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단어를 생각나는 대로 써보며 발견한 놀라운 점이 두 가지 있다. 긍정적인 감정보다 어둡고 쓸쓸한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평소 내가 긍정적인 감정에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실제 부정적 감정단어가 더 많은 건지 궁금하다.
인간은 원래 부정 편향이 강하다고 한다. 구석기시대부터 부정적인 sign에 예민한 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읽은 장면, 부정적인 소문을 믿고 준비 태세를 단단히 갖추었다가 알고 보니 그 짐승이 생각보다 위협적이지 않은 것과 별로 위험한 짐승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준비 없이 맞닦드렸다가 역습을 당해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어느 것이 더 안정적이겠는가.
나 또한 그런 구석기 습관이 유전적으로 새겨진 것인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일을 시작하게 되면 미리부터 걱정하고 기대를 낮게 갖는 편이다. 그것이 오랫동안 창조적인 활동을 못하는 장애로 작용했다. 안정된 삶을 택한 결과 지루한 일상이 주어지는 것은 불만을 표현할 수 없는 합당한 거래인 것이다. 위험 없이는 새로운 도전도, 창조성의 발휘도 어렵다.
두 번째 발견은 부정적인 감정의 따라가 보면 그 끝에 긍정적인 감정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긍정적인 감정 단어가 절정에 이르자 다시 부정적인 단어가 나타났다. 감정단어의 색채가 부드럽게 조금씩 변해가서 그러데이션처럼 긍정 부정을 막론하고 모든 감정 단어가 연결되어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감정 단어들은 안과 밖이 분명히 나뉘어 있지만 안팎이 모두 연결된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져 있었다.
감정어를 써보며 행복한 집의 창문 아래에는 언제든 들어올 준비를 하며 도사리고 엎드려있는 불행의 사자가 떠올랐다. 난폭한 사자가 침입해 소중한 집과 사람을 회오리처럼 쓸어가버려 상실감과 고통으로 괴로워도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안다. 눈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고 난 뒤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희망을 품는다. 문태준의 시를 읽으며 우리는 서로에게 고통의 구체적인 원인이지만 동시에 환한 등불이고 온기이며 아름다운 석양인 것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