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얼마나?

The more fluent, the better view

by ninabsch




나는 토종 한국인이다. 영어 실력도 영어를 배운 과정도 평범하다.




8~13세 : 매일 자막 없이 영어 영화를 봤다.

14~19세 : 내가 다닌 대안학교의 영어 수업은 실력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20세 : 수능을 치기 위해 과외를 받으며, 처음으로 영문법을 제대로 익혔다.

21~23세 : 외대에서 과반수가 해외 출신인 원어민 강의를 울며 겨자먹기로 들었다. 영문과 수업에서 매주 원서를 읽었다. 독학으로 토익 980점을 받았다.

24~26세 : 독일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하며 영어 강의를 들었다. 외국계에서 인턴을 하며 영어로 간단한 이메일을 주고 받거나 전화 통화를 했다. 호주 지사의 계약서 담당자가 방문했을 때 리스닝에 무리가 없었다.

27세 : USCPA 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 영어로 문제를 풀다 보니 머리에서 한영 번역을 거치지 않고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외국계에서 근무하며 ‘영어를 잘해야겠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여러 번 했지만 ‘영어가 부족해서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그래봐야 인턴 나부랭이지만. 팀장님은 애티튜드까지 뛰어난 영어를 구사하셨고, 완벽한 네이티브들도 사무실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네이티브라면 외국계 회사라는 환경에서 더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을까? 외국어를 배운다는 건 또 하나의 사회를 새롭게 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나의 영어와 독일어 실력이 비즈니스 수준에 다다르면, 비록 한국 지사에서 구사할 일이 많지는 않더라도 넓은 시야에서 오는 여유가 생길 것 같다. 하지만 진짜 실력이 늘려면 압력이 있어야 한다. 해외에서 네이티브들과 일하는 환경이 가장 극단적인 예시가 될 것이다.




팀장님은 ‘외국계도 한국 회사와 다를 바 없다’고 말씀하신다. 오히려 해외 바이어나 클라이언트를 접하는 국내 기업에서 일할 때 영어 실력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니 외국계에서 일하려면 영어는 얼마나 잘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잘하면 잘할수록 좋다’는 막연한 대답밖에 할 수 없다. 승진을 할 때 영어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팀장님께 여쭤볼 걸 그랬다.




PR팀에 미국에서 학부를 졸업한 동료가 있었다. 매우 예의 바르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업무를 하면서 영어를 쓰는 일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회사 내에서 인정받으며 일했다. 만약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사람과 영어 네이티브가 있다면, 전자는 어디서나 환영받겠지만 후자는 외국계에 ‘더 어울린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나의 아빠도 평생 외국계에 근무하셨다. 재택 근무 날 글로벌 콜을 하시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아빠 세대의 영어 공부 방식이 스피킹할 때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휘는 많이 알지만, ‘문장을 구사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순과 문법을 일일이 생각하며 말을 하기 때문이었다. 언어는 단시간에 키울 수 있는 자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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