. 아이들을 진정시켜 집에 보낸 뒤 그리 예쁘지 않았던 나와 옆반 선생님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주지 않아도 공짜로 사랑받는구나 싶었다.


다이어트와 함께 체질을 바꿔보려고 채식을 2년 정도 하다가 익히지 않는 채소만 먹는 생채식도 몇 개월 해봤다. 5:2, 16:8이라는 sbs 다큐 간헐적 단식을 보고 따라 해 보다 흐지부지 된 적도 있다. 물 먹는 시간과 고체 음식을 분리해서 먹는 식단,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생활 단식, 한약 다이어트에 이어 마지막에는 내과에서 지어주는 식욕억제제도 먹어봤다. 비만으로 건강을 위협받는 상태가 아니었다. 정상분포 곡선의 가장 많은 범위에 속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체중감량에 매달렸다.


많은 방법 가운데 식욕억제제가 기억난다. 그걸 먹으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말똥말똥해서 밤에 잠이 안 왔다. 말이 많아지고 의욕이 충만해져서 힘이 났다. 안 먹고 안 자고 출퇴근, 운동, 업무 등 여러 가지 일을 해내도 지치지 않았으니 체중감량 효과는 강력했다. 침대에 누워 잠이 오지 않아 천장을 바라보며 이것을 계속 먹다간 내가 잘못되겠구나 싶은 예감이 들은 이후 남은 약을 모조리 버렸다. 그런 약이 뇌 기능을 바꾸는 것인지 식욕이 말끔히 사라지고 구름 위를 걷는 묘한 흥분감으로 다른 욕구가 찾아들지 않았다. 다행히 오래 먹지 않았지만 먹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남아서 먹토(먹고 토하는 행위)까지 한 적도 있다.


다이어트를 할 때는 사람들과 함께 먹는 식사 시간이 위험하다. 같이 먹다 보면 휩쓸려 많은 양을 먹게 된다. 안 먹고 있으면 왜 안 먹냐고 불필요한 주목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먹는 척하면서 안 먹는 방법을 몇 가지 터득했다. 음식을 잘게 잘게 썰어서 꾸준히 조금씩 입에 넣고 대화를 많이 하면 사람들은 계속 먹는 줄 알았다. 처음 음식이 나왔을 때 절반을 떼어 다른 사람 접시에 놓아주고 맛보라 권하면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들으며 음식 섭취를 줄일 수 있었다.


그렇게 인생 최저의 몸무게에 도달했고 다시는 예전 체중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신경 썼다. 옷가게에서 제일 작은 치수를 사서 몸에 꼭 맞게 수선집에 맡겨 사이즈를 줄였다. 사람들은 내 진짜 모습을 알지 못하면서 겉모습만 보고 호감을 갖고 다가왔다. 길에서 모르는 사람이 예쁘다며 말을 걸고 쇼핑하러 가면 점원들이 무척 친절했다. 외모에 대한 칭찬을 많이 받았지만 자존감은 바닥이었고 행복하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 외식하면 살이 찔까 봐 만남을 피했다. 음식을 계획보다 더 먹었다 싶으면 늦은 시간이라도 동네를 몇 바퀴 돌고 집에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거울을 보며 몸을 체크하고 조금만 쪘다 싶으면 우울했다. 체중계의 숫자가 그날의 컨디션을 결정하고 하루의 에너지를 송두리째 뺏어갔다.


그때는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 중2병으로 마음이 갈 곳을 잃어 방황했던 시간이었다.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여기저기 부딪쳐 멍들고 아프던 시기였다. 매운맛의 자극을 쫓다가 맵다 못해 쓰디쓴 캡사이신에 닿아서 취향이나 희망이 뭉개지는 것처럼 맹목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때가 있었다. 이미 지나간 어찌할 수 없는 과거가 기억의 두레박을 타고 올라와 현재 내 마음을 괴롭혔다. 유리 파편을 밟고 비명을 지르며 아프다고 소리 지르는데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는 것 같았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외모와 체중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나 스스로를 함부로 대했던 일의 근원을 해결하지 못했다. 지금 내 몸에 대해 자유롭고 온전히 내 몸을 받아들였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비쩍 마른 우리 엄마는 내 허벅지를 볼 때마다 부러워한다. 너처럼 다리가 튼튼해서 마음껏 걷고 산에도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건강한 하체를 가진 나는 산을 오르지 않아서 좋은지 모른다. 남편은 종아리가 제2의 심장이라며 펌프질 해서 심장에 혈액을 올려 보내 줘야 해서 종아리가 튼튼해 장수하겠다고 나를 놀린다. 농담에 눈을 흘기지 않고 예사롭게 넘길 수 있을 정도의 담담함은 생겼다. 남들 의식하지 않고 내가 입고 싶은 대로 하이힐에 스타킹도 신고 치마도 입는다. 그런 내 모습에 흡족한가 하면 썩 그렇지 않다. 현재 내 위치는 노예 수준은 벗어났지만 아직 해방되지 못한 어중간한 자리에 서 있다.


