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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Jul 03. 2024

나의 아침은 천천히 온다.

실컷 울 수 있도록 배려 있게 느릿느릿

또 시작이었다. 한밤중에 갑자기 밀려오는 불안감에 나는 소스라치게 눈을 떴다. 옆에서 잠들어 있던 켄이 졸린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


대답할 수 없었다. 심장은 불안하게 요동쳤으며, 머릿속은 온갖 공포로 가득 찼다. 침대에 누워 있는 것조차 견딜 수 없어 벌떡 일어났다. 창가로 달려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차가운 겨울밤 바람이 몰아치며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다시 잠들면 분명 죽을 거야.'


악몽을 꾼 걸까? 아니면 숨을 쉴 수 없었던 걸까? 혹시 잠자다 갑자기 죽는 돌연사...? 어디서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슬픔인지, 고통인지, 아니면 순수한 공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켰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잠들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조금 전의 생각들이 갑자기 우스워졌다. 잠들면 죽는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내일은 할 일이 많잖아. 어서 자자.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는 공포를 애써 무시하며 침대로 돌아갔다. 켄이 잠결에 나를 꼭 안아 주었다. "괜찮아. 여긴 우리 집이야. 안전해." 그의 말에 안도감이 밀려왔고, 그렇게 또 한 번의 밤을 넘겼다.


그렇게 원인 모를 불면증을 겪은 지 10년이 넘어갈 무렵, 대낮에도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찾아왔다. 업무차 미팅 중이었다. 평범한 하루였고, 준비해 온 내용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손끝이 떨리더니 숨을 쉬기 힘들어졌다. 나를 바라보는 모든 이의 시선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느껴졌다. 마치 내 비정상적인 심장 소리를 모두가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얼굴이 붉어지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밤에만 겪던 공포가 대낮에, 그것도 사람들 앞에서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괴롭게 했다. 무대 공포증이 다시 도진 걸까? 제발 다시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나의 연극배우 시절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간신히 말을 꺼내고 밖으로 나왔다.




우습게도, 이런 고통의 정체를 알게 된 건 불과 몇 개월 전이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던 중이었다. 공황을 겪고 있는 환자가 일상생활 중 자리를 황급히 피하는 모습, 숨 막히는 공포에 대해 빨대 구멍만으로 60초 동안 호흡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는 설명에서 깨달음이 왔다. '아, 그게 공황이었구나.' 거의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이름 모를 적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상담을 하러 간다. 운이 좋게 한국어로 상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더 운이 좋게도 모든 비용을 보험 처리할 수 있었다. 아직 상담은 20회 정도밖에 진행되지 않았고, 선생님은 내게 길면 2년까지도 걸리는 치료이니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나의 하우스 아츠트(가정의 혹은 주치의)가 처방해 준 약과 처방전 없이도 복용이 가능한 두 가지 약을 번갈아 이용하며 상담 치료를 매우 적극적으로 받고 있다.


아직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문제인지 모르겠다. 어설프게 짐작만 할 뿐이다. 선생님과 나는 나의 어린 시절부터 더듬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오랜 원망을 몇 번의 상담 끝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외적으로 언제나 나는 나의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들을 제법 화목한 것처럼 꾸미는 데 선수였다. 나의 SNS에는 오랫동안 아버지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떡하니 걸려 있었고, 우리들은 행복한 듯 웃고 있었다.


그러나 아픈 사실을 말하자면, 아버지는 우리에게 언제나 일 년에 한 번 정도 방문하는 VIP 손님에 지나지 않았고, 우리는 아버지가 방문하는 날마다 행복한 가족인 듯 역할 놀이를 즐겨할 뿐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책임감이 강하고 유쾌해 보였으나, 한 번도 돈을 벌어다 준 적 없이 자기 자식들을 나 몰라라 내버려 두고 어머니를 착취한 사람이었다. 실상은 유쾌하지도 않고 책임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상담을 하는 와중에도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감싸주기 급급했다. 전형적인 피해자의 모습이었지만, 나는 이제 그를 마음껏 원망하고 있다.


그를 원망하지 않기 위해 나는 나를 자책했으며, 나의 과거의 아픔을 모른 척했고 수없이 거짓으로 행복을 꾸며냈으니까.




내 불안증과 공황의 모든 원인이 아버지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충분히 많은 책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나는 타인을 신뢰하기 어려웠으며, 다툼 뒤 뒷모습을 보이는 연인에게 발작적으로 히스테리를 부리곤 했다. 여동생도 나와 동일한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을 땐 같은 아버지를 뒀으니, 같은 문제가 있을 수밖에...라는 생각만 들어 우리의 어린 시절이 너무 안쓰럽게 느껴졌다.


상담은 주로 과거에서 시작한다. 선생님은 나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20대의 일들에 대해 물어본다. 선생님은 언제나 조급해하지 말라고 하시지만, 빨리 편안한 밤과 불안하지 않은 마음을 갖기 위해 매우 집중해서, 열심히 대답한다. 언제나 최대한 솔직하려고 노력하지만 대부분은 거짓말 투성이다. 주로 내가 하는 거짓말은 괜찮았다, 힘들지 않았고 그때도 나름 행복했다는 것이다.


또다시 아픈 사실을 말해보자면, 너무나 견딜 수 없이 힘들었고 불행했다. 오랜 시간 동안 외로웠고 지쳐있었다. 아무래도 나의 아침은 천천히 올 것 같다. 내가 충분히 울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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