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엄마는 엄마뿐이니까
요즘엔 엄마와 통화를 자주, 길게 한다
반항심이 극에 달했던 이십 대 초반,
‘자식새끼 힘들게 키워봤자 소용없다’며
엄마가 핸드폰 건너편에서 목놓아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너무 서럽게 들려서 당황하고 놀라,
한 달에 한 번은 꼭 전화하겠다고 서둘러 약속했다.
그러나 핸드폰 알람을 맞추고
달력에 써가며 애를 써도 늘 때를 놓치거나 잊었다.
어느 순간 엄마의 목소리는 건조해졌고,
짧고 의무적인 안부를 전하는 내 목소리도 지쳐있었다.
그때 나는, 가난에 시달렸고 꿈은 너무 멀어,
차라리 돌이 되고 싶었다.
병원에 실려가도 엄마에게는 늘 잘 지낸다고 말했기에,
엄마가 혼자서…
그토록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몇 년 전 엄마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는 제주도로 함께 여행을 떠났다.
제주도에 머문 한 주 동안,
한국행 비행기 티켓보다 더 큰돈을 썼지만 행복했다.
잠시 머문 예쁜 카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언제가 가장 행복했어?
그리고 언제가 가장 힘들었어?”
엄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고,
내가 스무 살이 되어 독립하겠다며 갑작스럽게
집을 떠나 서울 고시원으로 갔을 때부터
동생들까지 독립한 그 몇 년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다 키웠으니 내 품을 떠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텅 빈 집을 보면 그렇게 힘들었어.
너희 먹이려고 죽어라 일했을 때보다 그때가…”
나는 아빠가 바람 폈을 때나 이혼했을 때,
그것도 아니면 우리 모두가 십 대일 때일 줄 알았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가만히 엄마 등을 쓰다듬었다.
얼마 전 통화에선 사실 그때 제주도에서 한 내 질문에
눈물을 참느라 혼이 났다며,
이렇게 커서 엄마를 한 사람으로 이해해 주어,
고마웠다고 말해주었다.
언젠간 그 고생을 알아줄 날이 올 거라는 기대 덕분에
그 시간을 버텼다고도 했다.
그때 힘들었던 시절 이야기는 하기 싫다면서도,
자꾸 지나간 시간을 되새기는 나를 되려 걱정한다.
그러나 나는 자식이 없어 모든 아픔은 잘 모르지만,
가만히 엄마의 외로웠던 그 시간들을 생각해 본다.
요즘엔 매주 전화를 건다.
시차에 맞춰야 하고 엄마가 쉬는 날 저녁이어야 해서
옛날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데도
웬만해서는 잊지 않고 한다.
오늘도 한 시간 동안 신나게 수다를 떨고,
기분 좋은 목소리로 조카들 소식을 전해주던 엄마가,
전화 끊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건넸다.
“사랑해, 우리 애기.”
큰 딸이 아니라 애기라고 불러주는 건 낯설었다.
그렇지만 그 마음이 가득 와닿아 가슴이 뜨거워졌다.
“응! 사랑해, 우리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