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지 사정 이건 내 사정
한국으로 보낼 쌍둥이 조카 선물을 사기 위해 점심을 먹고 20분 거리의 큰 쇼핑센터로 출발했다.
아기 옷 매장에서 거의 한 시간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며 망설였다. 조카들은 남매 쌍둥이로 이제 8개월이 되었다. 아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인터넷에서 한참을 뒤져 알아낸 사이즈와 선물 팁을 애써 떠올리며 심혈을 기울여 옷을 골랐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옷이 쌍으로 된 것이 없어 아쉬웠다.
'하긴 남녀 이란성쌍둥이는 흔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장난감 가게로 가서 인형 두 개를 골랐다. 독일어로 '따뜻하고 포근한 인형'이라고 적혀있었다. 안에 씨앗이 들어있어 따뜻하게 데워서, 밖에 외출할 때나 배앓이를 할 때 올려주면 된다고 한다. 일단 인형이 귀여워서 토끼 모양과 염소 모양 하나씩을 골랐다.
거의 두 시간 동안 고른 선물이 동생과 올케의 마음에 들기를 바라며, 매우 흡족한 마음으로 쇼핑에 지친 다리를 쉬어주기 위해 스타벅스로 향했다. 켄은 잠시 화장실에 들렀고, 그 동안 나는 주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섰다. 그때, 키가 매우 큰 금발의 남자와 모델처럼 생긴 여자가 살짝 공격적으로 내 앞을 가로막았다. 케이크를 고르기 위해서인지 이것저것 유심히 살펴본다. 나는 내 앞을 막아선 커플을 조심스럽게 지나쳐 다시 줄을 서기 위해 한 발자국 앞으로 갔다.
조금 더 기다린 뒤 내 차례가 되었고, 캐셔는 '다음 분!'을 외쳤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방향을 틀었지만, 덩치가 큰 그 금발머리 남자가 나를 가로질러 주문을 했다.
한소리 할까 하다 '에잇, 뭐 하러 어차피 나도 금방인데' 싶어 내 차례를 다시 기다렸다. 내가 몹시 키가 작아 못 봤겠거니 했다. 의문스러웠던 기분은 방긋방긋 웃는 캐셔의 친절함에 눈 녹듯 사라졌다. 내게 무료 음료 쿠폰을 사용하겠느냐며, 이왕이면 큰 걸로 주문하라는 팁까지 전해줬다. 무료 쿠폰을 사용할 때는 가장 비싼 것을 시키라면서 말이다. 나는 깔깔거리며 가장 달달한 음료에 휘핑까지 추가하여 화려한 음료를 주문하고, 나머지 하나는 소박한 커피 음료를 주문했다.
그리고 음료 픽업대에 가서 기다렸다. 그때 다시 그 금발의 남자가 나를 매서운 눈으로 쳐다봤다. 무슨 오해가 있나 싶었지만, 자랑스럽게 새치기를 해놓고도 화가 나는 것은 그의 사정이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내 음료가 먼저 나오자 그는 무례하게 내 음료를 채가 자신의 것이 아닌지 확인했다. 복잡한 내 한글 스펠링이 적힌 음료를 보고 내려놓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는데, 매우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나는 매우 화려하게 나온 거대한 음료 한 잔과 소박한 커피 음료를 기분 좋게 들고 자리로 가서 앉았다. 화장실에서 켄이 나오고 우리는 잠시 열을 식혔다.
그때 한 가족이 우리 옆에 앉았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 둘을 데리고 얌전히 자리에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었다. "혹시 이 가방 누군 것인지 아세요?"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중국어만 사용했지만, 그녀는 독일어를 정말 유창하게 구사했다. "아뇨, 저희 아까부터 있었는데 아무도 그 자리에는 앉지 않았었어요." 잠시 갸웃거리다 카운터로 가서 가방을 맡겼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풍경이겠지만, 독일에서는 보기 드문 친절이다. 안타깝지만, 유럽은 가방을 놓고 갔다면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곳이다.
거의 10분이 될까 말까 한 짧은 시간 동안 한 남자의 우악스러운 불친절이 나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기는커녕, 함께 다가온 낯선 이들의 친절 덕에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 자신의 이득만 찾아다니지만 불행하고 불안해 보이는 남자와 친절을 베푸는 것이 익숙하고, 매우 조용히 행복한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있었다.
얼마 전에 낯선 누군가와 온라인에서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자연은 그토록 균형을 맞추는데, 왜 인간은 그렇지 않냐는 나의 의문에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있어 균형이 맞는다는 것이다. 내가 말한 균형은 평등과 분배의 문제였으나 그의 대답이 지금까지도 매우 마음에 든다.
'그래, 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균형을 이루는 것이지.'
좋지 않은 날도 있고, 지친 쇼핑에 예민해지는 날도 있다. 또, 많은 업무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그게 뭐 별 건가. 괴로워봤자 내 손해다. 가장 똑똑하게 이기적인 것은 스스로가 편해지기 위해 기분이 상하지 않는 것이다. 좋지 않은 날에도 기분이 상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지친 쇼핑 이후에도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있고, 업무에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남의 기분을 해치지 않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수없이 스스로를 괴롭히던 날들과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모든 것이 벅찬 날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래,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받아들여야 평화가 오는 것을. 얼마 전 들은 법륜스님의 말씀이 귓가에 울린다. "그건 지 사정, 이건 내 사정." 더 나쁠 수 있었지만 이만한 것을 복으로 여기며 감사하게 살아야 한다. 괴로운 하루를 만들며 속상해 할지, 감사한 날로 여기며 행복하게 지낼지는 모두 내 선택이다.
정말이지, 고마움과 깨달음을 전해준 그 짧은 10분 동안의 모든 친절과 불친절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