내 몸과 나의 것만 보였던 좁은 시야를 벗어난 데에는 발우공양의 영향이 컸다. 발우는 스님의 밥그릇이고 발우공양은 스님의 식사를 뜻한다. 절에서는 발우를 머리 높이 선반에 올려 모시고 공양시간에도 그릇을 높이 받들어 가져온다.


물 한 방울 속에도 천지의 은혜가 깃들어 있고,

밥 한 톨 속에도 만민의 노고가 깃들어 있고,

한 올의 실타래 속에도 베 짜는 여인의 피땀이 서려 있다.

이 물을 마시고, 이 음식을 먹고, 이 옷을 입고,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여,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일체중생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오관게 (출처 정토회)


둥글게 앉아 위와 같은 뜻의 공양 게송을 외운 다음 그날 식사 당번인 스님이 밥과 반찬을 들고 내 앞에 서면 합장하고 먹을 만큼의 밥과 소박한 반찬을 담는다. 묵언을 하고 음식에 집중해서 먹으며 김치 쪼가리나 짠지 조각을 한쪽에 남겨두어야 한다. 식사를 마친 후 김치 쪼가리로 접시를 쓸어서 고춧가루 한 개 남기지 않고 그릇을 닦아 먹을 때 필요하다. 설거지를 끝낸 것처럼 깨끗해진 그릇은 세제가 필요하지 않다. 밀가루 푼 물에 담가 닦고 헹굼 물에 또 한 번 담갔다 꺼내 물기를 제거하고 다시 원래 자리에 올려놓고 합장한다. 음식물쓰레기가 생기지 않고 합성 세제도 없었다.


요즘 대세인 진정한 미니멀리스트,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이 불가에서는 수천 년 전부터 지켜지고 있었다. 하루 세 번의 식사가 훌륭한 수행이 되는 것을 보고 음식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절에서 내려와 속세로 돌아간 나는 빠르게 예전 식습관으로 돌아갔지만 발우공양에서 받은 문화 충격은 잊을 수 없었다. 군더더기 없이 심플한 생활이 잉태한 단단한 에너지와 삶의 동력을 느낀 이후 불교의 생활 스타일은 내가 돌아가야 할 삶의 지향점이 되었다.


아직 소화되지 않은, 여전히 약간은 얹혀있는 체증과 같은 몸과 다이어트지만 오늘 글쓰기 주제라서 충실하게 쓰고 있다. 지금 나의 뇌구조를 그린다면 글에 대한 소명의식이 가득하고 다이어트는 콩알만 한 크기에 그칠 뿐이다.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안아주고 싶고 가능하다면 사과하고 싶다. 앎의 면적이 커질수록 내가 모르는 세계가 무한해진다. 나의 무지함으로 잘못인지 모르고 저지른 일이 있다면 기꺼이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용기를 내본다. 무엇이 미안했는지 앞으로 찬찬히 찾아볼 요량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수고한 나를 위해 깔끔한 반찬가게에서 내 입맛에 맞는 반찬을 골라 저녁 식탁을 차렸다. 어제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다가 냉장고에 넣어 둔 호박파이를 꺼내 드립 커피와 함께 먹었다. 태국 여행 중에 길거리 음식인 바나나로티를 먹어봤는데 맛있어서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또띠아와 누텔라를 이용해 만들어주었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음식이 주는 즐거움으로 사람들과 마음을 넉넉하게 나누고 삶의 만족감을 보탤 수 있다. 가볍고 날씬한 몸이 주는 자신감과 기쁨을 잊은 지 오래지만 지금 내 삶은 모자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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